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최대위기 직면 / 귀족노조 특권 버려야

“특혜와 특권이 있다면 다 반납하고 87년 절박했던 그 심정, 인간답게 살자고 외쳤던 그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위기와 고립으로부터 해방될 길이 열릴 것” / “대의원 선거에서 조합원이 후보에게 ‘당신이 당선되면 산재(産災)되도록 해줄 거냐’며 표를 흥정했다” 국내 노동운동은 지난 87년 5공화국의 정치적 권위가 퇴조하는 가운데 연이은 파업이 봇물을 이루면서 태동했다. 돌이켜보면 급속한 경제발전의 뒤안길에서 저임금에 따른 희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의 요구는 생존을 위한 거대투쟁으로 번져갔다. 벌써 17년이 지난 현재 노동운동은 기아차노조의 비정규직 채용비리를 비롯해 최근 노사정위 복귀를 둘러싸고 벌어진 민주노총의 내부분란 등으로 인해 사상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노동전문가들은 일련의 사태에 대한 이면에는 강성노조의 이미지를 무색케 하는 대기업노조중심의 노동귀족들의 특권의식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심지어 지난 3일 민노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인 민주노총의 내분사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최근에는 노동계 안팎에서 노사정위 복귀를 둘러싼 민주노총 계파간 내부분쟁에 대해 각성을 촉구하며 비리로 얼룩진 노동운동의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21일로 예정된 민주노총 집행부 재신임 투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타락한 노동귀족이 저지른 비리로 상처 입은 민주노조운동의 도덕성 회복이 핵심과제로 떠올랐다. ■ 귀족노조, 중간착취자 변신 산업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대기업 사업장에서 노조위원장은 막대한 노조비를 집행하고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정규직 임금을 받으며 심지어 전임자도 지원을 받는 등 특권이 상당하다. 노동귀족의 사전적 의미가 일반 노동자보다 고액·고율의 임금과 높은 지위를 얻고 생활양식이나 의식구조가 부유층과 같아진 특권적인 노동자층인 만큼 이들은 결국 노동귀족이다. 또한 의회나 기타 국가기관이나 공공단체 등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거나 보수를 받고 지배계급에 협력하는 관료화한 노동조합·사회민주주의 정당 등의 간부는 노동관료라고 불린다. 역사적으로 볼 때 노동귀족의 전형은 산업자본기의 영국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는데 일부 숙련공들이나 감독직에 있던 자가 자본가에게 매수되는 형태로 등장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세계적으로는 2차 대전이후 일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나 우익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국가나 공공단체의 의원·임직원 등이 되면서 자본가와 협력하는 경향이 대두돼왔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대기업 노조위원장은 실질적인 부사장급 대우를 받고 있을 정도로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각종 특권까지 행사해 급속히 부패돼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조합비 적립액만 수십억∼수백억원대에 이르고 있는 사업장도 많고 일부 노조간부들이 임의로 유용하거나 개인적인 유흥비로 사용하는 경우도 허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조비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사실상 웬만한 중소기업의 연간매출액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조합비 집행과정에서 이권에 개입, 뒷돈과 향응까지 요구하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노조에 전임자만 90여명에 이르고 조합비는 연간 60억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현재까지 조합비 적립액이 80억원규모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더욱이 노조위원장은 회사가 제공하는 그랜저XG를 사용하고 있으며 노조가 보유한 자동차는 산타페를 포함해 10대에 이르는 승합·승용차를 회사로부터 지원 받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총 산하 현장조합 관계자는 “일부 간부 중 조합비를 개인적인 세금을 내는데 사용하거나 부인이 운영하는 회사로 빼돌리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심지어 한 달에 6∼7차례나 룸살롱을 출입하는데 조합비를 사용해 비용처리에 곤욕을 치른 적도 있는데 대규모 노조의 경우 이들 비리가 사실상 은폐돼왔다”고 덧붙였다. 조합행사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한꺼번에 수천만∼수억원씩 조합비를 집행하면서 납품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리베이트를 요구하거나 향응을 제공받는 행위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비리를 은폐하고 특권을 확보하기 위해 위원장 선거는 경쟁이 치열하며 사전준비 역시 막대한 자금이 동원돼 매수행위로 이어지고 있다고 노동계 관계자는 전하고 있다. ■ 업무방해 등 불법행위 심각해 최근 불거진 기아차노조의 취업비리는 민주화이후 권력자로 탄생한 대기업노조의 도덕성 상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로 그동안 투쟁위주의 강성이미지로 윤색됐던 본질을 드러냈다. 