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횡령·도박 … 비리는 옵션을 달고 온다

매년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화제로 공기업 비리를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새 정권이 공기업을 전반적으로 손보며 이런 기색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민 혈세가 투입된 공기업에서 연봉잔치를 하는가 하면 각종 비리로 임직원이 구속되기까지 한 것이다. ‘공기업=비리 백화점’이라는 세간의 호칭이 무색할 정도다. 공기업이 이렇게 방만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사신문>이 공기업 비리를 살펴봤다.

도덕적 해이 심각, 비리로 21개 공기업, 임직원 104명 기소
원정 성매매·유흥·횡령·방만그야말로 ‘비리 백화점’
공익사업, 경쟁 없고 연구개발 필요 덜해 “나태하질 수밖에”
정치권에 줄 닿은 낙하산 인사, 제대로 된 감사는 먼 이야기

공익을 위해 설립된 공기업이 제 역할은커녕 비리로 얼룩지고 있다. 도덕적 해이가 고스란히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잊을만하면 제기되는 공기업의 비리는 해마다 비슷한 레퍼토리로 반복되고 있지만 그 규모는 예년 같지 않다.

지난 7월24일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에 따르면 수사에 착수한 이후 공기업 40여 곳, 104명을 조사해 37명을 구속 기소하고 6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기소된 법인도 21곳에 달한다.

도덕적 해이 ‘상상 이상’

감사원과 검찰의 보고에 따르면 공기업의 비리·방만 경영은 일반 기업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다.

도로공사 직원은 무면허 업자에게 공사를 맡기는 조건으로 태국 ‘성매매’ 접대여행을 다녀왔고 근로복지공단 직원은 산재 보상금과 경매 배당금을 빼돌려 도박과 유흥비로 탕진했으나 공단은 자금회수 불능으로 허위 보고했다. 석유공사는 유가예측을 잘못해 싼값에 정부 비축유를 팔고 매각대금의 일부를 사내 복지기금으로 돌려 직원들의 개인연금으로 대줬다.

가스공사는 1가구 2주택 이상 보유자에게 7억원의 주택자금을 대출해줬고 철도공사는 2005~2007년 157억원어치의 무임승차권을 직원들에게 나눠줬는데 그중 69억원어치는 근무와 관계없는 공휴일 표였다.

공기업 비리는 대검 수사로도 끝나지 않았다. 지난 7월25일 경기지방경찰청은 설계용역 대가로 뇌물을 받은 주택공사 퇴직 간부를 구속하고 본사를 압수 수색했다. 수사 대상 직원만도 10여 명에 이를 것이라는 후문이다.
지금까지 간간히 공기업의 비리가 적발되곤 했지만 이쯤 되면 방만 경영이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 정·재계의 한 목소리다.

공기업 어떻게 신이 됐나

어째서 국내 공기업은 내부의 수많은 비리와 방만 경영을 방치는 것일까. 사실 이런 공기업의 행태는 매년 반복되는 사안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경쟁 없이 정부의 정책이나 공공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반 기업과 토양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한다. 이 관계자는 “사실 공공이익을 위한다고 국가에서 재정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고스란히 손실이 보전된다”며 “경영을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수익이 남는다 한들 주주에게 주어야할 이익도, 경쟁력을 위해 연구개발에 투자할 이유도 희박하다는 것이다. 물론 공기업의 사업을 민간 기업의 사업과 직접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사업 추진의 구체적인 바로미터인 실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맹점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예탁원의 경우는 막대한 이익을 챙겨서 돈잔치를 벌였다는 것이 감사원에 의해 드러났다. 예탁원이 증권예탁 및 결제 수수료로 남긴 이익은 고스란히 예탁원 임직원 품으로 들어갔다. 지난해 ‘경로효친 기념품 지원’으로 전직원에게 1인당 18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제공하는 등 모두 7억6700만원을 지급했다. 또 2003년부터 체육·문화행사 지원 명목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전 직원에게 21억원어치 상품권을 지급하기도 했다.

한국전기공사는 한술 더 떠 2006년 석유수입부담금을 보전 받고도 이를 다시 부가가치 항목 등에 가산하는 방식으로 고득점을 받아 216억원의 상여금을 과다 지급했다. 또 자회사에 전력구입비를 적게 지급해 자회사 영업이익을 줄이는 대신 자사 영업이익을 7504억원으로 늘려 683억원을 상여금으로 지급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그들만의 잔치’가 된 셈이다.

상황이 이러니 구직자들이 공기업에 줄을 서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일부 공기업의 경우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라는 삼성전자 직원 평균급여(연간 6021만원)보다 높다. 평균연봉이 7000만원을 넘는 공기업이 30곳이나 되고 1위인 예탁원의 경우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한다. 끊이지 않는 채용비리가 번번이 일어나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이번 공기업 감사 및 수사에서 예탁원 경영지원본부장과 인사팀장 등 5명은 직원채용과정에서 점수를 조작한 혐의로 구속 또는 불구속기소 됐다. 석탄공사도 광업소 과장, 초등학교 동창, 광업소 노동조합 대의원으로부터 채용을 부탁받고 4명을 채용한 사실이 감사에서 적발됐다. 비리를 통해서라도 들어가고 싶은 그야말로 ‘신의 직장’인 것이다.

이런 공기업의 방만경영 개혁은 수많은 정권에서 늘 화두가 돼왔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낙하산 인사’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전문성이 부족한 정치권 인사들이 낙하산을 타면 감독해야 할 정부와 공기업 간에 보이지 않는 봐주기와 타협의 고리가 생겨나게 된다다는 것. 공기업이 정치인의 민원을 들어주면 정치인이 정부에 압력을 넣게 정부의 감독기능이 약해진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내부시스템이 부실한 경우는 한국기계연구원에서 근무하는 연구원 유모씨 등의 사례처럼 6년간 22억여 원의 연구비를 횡령했는데도 방치된 사건에서도 볼 수 있다.

낙하산으로 상부상조(?)

공기업 비정규직 노조 한 관계자는 “무엇보다 낙하산 인사가 사내 입지가 약화시키는 만큼 내부적인 설득이 선행 된다”면서 “그 과정에서 가장 효용성 있는 것은 바로 ‘당근’이다”라고 주장했다. 정규직 노조 등 내부적으로 막대한 연봉과 특혜를 주면서 공기업 수장 인사에 대한 불만을 잠재운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때문에 공기업 노조의 분위기도 힘 있는 정치인 출신이 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한다. 심지어는 노조가 비리에 가담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는지적이다.
관례화 된 낙하산이 도마에 오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낙하산 인사로 인해 국가의 공적 자금이 투입돼 결국 구성원들의 배만 채운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현재 세간의 눈초리는 이런 ‘비리 백화점’ 오명을 쓴 공기업의 개혁에 맞춰져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7월30일 공기업 구조조정 등 공기업개혁을 다음 달부터 본격 실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공기업 개혁은 절대 늦춰서도 안되고 늦출 수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 공기업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이 이뤄져야한다는 요구가 들끓는 요즘, 차후 정부의 개혁 방안이 국민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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