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논란

재계, “출자총액제한 요건인 자산총액 기준이나 부채비율 100%기준 등은 하나도 손대지 않아 기업에 선물은 사실상 없다” 공정위, “동종업종 적용제외요건 개선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 최근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둘러싸고 공정거래위원회와 재계간 논란이 한창이다. 특히 작년말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인해 대기업 규제의 기본 골격이 유지되는 가운데 시행령에 따른 출자총액제한기준 조정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재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일단 재계와의 협의 가능성을 내비쳤으나 막상 쟁점이 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해서는 변경할 수 없다고 밝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둘러싼 2라운드 협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가고 있다. ■ 공정위 출자총액제한기준 현행유지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8일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과 관련, 재계가 요구하고 있는 출자총액이 제한되는 기업집단의 자산총액 5조원의 현행기준을 변경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반면 재계요구사항 가운데는 동종업종 적용제외 요건 개선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밝혀 선별적인 일부 개선 여지는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10개 대기업 관계자들은 이날 오전 전경련회관에서 정책간담회를 갖고,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중심으로 시행령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설명했다. 간담회에는 정부측에서 이동규 공정위 정책국장과 장항석 독점국장이 참석했으며 재계에서는 이규황 전경련 전무를 비롯해 삼성 정병기 상무, LG 이혁주 상무, 현대차 배원기 이사, SK 장진원 상무 등 10여개 그룹 임원들이 참석, 입장을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번 시행령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하고 재계의 이해를 당부했으며 재계는 기업들의 위축된 투자심리 활성화시키기 위해 반드시 출자총액제한기준 완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계가 요청한 규제완화 내용에는 출자총액제한기준을 현행 자산기준 5조원에서 20조원으로 상향조정하며 지배구조 모범기업 요건의 확대 적용 및 기업결합에 따른 부채비율기준 졸업요건 3년 연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이동규 정책국장은 “자산규모 5조원 기준을 상향조정하는 문제는 지난해 공정거래법 개정시 이미 논의했던 부분으로 시장개혁 로드맵에도 나와있는 만큼 시행령 입법예고안을 그래도 유지해야 하지 않느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국장은 또 “지주회사 자회사 주식가액 산정방식의 개선요구에 대해서는 취득당시 가격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사항은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는 결국 주식가격 상승으로 인해 현재 삼성그룹의 지주회사요건에 해당하는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을 취득당시 가격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재계는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주식가액이 변동해 의도와는 달리 지주회사 요건에 해당될 우려가 있으며 지주회사가 될 경우 부채비율 100% 충족 및 자회사 지분요건 등 경영활동에 큰 제약이 있다며 주식가액 산정방법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소유지분 괴리가 있더라도 산정시 소유지분에 간접지분을 포함해 달라는 재계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지만 소유지분 괴리도를 계산하는 방식이 복잡해 개선작업이 쉽지 않다며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반면 공정위는 동종업종 적용제외 요건의 경우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인데 재계는 출자회사가 신설법인인 경우 실적이 없어 매출액 비중, 거래금액 등 적용제외 요건을 충족하기가 불가능해 동종업종으로의 투자확대가 곤란하다며 제도보완을 요구했다. 한편 공정위는 오는 2월3일 대한상공회의소 주관으로 공청회를 개최에 이어 4일에는 대한상의 상근 부회장단과 오찬 간담회가 잡혀있으며 개별 그룹과 협의채널 가동해 지속적인 제도보완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기로 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과연 시행령에는 무엇이 포함됐나 지난 24일 공정위가 마련해 입법예고한 시행령 개정안의 핵심내용은 출자총액제한 졸업기준을 구체화하고 비상장사 공시 강화, 지주회사제 보완, 담합행위 금지제도 보완 등이다. 