재계 일각에서는 지난 17년간 노동운동의 성장과 함께 대기업노조가 비대화돼 기업의 고유권한으로 인정받는 인사에까지 개입하는 등 경영권이 크게 훼손됐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국내 대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대기업노조는 강해진 권력을 바탕으로 회사측에 무리한 요구와 경영권 침해를 일삼고 있으며 이권사업은 물론 공공연한 비리까지 저지르고 있다. 실례로 모 자동차회사는 공장 이전이나 신규설비 도입까지 노조와 합의를 거치도록 단체협약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이전과 신규설비 도입시 6개월전에 통보하고 합의를 해야만 한다. 최근 분규를 겪고 있는 업체 가운데는 신규투자와 한계사업 포기를 요구하는 노조에 맞서 경영진이 곤혹스러운 상황인데 업무방해금지가처분신청에도 불구, 불법행위가 여전하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모 업체의 경우 노사합의를 통해 신기술 도입과 신차종 개발 등 회사 경영진이 전략적으로 판단, 추진해야 할 사항까지 단독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사실상 투자, 연구개발 등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핵심 사안에 있어서도 노조가 조직적으로 개입, 압력차원을 넘어 경영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대내외적으로 극비사항인 영업비밀을 노조에 미리 통보한다는 것은 비밀누출 우려는 물론 기업들의 투자를 제약하고 있는 중대한 걸림돌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실어주고 있다. 이번 채용비리로 지탄을 받고 있는 기아차 역시 노조의 사전동의 없이 공장 이전이나 통폐합, 사업장간 차종이관, 지점이전·통폐합, 인력 전환배치를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상태이다. 더욱이 신차종의 개발 및 신기술이나 새로운 기계설비를 도입하면서 작업환경의 개선을 요구받고 있는데 심지어 시간당 생산대수 조정까지도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항목이다. 이와 관련 경제단체 관계자는 “자동차는 물론 조선·중공업 등의 제조업종의 경우 대부분 단체협약에 유사조항이 포함돼 있으며 노조에 밀려 암묵적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반 국민이라면 ‘상대적 약자인 노동자가 설마’하고 생각하겠지만 현장에서 노조에 의해 벌어지는 경영권 침해사례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다양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기업의 투자나 인사 등 경영상 중대한 결정까지 제약하고 있는 단체협약 조항이나 관행에 대해 일각에서는 근로조건 악화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보는 긍정적 견해도 있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이 같은 노조의 경영권 침해는 기업의 의사결정을 무력화시켜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가운데 글로벌 경쟁시대에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며 우려하고 있다. ■ 환골탈태…가능한가? 따라서 기아차 광주공장 채용비리로 노동운동의 도덕성은 이미 여론의 심판대에 올랐는데 최근 현대차노조 부위원장을 지낸 하부영(44)씨가 자성을 촉구하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특혜와 특권이 있다면 다 반납하고 87년 절박했던 그 심정, 인간답게 살자고 외쳤던 그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위기와 고립으로부터 해방될 길이 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씨는 또 “대의원 선거에서 조합원이 후보에게 ‘당신이 당선되면 산재(産災)되도록 해 줄 거냐’며 표를 흥정했다”고 지적하며 정치권 못지 않은 부정행위가 있음을 시인했다. 이와 관련 대기업노조가 앞으로 국민적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조합비를 비롯한 재정집행의 투명성과 적법한 조합활동에 따른 건강성이 갖춰져야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기존 조합간부의 전횡을 막을 만한 견제시스템이 불비한 상태로는 앞으로 노동자 권익보호는 물론 독립적이고 정당한 활동마저 벽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이 노동전문가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는 “노동조합의 재정 집행과 활동 등에 대한 투명성이 확보돼야만 사용자에 대한 요구가 정당성을 갖게 된다”며 “조합활동에도 객관성과 독립성을 갖춘 견제장치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대기업 노조의 회계 투명성의 경우 막대한 권한에 비해 외부견제시스템이 없는 만큼 외부감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우선 상급단체에 의해서라도 정기적인 감사와 징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일각에서는 현재 단위노조로 집중화된 권한을 지역이나 산별노조로 전환해 조합활동과 관련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방안도 이제 고려해볼 때라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향후 노조간부가 조합활동과 관련해서 권리남용 등 위법·불법행위를 하는 경우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제재를 강화토록 법적·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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