정경유착·불법 정치자금 온상 / 회원사간 이해조정도 실패

“과거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을 주도적으로 실천했던 압축성장시대와 달리 현 경쟁시장체제에서 전경련의 기능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 “전경련은 뿌리깊은 정경유착의 핵심 고리로 그룹간 담합과 정치자금 헌납기구 이상이 아니다” 40여년간 재계의 대변인 역할을 해왔던 전경련이 존폐기로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외면적으로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전경련 회장추대가 무산된 데 따른 후유증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정부와 재계의 연결고리로서 전경련의 기능이 이미 상실됐음을 반증하고 있다. 더욱이 회원사간 이해조정에도 실패해 항간에는 전경련이 아닌 ‘삼경련’이라는 조소가 흘러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한편 자유시장경제 옹호를 내세우며 씽크탱크로의 전환을 노리며 노장의 전문CEO인 강신호 회장이 두 번째 임기를 준비하고 있긴 하지만 재계 실세가 아닌 만큼 산적한 과제들을 떠 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경제전문가들은 과거 오너가 기업경영에 대한 무한책임을 져야했던 압축개발시대와 달리 현재 글로벌경쟁이 치열한 시장상황은 전경련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더욱이 정책개발을 위한 씽크탱크가 되기에는 너무 거대한 공룡조직이라는데 이견이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최근 무용론을 넘어서 해체론까지 나오고 있는 전경련의 문제점과 향후진로 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40여년간 재계의 대변인노릇을 해온 전경련이 최근 존폐기로에 놓여있다. 최근 전경련은 차기 회장 선임을 둘러싸고 추대노력에도 불구,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극구 고사하는 바람에 기존 강신호 회장이 연임하며 비실세 회장에 의한 2기를 맞고 있다. 특히 LG·현대차그룹 등 다른 실세 그룹들은 이미 전경련에 등을 돌려 각종회의에 불참한 지 오래됐으며 하위그룹 회원사들로 전경련의 거대조직을 지탱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경제전문가에 따르면 사실상 대기업 총수들의 모임인 전경련은 개발독재시절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을 수행하며 성장·발전을 추진하는 역할을 전담하고 회원사들간 이견을 조율해왔다. 이와 관련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과거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을 주도적으로 실천했던 압축성장시대와 달리 현 경쟁시장체제에서 전경련의 기능은 사실상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또한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위한다는 설립목적에도 불구하고 정치자금 헌납기관으로 변질돼 정경유착이 강화되고 그룹간의 담합을 통해 자유시장체제를 왜곡해왔다”며 비판을 가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현 상황이 전경련의 리더십 부재에 따른 일시적인 혼란에 불과하며 결국 변화된 경영환경에 맞는 경제단체로 거듭날 것으로 예상하는 낙관론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총수들의 친목모임? 국내에는 현재 전경련으로 약칭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해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협동조합, 한국무역협회 등 5개 주요 경제단체들이 각각 활동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각기 고유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대한상의의 경우 국내외·지역별 상공업자들의 입장을 대변, 정부정책의 매개역할도 수행하고 있는데 회원은 3만5000여 개인과 법인들이다. 최근 산자부가 대한상의를 공법인에서 민간기관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이후 국제적 상공인조직의 성격까지 감안하면 존립에 의문을 제기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 역시 중소제조업체 위주로 하는 경영자단체로 산업연수·고유업종 지원업무, 업계입장 대변, 외국인 노동자 산업연수, 중앙정부·지자체 위임사무까지 처리하고 있다. 경총의 경우 노사관계에서 사용자들의 상급단체로 한노총·민노총과 매년 노사교섭을 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무역협회는 주로 수출입업계에 대한 지원역할을 전담하고 있다. 결국 변화되는 기업의 경영환경에서 고유영역을 확보하지 못한 전경련의 경우 존립근거가 위태롭다는 것인데 국내 그룹 총수들간의 단순한 친목모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들은 “전경련은 뿌리깊은 정경유착의 핵심 고리로 그룹간 담합과 정치자금 헌납기구 이상이 아니다”라며 “결국 해체를 위한 수순을 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전경련은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옹호하는 친기업적 환경조성을 위한 씽크탱크로서 기능을 강화하며 정치권과 재계를 매개하는 미묘한 역할을 자임하지만 결국 효과는 미지수이다. 