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경영체제 본격 시동 / 경영능력 입증이 관건

“4대 그룹의 경우 그동안 기업인수와 증자를 통해 자산규모를 늘려와 이 과정에서 창업주 일가지분이 희석된 경우가 많아 3세로 경영권을 넘기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 “2, 3세 CEO는 일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경영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주력산업과 무관한 사업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다 그룹의 수익기반마저 무너뜨린 경우가 많다” 작년말부터 시작된 대기업 인사에서 오너 3세가 속속 경영일선에 등장하면서 재계판도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LG그룹의 계열분리가 마무리됐고 SK그룹이 소버린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데 성공한 가운데 사전포석으로 40대 임원승진이 두드러지고 있어 젊어지는 재계 권력지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경제전문가들은 파격승진을 통해 경영권을 물려받은 2, 3세는 일반적으로 경영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감행, 파국으로 치달았던 사례가 많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자산규모 상위 4대 그룹의 경우 총수일가의 지분이 낮아 적대적 M&A에 취약하기 때문에 경영권 방어에 대한 부담 역시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정부에서는 기존 재벌체제에서의 상호출자와 지급보증문제의 해소를 위해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을 적극 유도하고 있어 이들은 기업지배구조 변화까지 요구받고 있다. 따라서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업만이 글로벌 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 가운데 주요 대기업 3세 경영체제가 향후 한국경제에 또 다른 활력을 줄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재계 권력지도 확 바뀐다 최근 주요 대기업에는 오너 3세가 경영일선에 잇따라 등장하면서 실세 CEO로부터 지분을 물려받으며 지배권을 새롭게 강화하고 있어 재계의 권력지도를 획기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우선 국내 최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37)삼성전자 상무는 사실상 그룹 지주사인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로 부상한 가운데 작년에는 S-LCD의 등기이사로 선임됐다.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아직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등기임원으로는 선임되지 못했지만 그룹의 실세 CEO로서 3세 경영의 주역이라는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 기아자동차 정의선(35)부사장 역시 지난 2001년 상무로 선임된 데이어 2002년 전무, 2003년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왔다. 삼성그룹 방계인 CJ그룹의 경우 지난해 12월에 현 이재현(45)회장의 누나인 이미경(47)씨를 CJ엔터테인먼트와 CJ CGV, CJ미디어, CJ아메리카 담당 부회장으로 승진시킨 바 있다. CJ그룹의 신성장 사업부문을 총괄 경영을 맡게된 이미경 부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 제일비료 이맹희 전 회장의 장녀로 이들 남매가 3세 경영에 나서고 있다. 현대그룹 방계 INI스틸 계열의 BNG스틸에는 정주영 회장의 4남인 고 정몽우씨의 차남 정문선(35)씨가 재정담당이사로 영입돼 형 정일선(35)부사장과 함께 지배권을 강화하고 있다. 역시 현대그룹 방계인 현대백화점그룹도 작년 정지선 부회장과 정교선 기획담당이사가 각각 현대백화점 주식 215만주와 현대백화점H&S 주식 560만주를 넘겨받아 경영전면에 등장했다. 특히 정지선 부회장의 수증금액은 766억4800만원으로 작년 상장법인 주요주주 가운데 가장 많았으며 기획조정본부 정교선(31)기획담당이사와 함께 형제가 3세 경영체제 구축에 나섰다. 정교선 이사는 현대그룹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의 아들인 현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차남이며 장남 정지선(33)부회장은 현대백화점 지분율 15.72%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정지선 부회장은 지난 97년 과장으로 입사한 이래 초고속 승진을 통해 6년만에 부회장에 올랐으며 정교선 기획담당이사는 지난해 12월 그룹 정기인사에서 부장에서 이사로 승진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 현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외아들 조원태(29)차장이 경영전략본부 부팀장으로 입사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재계에서 3세 경영시대의 개막은 지난 8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두산그룹 창업주 고 박승직 씨의 장손인 현 두산건설 박용곤(73)회장이 그룹회장에 취임하면서 본격화된 바 있다. 특히 10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두산그룹은 4세가 경영일선에 등장하고 있는데 두산건설 박용곤 회장의 아들 ㈜두산상사BG 박정원(43)사장과 두산중공업 박지원(40)부사장 등이 있다. 아울러 두산그룹 현 박용오(68)회장의 아들인 두산산업개발 박중원(36)상무와 두산중공업 박용성(65)회장의 아들인 ㈜두산 박진원(36)상무 또한 4세 경영체제를 이끄는 주역들이다. 그러나 재계에 따르면 50∼60년 정도인 국내기업의 연혁을 감안할 때 실질적인 3세 경영은 지난 94년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취임을 시작으로 길어도 20여년을 넘지는 못하고 있다. ■ 4대 그룹 총수지분 낮아 한편 삼성·현대차·LG·SK 등 상위 4대 그룹의 경우 3세 경영체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총수지분율이 낮아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끌고 있다. 