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40조원규모…거대기업만 20여개

“이제 국내기업들도 외국인 인수합병에 대한 우물안식의 폐쇄적 사고를 버리고 개방적 자세로 나서야 한다” “일부에서 ‘외국자본이 민족자본을 사 갔다’며 유감이나 우려를 표명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통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2005년 새해를 맞아 한국경제의 화두는 단연 40조원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M&A(기업인수·합병)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 외환위기 당시를 전후로 채권단의 공동관리에 따른 워크아웃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던 거대 부실기업들이 이제야 기업개선작업을 완료하고 속속 독자경영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서는 지난 10일 제일은행이 영국계 SCB(스탠다드차터드은행)에 매각되고 지난 5년간 워크아웃을 마친 쌍용자동차 역시 지난 27일 중국 상하이기차집단(上海汽車集團)에 최종 인수됐다. 이후에는 진로나 대한통운 등 유망업체들은 물론 자산규모 62조원의 거대 금융기관인 외환은행까지 M&A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된다. 한편 SK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치열한 공방을 계기로 적대적 M&A가 새 이슈로 부상하고 있으며 경영권 경쟁사례 역시 앞으로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불황에 떠밀려 기로에 선 한국경제를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올해 국내 M&A시장을 분석, 조망해 본다. ■ 20여개 거대기업 둘러싸고 ‘대격전’ 경제전문가들에 따르면 올해는 IMF 외환위기 당시 부실경영으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끝내고 대거 매물로 나오는 만큼 M&A시장이 크게 활성화될 전망이다. 특히 막대한 매각차익 실현을 노리는 외국계 투자펀드와 국내산업 재편에 역점을 두고있는국내 대기업들의 야심적인 경영전략이 맞물리면서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된다. 실제로 지난 10일 미국계 투자펀드 뉴브리지 캐피털은 제일은행을 영국계 은행인 SCB(스탠다드차터드 은행)에 매각해 총 1조1500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매각차익을 실현했는데 지난 2000년 5000억원을 투자한 것에 비해 5년만에 엄청난 수익을 챙긴 셈이다. 연이어 대우그룹 계열사였던 대우종합기계가 두산중공업에 최종 인수됨으로써 연속적인 대규모 M&A가 성사됐는데 최근에는 쌍용자동차의 경영권이 우여곡절 끝에 중국 상하이기차집단으로 넘어갔다. 대우종합기계의 경우 최종 매각가격은 대략 1조6000억원에서 최대 1조8000억원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며 쌍용차의 경우 지난 전체지분 가운데 48.9%의 인수금액인 5900억원을 채권단에 지불함으로써 쌍용차의 최대 주주가 됐다. 앞으로도 연이은 대규모 M&A거래가 기다리고 있는데 현재 시장에 매물로 나왔거나 매각이 예정된 주요기업은 제조업체와 금융기관 등을 합쳐 2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재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회사들 가운데는 대우그룹의 해체로 인해 각자 별도의 워크아웃이 진행돼왔던 구 대우그룹 계열사들이 상당수 포함돼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미 두산중공업에 인수된 대우종합기계 이외에도 대우건설,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조선해양, 대우정밀 등 구 대우그룹의 간판기업으로 주로 대규모 제조업체들이 매물로 나오게 된다. 아울러 각종 업계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우량 기업들 역시 매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소주업계 1위인 진로와 물류업계의 대한통운, 구 현대그룹 모기업 현대건설 등의 향배는 단순 투자차원을 넘어 해당 산업체제의 재편까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만큼 재계 판도의 변화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역시 자산규모가 각각 62조원과 122조원에 이르는 외환은행과 우리은행 등 대형 시중은행은 물론 신용카드업계 2위인 LG카드, 대한투신, 한국투신 등 금융회사들이 속속 매물로 나오게 된다. ■ 한국 M&A시장 급성장 기대 증권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과 공동채권단에 의한 워크아웃 진행으로 건실해진 회사들 상당수가 매각리스트에 오르면서 전체시장규모는 적어도 4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와 관련 한 M&A 전문가는 “진로나 대한통운을 비롯한 대규모 거래의 경우 올 연말까지는 대략 완료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국내 M&A시장은 금년에 최대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금년에 대규모 M&A가 성사된 다음에는 금액측면에서 M&A시장이 다소 위축될 수 있지만 향후 중소형 거래 역시 꾸준하게 전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국내 M&A시장규모는 지난 2001년 13조5000억원이던 것이 2002년에는 15조3000억원, 2003년에는 32조8000억원에 이르는 등 수년동안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내용측면에서 보더라도 IMF 외환위기 이전과 획기적으로 달라져 재벌의 문어발식 계열사 늘리기에만 활용되던 M&A가 이제는 기업경영의 일상적인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를 반증하듯 외국계 투자펀드들은 매각차익 실현을 목표로 부실기업을 인수, 구조조정과 각종 선진기법을 동원한 경영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상당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한 민간경제연구소에서 실시한 학계 설문조사에 따르면 외국계 투자펀드의 국내M&A 시장 진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결과가 나온 것은 이 같은 인식전환을 나타내주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국내학계에서 다소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하지만 기업경영 투명성이 높아지고 책임경영이 확산되는 등 M&A시장 성장이 결국 국내경제에도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반면 건실한 기업 상당수가 외국자본에 넘어가 국내경제에는 실익이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미 글로벌 경제기준에 맞춰진 경제상황에서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오히려 지난해말 정부에 의해 전격 도입돼 아직 시행초기에 있는 사모투자펀드(PEF:Private Equity Fund)가 활성화되면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시각 또한 높은 상황이다. ■ 일부 왜곡된 시각 재고해야 따라서 경제전문가들은 국내 M&A시장의 급성장에 발맞춰 이제는 과거와 달리 외국자본의 M&A에 대한 왜곡된 시각과 고정관념이 해소돼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경영자총협회 CEO 연찬회에서 이수영 회장은 구태의연한 민족기업 개념에서 벗어나 기업구조 개편차원의 합리적인 방향을 모색하자는 의견을 제기한 바 있다. 