특히 재계의 불만을 사고 있는 점은 비상장·비등록 기업이라도 의무 공시내용을 강화해 기업의 경영활동에 제약이 가해지고 정부의 감시가 강화된다는 데 다른 것으로 파악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우선 출자총액제한 대상기업의 졸업기준에는 집중투표제 도입과 서면투표제 도입·시행, 내부거래위원회 설치·운영은 물론 사외이사후보 추천위원회와 사외이사 후보추천자문단 설치·운영 등의 요건 가운데 세가지 이상 시행해야 한다. 또한 지배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소유지분율과 의결지분율간의 차이가 25%P 이하이고 상대적으로 비율이 3.0배 이하인 기업이 졸업요건 해당하게 된다. 개정안은 현물출자·영업양도, 물적분할, 임직원 분사회사 출자 등에 대해서는 예외인정도 부활되는데 신규산업 출자확대 유도차원에서 신규산업 매출액 비중을 기존 50%에서 30%로 완화하고 신설법인의 경우 매출 발생시점까지 1년간 매출액 요건이 유예된다. 만약 벤처기업이라면 전체주식 수의 30% 미만 출자에서 50% 미만으로 예외 적용범위가 넓어져 혜택이 늘어나게되는 만큼 벤처산업에 대한 지원은 강화된다. 또 관심을 끄는 대목은 비상장·비등록기업의 공시의무 강화로 자산 2조원이상 그룹의 비상장·비등록 기업인 경우라도 앞으로 출자구조·재무구조·주요 경영사항을 공시해야 하지만 채무보증요건에서 산업합리화 채무보증은 제외된다. 아울러 지주회사의 손자회사 지배허용 범위가 늘어나 사업관련성이 밀접한 회사에 대해서만 인정이 되는 현행 규정에서 서비스업으로까지 적용범위가 확대되며 기업결합 심사제도 역시 신고절차가 사후신고에서 사전신고로 강화된다. 또한 담합에 의한 카르텔을 차단하기 위해 과징금 부과율을 현행 관련 매출액의 5%, 정액과징금 10억원에서 매출액의 10%, 정액과징금 20억원으로 각각 상향조정했다. 이와 함께 자진신고 유도를 위해 최초신고자에 대해서는 과징금 및 시정조치를 모두 면제하고 두 번째 신고자는 과징금의 30%를 줄여주고 3번째 이후 신고는 감면혜택이 없어진다. 이밖에도 시행령 개정안에는 신고포상제도가 신설돼 담합과 불공정 하도급을 비롯한 신고를 적극 유도하며 경쟁제한적인 법령을 고칠 경우 의견 반영여부를 확인하는 장치도 마련된다. ■ LG·주공 등 10개사 출자총액제한 졸업 한편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포스코, 한진, 현대중공업, 신세계, LG전선, LG 등 민간업체 6개사와 주공, 도공, 가스공사, 토지공사 등 공기업 4개사가 출자총액제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와 관련 이동규 정책국장은 “삼성, 포스코, 롯데,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 등 5개 기업집단은 부채비율 졸업기준 폐지로 인해 다시 출자총액제한 대상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포스코의 경우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규정하고 있는 졸업기준에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나 앞으로는 출자총액제한이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GS홀딩스를 비롯한 계열분리가 이뤄진 LG그룹은 지난해 지주회사 설립시에는 출자총액제한 대상에서 제외하는 개정 공정거래법에 따라 규제가 확실히 풀릴 것으로 보인다. ■ 재계, 투자심리 회복 어렵다 이번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취지에도 따라 정부는 기존 경쟁정책의 기조를 변경하지 않을 방침임을 분명히 하고 있어 재계는 개정안 내용에 실망한 표정이 역력한 것으로 파악된다. 심지어 시행령 개정안에 재계가 강력하게 주장했던 내용은 거의 반영되지 않자 정부가 과연 경기회복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 반문하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출자총액제한 요건인 자산총액 기준이나 부채비율 100% 기준 등은 하나도 손대지 않아 기업에 선물은 사실상 없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는 “출자총액제한 대상에서 제외되는 새로운 졸업기준도 공기업과 민간기업을 동일한 잣대로 적용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민간기업에 대한 거의 혜택이 없고 질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규제는 강화된 셈”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공정위는 이번 개정안 입법예고를 통해 각종 의견을 수렴하고 2월15일부터 28일까지 심사를 거쳐 3월17일과 22일로 예정된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이후 28일 공포할 계획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정부가 기업집단체제에서 지주회사 설립을 유도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는 정책방향에는 공감하지만 현재 시급한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재계의 주장을 일부분이라도 반영하려는 전향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강철규 위원장이 당초 일부 보완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이를 반대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직후 번복한 것은 큰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공정위나 재계 모두 각자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는 것보다는 국가경제에 보다 긍정적인 방향에서 혜안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