현대그룹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이른바 왕자의 난은 대표적인 사례로 결국 그룹이 분할되는 수순을 밟았는데 하위 그룹 승계과정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경영권 분쟁은 근본적으로 4대그룹 지분구조가 현행 법·제도상 총수지분만 일방적으로 늘리기 어렵고 증자에서 지분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총수 지분이 집중된 경우 지분증여가 쉽지만 낮은 지분율로는 사실상 계열사를 지배권 전체를 넘기는데 어려워 창업 2, 3세 경영승계과정에서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반증하듯 FY(회계연도)2003 주요 기업집단 총수일가 지분율은 삼성그룹이 4.71%, 현대차그룹은 4.75%, SK의 경우 2.04%에 불과하며 지분율이 높은 LG그룹도 7.82% 수준이다. 반면 자산규모 하위 그룹의 경우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아 CJ그룹이 17.73%, 효성은 23.82%, 신세계 26.95%, 현대백화점 23.47%, 현대산업개발 16.93%, KCC 40.56% 등으로 파악된다. 예외적으로 총수일가 지분이 4.37%인 두산이나 각각 3.50%와 5.30%의 지분율을 보이는 한화·한솔도 있지만 4대 그룹의 지분구조는 2, 3세의 경영승계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4대 그룹의 경우 그동안 기업인수와 증자를 통해 자산규모를 늘려왔다”며 “이 과정에서 창업주 일가지분이 희석된 경우가 많아 3세로 경영권을 넘기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자산규모가 적은 하위 그룹에서는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되고 있어 손쉽게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정부의 출자총액제한에 대해 재계가 지속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며 불필요한 규제라고 강조하는 배경에는 사실상 3세 경영승계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핵심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SK그룹 사례에서 보듯 총수의 지분율이 낮을 경우 심지어 외국계 투자펀드의 적대적 M&A대상이 될 가능성도 높은데 이에 대해 정부는 지주회사 설립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미 경영과 소유가 엄격히 분리돼 일족의 경영승계가 부재한 선진국에서는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계열사를 경영하는 것이 일반화돼있지만 국내에는 여전히 이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따라서 주요 대기업의 3세 경영승계 과정상 혼란은 결국 외환위기를 계기로 이미 정착된 정부의 선진적인 기업규제정책과 경영권의 일가지배를 고수하려는 입장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아무튼 지분구조의 취약성은 앞으로 전개될 대기업 경영승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재현될 가능성이 높은데 효율적인 기업경영과는 전혀 무관한 집안싸움만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취약한 총수일가 지분구조를 보완하고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확보키 위해서는 계열사들간에 복잡한 출자관계와 상호지급보증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 3세 경영체제…성공과 실패 이 같은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나타난 윤리적 문제와 편법상속에 대한 적법성 논란을 제외하더라도 국내기업 역사상 3세 경영체제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뚜렷한 명암을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인 실패사례는 쌍용·진로·해태그룹의 경우를 들 수 있는데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창업주의 2, 3세가 무리하게 사업확장을 시도하다가 결국 그룹의 몰락을 자초한 바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경영을 승계한 2, 3세 CEO는 일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경영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주력산업과 무관한 사업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기업경영환경에 따른 효율성 제고와 수익기반의 안정화는 외면하고 지나치게 외형확대에만 집착한 나머지 무리한 M&A로 수익기반마저 무너뜨린 결과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우선 재계서열 6위까지 올랐던 쌍용그룹의 경우 창업주의 2세인 김석원(60)회장이 국내 자동차시장의 성장한계에도 불구, 무리한 자동차산업 진출로 그룹 전체의 몰락을 자초했다. 지난 95년 등장한 쌍용자동차로 인한 부채는 그룹 전체에 3조4000억원에 이르는 부채를 안겨줬는데 97년 매각되고 1조7000억원의 부채를 떠 안은 주력계열사는 경영난으로 분해됐다. 또한 제과산업을 석권했던 해태그룹의 경우도 실패사례로 손꼽히는데 전자산업에 대한 무리한 진출로 인해 해태제과가 법정관리를 거쳐 경쟁사 크라운제과로 넘어가는 비운을 맞았다. 소주업계 1위로 유명한 진로그룹 역시 2세 경영체제로 전환되면서 공격적인 기업인수에 나서 유통산업 등의 진출전략이 실패해 법정관리체제를 거쳐 결국 올해 M&A 매물로 나왔다. 특히 독단적인 경영다각화 전략의 실패로 2, 3세 경영체제가 붕괴한 경우는 많지만 경영승계로 안정적 수익구조를 확보, 본궤도에 들어서는 사례는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심지어 충분한 경영수업을 받았다고 자부하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역시 독단적인 자동차산업 진출로 회사를 매각해야 했고 주력사 등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과오를 범한 바 있다. 아마도 재계에서 유일한 4세 경영체제의 두산그룹의 3세들이 신규사업 진출에 성공한 케이스라 할 수 있는데 최근에도 진로 인수를 추진할 만큼 공격적인 경영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성공배경에는 두산그룹 박용오(68)회장과 두산중공업 박용성(65)회장, 박용만(50)사장 등의 주도로 모기업 OB맥주의 매각을 통해 구조조정에 성공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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