더욱이 씽크탱크라면 정권 획득을 추구하는 도전자정당의 브레인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여당과는 거리를 두면서 정치권의 일반적 변동추이도 제대로 캐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케케묵은 반공이념이나 국내경제현실에서 검증되지 못한 무비판적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을 들먹이는 가운데 재계의 실세들로부터 무시를 넘어 집중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한 경제전문가는 “전경련이 주로 거론하는 시카고학파의 신고전주의 경제정책들은 중남미경제 실험에서 이미 실패한 이론으로 국내현실 반영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에서도 공급측 경제학파의 감세이론은 레이건과 부시 1세 정권의 핵심 경제정책으로 이미 막대한 재정·무역수지의 쌍둥이적자만 내고 실패한 이론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 회원이해 조정능력 부재 한편 전경련은 경쟁하는 회원 그룹들의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해 실세 그룹 총수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데 그룹간 빅딜이나 SK그룹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무능력을 노출한 바 있다. SK그룹 고 최종현 회장은 전경련 회장시절 김영삼 정부의 대기업 소유분산 정책으로 각종 규제를 비판하다 결국 SK그룹이 보복적 세무조사와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자초하기도 했다. 80년대 초반에는 전두환 정권의 산업합리화정책 등을 둘러싸고 대립을 벌이다가 정치권의 눈총을 받은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은 전경련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전경련은 안으로 회원사들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고 시민단체로부터는 정경유착과 정치자금의 온상으로 비판을 받아 무용론을 넘어 해체론까지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전경련은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한 압축성장의 주역으로 5·16쿠데타이후 대정부 창구역할을 하면서 차관도입과 공단조성 등 사업들을 주도해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유시장매커니즘과 다른 그룹간의 밀실거래와 담합을 주선하고 정치자금을 조성해서 전달하는 등 부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현재 위치를 차지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한 사례는 지난 2003년 8월 현대차가 임단협에 최종합의에 이르렀을 때 전경련의 논평은 경영침해적 노사합의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일관해 앙금을 쌓았다. 당시 현대차 경영진은 신고 끝에 성사된 임단협 결과에 대한 논평을 듣고 발끈했는데 회원사들이 처해있는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원론적인 입장만 견지하는 태도에 불만을 표시했다. 더욱이 현대차는 전경련이 철저한 노무관리로 인해 노사분규 우려가 전무한 삼성그룹의 논리만 대변하면서 강성노조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제현실을 무시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현대차그룹은 당연히 전경련의 각 회의에 불참하며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정몽구 회장은 지난 2002년 5월이래 회장단회의에 한번도 참석한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재계에는 이 같은 전경련의 논평이나 행태에 대해 삼경련이라는 용어로 비판하고 있는데 입장변화가 있지 않을 경우 앞으로도 재계 실세총수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할 것으로 전망된다. ■ 권력과는 ‘끈 떨어진 연’ 전경련이 당면한 최대 문제점은 현 정부와 여당 핵심세력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정계와 재계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유지해야할 입장에서 편향되고 일방적으로 경제원론 교과서 같은 의견만 전달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입장에서 국가경제 성장·발전에 필수적인 재계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 이의가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전경련은 대정부 건의조차 강경한 정책비판만을 답습해오고 있다. 재계 역시 개별 회원그룹들간의 무한경쟁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정치권으로부터 일방적 규제나 요구에 대처할 수 있는 효과적 매개채널이 필요한 상황에 사실상 낙제점을 받은 셈이다. 