이 회장은 강연을 통해 “이제 국내기업들도 외국인 인수합병에 대한 우물안식의 폐쇄적 사고를 버리고 개방적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스탠다드차터드은행의 제일은행 인수에 대해 “일부에서 외국자본이 민족자본을 사갔다며 유감이나 우려를 표명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통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미국에서는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제2차 M&A 붐을 통해 수많은 기업들이 결합과 분산 과정을 겪었는데 회사경영에 대한 끊임없는 긴장감을 불어넣어 준다는 측면에서 기업들이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또 “한국의 기업 문화 속에는 아직도 내 기업을 딴 사람한테 맡길 수 없다는 식의 편협한 인식이 팽배해 있지만 이제는 M&A를 엄연한 세계적 추세로 받아들이고 열린 마음으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M&A가 단지 투자자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성장과정에서 산업구조 및 경영을 건실화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내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과거 과잉 중복투자로 인한 산업재편이 필요했던 시기에 정부가 일방적으로 이를 구조조정을 주도하던 데서 이제는 시장상황과 흐름에 맡길 시기가 왔다”고 언급했다. 더욱이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와 같이 정경유착이나 부실경영 은폐로 일관할 경우 시장에서 자연히 도태돼 경영자, 주주, 노동자 모두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도 국내 금융시스템이 이미 구미와 일본 등 선진국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고 정책기조 역시 일방적인 간섭이 아닌 투명한 경영과 신뢰를 바탕으로 기업경영을 지원하는 체제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구 재벌체제에서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을 유도하며 근본적으로 경영권 방어에 취약한 상호지급보증 해소 등에도 역점을 두고 있는 정책방향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 재계, 정책지원 필요성 제기 그러나 여전히 재계와 금융권은 취약한 국내자본시장 상황에서 무분별한 외국계 투자펀드에 의한 M&A시장 교란 가능성을 제기하며 정책적인 지원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오고 있다. 우선 자금동원능력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긴 하지만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같이 외국기업에 비해 내국기업을 역차별하는 규제들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최근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논란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SK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적대적 M&A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모습을 보인 국내기업 경영자들의 위기감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관련 한 경제단체 간부는 “정부가 경영권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규제를 대폭 풀어야 한다”며 “특히 총자산 5조원대를 넘나드는 중견그룹의 경우 자산기준 완화는 더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중견기업 대부분이 출자총액제한에 발이 묶여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M&A를 통해 경쟁력 확보가 절실한 기업들은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미 개방된 자본시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업과 금융기관 매각을 외국계와 대항할 토종자본을 육성한 다음으로 늦춰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더불어 외국계 투기자본의 적대적 M&A 시도를 적절히 방어할 수단이 마련될 수 있도록 정부당국의 정책적인 지원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 것도 현실이다. 우선 재계는 현재 법적으로 허용된 차등의결권주식제도와 제3자 신주인수권 부여사유 확대, 공개매수기관 의결권 관련 증권발행 허용, 의무공개매수제도 수정 재도입 등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재계는 최근 특정기업 주식을 한 주만 갖고 있어도 해당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 있는 황금주(Golden Share)를 비롯한 적대적 M&A 방어수단을 도입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 불황에 떠밀려 기로에서 선 한국경제의 회생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M&A시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하며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경영권 싸움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묘책도 이제는 깊이 고려해봐야 할 시점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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