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에 의한 역사파괴는 막아야” VS “뜨거운 감자일 뿐 이미 결정된 사항”

- 김형오 의원, 40년 지기 유홍준 문화재청장에게 '공개서한' - 문화재청이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친필 한글 현판을 조선 정조(正祖)의 글씨 현판으로 교체키로 한데 대해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낸 김형오(金炯旿) 의원(부산 영도)이 26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유홍준(兪弘濬) 문화재청장에게 “‘광화문’ 현판 내려야하나”라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에 대해 유 청장은 27일 서울대학교 동기생으로 40년 지기인 김 의원에게 답신을 통해 ‘광화문 현판 교체’의 강행의지 시사함에 따라 공개서한으로 찬반 공방을 벌였다. "광화문 현판 내리는 것 납득하기 어렵다" 김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공개서한에서 "자랑스런 대학동창에게 이렇게 긴 글을 보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서울대학교 67학번 동기인 유 청장에게 "편하게 '자네'라고 부르고 싶지만 오늘은 개인적 관계를 넘어서 공적 영역의 얘기를 하고 싶어 '유청장'이라고 부르겠다"고 글의 첫머리를 시작했다. 그는 "유청장, 정말 다가오는 광복절 날 '광화문' 현판을 교체하려고 하는가"라며 "왜 하필 이때냐고 국민들은 많은 의문을 표시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광화문을 새로 축조한 것도 아니고 원형대로 복구한 것도 아닌데 유독 현판을 왜 바꾸려하는지 국민들은 선뜻 이해를 못하는 것 같다"며 "대한민국 서울의 중심, 대로중앙의 '랜드마크'나 다름없는 광화문 현판을 갑작스럽게 바꿔치기 하려는 의도에 대해 모두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하기 시작했다. 김 의원은 "왜 하필 정조글씨인가. 그것도 정조의 글씨를 집자해서 '억지 현판'을 걸겠다는 발상은 별로 문화스럽지 못하다"며 "물론 유청장이 노대통령을 정조로 비유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일부의 주장에 저는 동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생각해보면 '광화문'의 한글 현판은 당시로서 매우 파격적이고 혁명적이었다"며 "그런데 이것을 원상복구 현판도 아닌 정조의 글씨로 집자해서 '가짜현판'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위험천만한 반역사적 발상이 아닌지 두렵기조차 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그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든,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든 그 글씨가 누구의 것이든 '광화문' 현판은 현재의 광화문 건물의 중건과 함께 버젓이 걸렸고 30년 이상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울의 문패 역할을 해왔다"며 광화문 현판의 역사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유청장, 이제 냉정히 우리 역사를 지켜주셔야 한다"며 "잘한 것은 잘한대로, 못한 것은 못한 대로 평가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 "어떠한 경우라도 승자에 의한 역사파괴는 막아야 한다"며 "우리가 역사를 사랑하지 못하고 존경하지 못하는 것도 결국 승자에 의한 역사왜곡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여권의 과거사 진상 규명을 비난했다. 그는 "최근 부상하고 있는 과거사 문제는 정치권의 회오리일 수 있다"며 "그러나 문화재 관리는 현재의 정치적 이슈에서 한발 물러나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 고고한 작업이라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유 청장, "광화문 현판 교체는 1997년에 이미 결정" 김 의원의 서한에 대해 유 청장은 27일 "광화문 현판 교체는 이미 1997년에 결정된 사항"이라는 내용의 답신을 보내 ‘현판 교체’의 강행의사를 전달했다. 이 편지에서 유 청장은 "광화문 현판 교체는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1997년 경복궁 복원 계획 속에 들어 있던 것으로 2003년도 공청회도 거친 사항이다"며 "다만 그것이 `뜨거운 감자'여서 누구도 잘 건드리지 않고 미루어져 온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올 8.15 광복 60주년 행사가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에서 열리게 될 예정이어서 (현판 교체를) 불가피 시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덧붙였다. 정조 글씨로 현판을 교체 하느냐에 대해 유 청장은 "그것은 여러 안(案) 중 하나"이며 ▲현역 대표 서예가의 글씨 ▲조선왕조의 대표적 서예가의 글씨 집자 ▲임금 글씨, 즉, 어필(御筆) 중 하나를 택하는 세 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역 대표 서예가는 여초 김응현 선생인데 현재 병중이고, 한석봉과 추사 김정희 글씨를 집자하고 있다"며 어필은 조선시대 왕들이 많은 글씨를 남기지 않아 "`光化門' 세 글자의 집자 가능한 분은 정조대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훈민정음 집자도 생각했으나 실패했다"면서 "정조는 경복궁과 인연이 없으나 조선왕조의 명군(名君)이고 글씨도 품격이 있어 어필 안으로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유 청장은 "언론이 내가 노 대통령을 정조와 비교했던 일을 연상하며 나를 `아부쟁이' 내지 `어용학자'로 몰고 있다"면서 "진짜 (대통령이) 개혁을 하시려면 정조를 통해 개혁을 배우십시오"라는 의미였고 “관계 저서까지 (대통령)에게 보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내가 뭐가 아쉬워서 대통령에게 아부를 합니까. 아부를 하려면 대통령이 내게 일 잘해 달라고 부탁을 해야지"라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또 "문화재청이 관리하고 있는 아산 현충사, 이것은 이순신 장군 사당이라기보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같은 곳"이기 때문에 "저는 이곳을 손보거나 (박 전 대통령 친필인) 현판을 떼 내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청장은 끝으로 "35년 전 대학 3학년 때 무전여행 중 부산 영도의 아담한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며 자네 어머니가 손에 쥐어준 여비로 경부선 기차를 탔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서울에 돌아와 내가 받은 것은 무기정학 통보서였답니다. 그때 나는 눈을 감고 세상에 대해 스스로 맹세했습니다. 이 `빨간 증서'는 결코 부끄럽게 세상을 살아가지 말고 시대가 요구하는 ‘지조 있는 선비’의 길로 가자고"라고 말을 맺으면서 유 청장 자신의 행위를 “(세상사람들은)비속한 정치적 행위로 보려는 것이 서운하다”며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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