이를 반증하는 사례는 외환위기 직후 정부차원에서 진행된 대기업간 빅딜에서 드러났는데 LG그룹의 경우도 삼성그룹측 입장만 두둔해온 전경련에 앙금을 씻어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LG그룹 구본무 회장 역시 2003년 5월 전경련이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공장 증설허용을 촉구하면서 LG필립스 파주 LCD공장을 들어서 국내사 역차별문제를 거론하자 등을 돌려버렸다. 이에 대해 재계관계자는 “전경련 운영을 위해 갹출하는 회비 가운데 삼성그룹의 분담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삼성그룹에 너무나 편향된 태도를 보인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빅딜을 비롯한 업계 판도변화나 중요한 전략추진 과정에서 삼성그룹만 두둔하면서 다른 회원사 입장은 고려치 않는 전경련에는 회비조차 납부하기 싫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전경련이 각 그룹의 이해조정자 역할이 실패해 반목이 계속되고 있으며 LG그룹처럼 지주사로 전환할 경우 환경이 달라 출자제한에 대한 공동대처도 어렵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 공정거래법 개정과정에서 전경련은 삼성그룹 입장에서 출자총액제한 규제완화를 건의해 LG그룹처럼 규제를 벗어난 그룹들의 이해관계상 단순 동의도 받을 수 없었다. 게다가 당시 총력을 기울여 저지하겠다는 의지가 무색하게 전경련은 현 정부핵심에 건의도 제대로 못해 결국 정부나 여당채널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냐는 강력한 비판에 직면했었다. ■ 뒷짐만 지는 전경련 현재 주요 그룹들은 회원사들이 경영권 공방과 구조조정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뒷짐만 지고 있어 전경련이 복지부동의 관료조직처럼 이미 쓸모 없는 조직이 돼버렸다며 비판하고 있다. 최근에는 LG그룹이 LG카드 증자에 즉각 참여하라는 정부와 채권단의 압력에 곤혹스러운 가운데도 침묵을 지켜 대주주의 무한책임 요구를 반대한다는 주장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투자자의 경영권 위협에 직면해 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위태로왔던 SK 역시 마찬가지로 전경련의 도움을 받기는커녕 개별적인 우호지분을 끌어 모아 표 대결을 벌였던 바 있다. 이와 관련 중견그룹 관계자는 “외국계 투자펀드의 적대적 M&A시도로 어려웠던 SK그룹에 강력한 후방지원을 해줘야했던 전경련은 사실상 재계와 상관없는 모르쇠였었다”고 말했다. 그는 “명색이 경제단체라면 경영권 방어에 불합리한 제도 개선을 위해 여론을 조성하고 방어차원의 지원연대까지 구축해야 하는데도 강 건너 불구경만 한 셈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편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이 추진해야 하는 사업들 가운데 핵심사안들은 회장단회의에서 통과돼야 하는데 실상 회장단 모임이 형식적으로 진행돼 허울뿐인 회의가 되기가 일쑤이다. 이를 반증하듯 지난해 10번의 회의들중 회장단 21명의 절반이상이 참석한 회의는 4차례로 작년 10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초청으로 13명이 참석한 사례가 가장 많이 모인 회의였다. 반면 재계 일각에서는 전경련이 과거 개발독재시대 정부의 경제개발 협력자이자 실행자로서 효율적인 리더구실을 했던 이미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 재건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 변화된 정부의 역할과 급변한 기업경영환경에 맞춰 과거와 같은 전경련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도 이를 추진하려는 몽상도 이제는 통할 수 없다는 것도 경제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또한 현재 전경련의 위기상황은 무엇보다 경제체제와 경영환경이 급속히 변화하면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역할이 필요 없는 상황이 도래했으며 전경련의 역량도 급락했다는 것이다. 실세 회원그룹까지 외면하면서 이제 기댈 언덕마저 없는 것처럼 보이며 전경련이 무용론과 해체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환골탈태를 하기 위한 대대적인 개혁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최근 전경련도 씽크탱크로 전환하기 위해 산하 연구소의 연구를 활성화하는 한편 조사국 기능을 강화, 재계차원의 정보수집·분석에 역량을 기울이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역사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조직과 체계가 언제나 새로운 도전에 의해 타도되는 과정이었으며 전경련이 최근 직면하고 있는 상황도 다르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무튼 자유시장논리대로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거대 경제단체도 이제 서서히 몰락할 것인지 부단한 개혁을 통해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재생할 수 있을지를 결정해야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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