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전 뉴스로 돌아가는 치욕을...

지겹게 꼴 보기 싫은 인간이 있다고 하자. 뭐라고 부르는가. 눈에 가시라고 한다. 꿈에 보일까 두렵다고도 한다. 좀 더 심하게는 ‘귀신도 뭘 먹고 사느냐’고도 한다.

이렇게 미움을 받고 사는 사람이 행복할 수 없다. 이렇게 미워하는 사람도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워하는 사람도, 미움을 받는 사람도 이유는 있다. 문제는 그 이유가 보편타성성이 있고 상식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옳고 그른지 판단되기 때문이다.

요즘 정부 눈의 가시 꼴이 된 사람이 KBS 사장 정연주다.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세상 돌아가는데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정연주의 거취를 주목한다.

눈에 가시가 된 이유가 뭐냐면 간단하다. 이명박 정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정연주를 쫓아내려고 하는데 참 구질구질하다.

군사독재 시절처럼 잡아다가 주리를 틀어 무조건 내쫓으면 간단한데 지금이 어느 세상인가. 진짜 지긋지긋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한 이유가 바로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고 믿는 현 정부의 실세가 있는데 자신은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잡아떼지만 대통령의 멘토라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한 말임은 세상이 다 안다. KBS 김금수 이시장을 만나서도 정연주 퇴진의 지혜를 구했다고도 한다.

최시중은 자기도 70년 80년대의 언론자유를 위해 기여를 했는데 그런 내가 언론자유를 훼손하겠느냐고 했다.

참 대견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걸 사실로 인정받으려면 지금 정연주 몰아내기를 막는데 앞장 서야한다. 대통령 멘토의 영향력으로 정연주 사장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KBS 김금수 이사장이 자신과의 대화가 알려져 그 부담으로 사표를 냈다면 최시중은 말려야 한다. 그래야 친구의 도리가 아닌가.

뿐만이 아니다. 그가 방통위원장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하락이 KBS의 정연주 탓”이라고 믿는다면 첫째는 정말 세상 민심 모르는 사람이고 둘째는 KBS구성원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다. 셋째는 방통위원장 자격이 없다.

날더러 뭘 알기에 떠드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겠다. 5.16 쿠데타 다음 해부터 나는 KBS에서 독재에 아첨하는 온갖 비겁한 글 다 쓰면서 살았으니 시시콜콜 알건 다 안다.

오장 다 빼버리고 치사하게 먹고 살았다. 그 때 내가 쓴 글 얘기만 하면 난 얼굴 못 든다. 찍소리 못한다. 지금 이나마 지껄여대는 것은 노무현 만나 사람 됐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개과천선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신지지 방송을 해야 하던 KBS 구성원들이 얼굴을 못 들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고 땡전뉴스를 방송하던 앵커가 지금은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다녀도 그 때 욕이 무서워 아예 귀를 닫고 살았다.

기자들은 시민들에게 KBS 기자 명함을 못 내밀고 엉뚱하게 남의 언론사 팔고 다녔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그 같은 수모를 겪으면서 방송통폐합을 겪었고 해직이 됐고 90년 4월 언론민주화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공정한 방송으로 지금 뿌리를 내렸다.

KBS 구성원들은 지금도 기억할 것이다. 37일간 제작거부파업이라는 언론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이임호 기자는 순직했다. 장례식 날 KBS 기자들은 모두 울었다. 모두가 이임호 기자를 가슴에 묻었다. 그 같은 처절한 투쟁 끝에 쟁취한 민주방송이다.

참여정부 아래서 잠시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고문을 지냈다는 이유로 서동구 사장을 거부했고 그는 사퇴했다. 다음 정연주 사장이 취임했다.

이제 정부는 정연주 사장을 내 쫓으려고 한다. 과연 정연주는 내 쫓겨야 할 허물이 있는 인물인가. 세상이 다 알지만 다시 한 번 짚어보자. 정연주는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이다. 망명처럼 미국으로 가서 한겨레 주미특파원으로 줄기차게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이다. 세상이 다 아는 민주언론을 위해 싸운 인물이다.

정부가 벌리는 정연주 쫓아내기가 왜 부당한가. 왜 KBS가 정연주를 지켜야 하는가. 우선 옳지 않기 때문이다.

정연주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졌는가. 정말 국민을 졸로 아는 인간들이다. 광우병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쇠고기를 온 갓 불리한 조건 다 받아드리고 수입하겠다는데 ‘땡큐’ 하면서 받아드려야 한다고 방송을 해야 KBS가 좋은 방송이며 정연주가 좋은 사장인가.

뻔뻔스럽게 이런 방송을 할 때 KBS 시청료 거부운동을 전개하고 사장인 정연주를 몰아내라고 KBS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이 제대로 된 국민이다.

KBS는 국민이 알아야 할 문제를 방송했고 국민은 공감을 했고 그래서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미국 사람들은 24개월 미만 된 쇠고기만 먹는다는데 우리 국민은 광우병 위험이 있는 30개월 이상 된 고기도 수입해 먹어야 한다니 이런 환장할 정부가 어디 있단 말인가.

화풀이를 하려면 정연주가 아니라 국민한테 해야 한다. 멍청하게 정부가 발표하는 걸 믿지 못하고 왜 KBS를 믿느냐고 국민을 욕해라.

차라리 정부가 솔직했으면 좋겠다. 정연주는 노무현 정부가 임명을 했고 KBS는 공정보도니 뭐니 해서 정부에 불리한 보도도 겁 없이 해 대니 욕 좀 먹더라도 사장 정연주를 갈아 치우는 게 본심이라고 말이다.

거기다가 이미 사장후보 감도 정해져 있지 않은가. KBS <미디어포카스>는 청와대 곽경수 비서관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 (곽경수 비서관) '지금의 KBS로는 되지 않는다. 김모 선배로 갈 수밖에 없다'고 느닷없는 발언을 했다… 청와대가 KBS 사장 만들어내는 데냐”는 질타에도 그는 당당하게 '지금으로는 안 된다. 김모 선배밖에 대안이 없다'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여기서 거론된 김모 씨는 김인규 전 KBS 이사입니다.’

김인규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방송전략실장으로 선거운동을 이끌었다. 청와대 비서관은 미디어포커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술자리에서 그런 대화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솔직하지 못하다.

[녹취] 곽경수(청와대 언론2 비서관) : "제가 저기 손관수 기자를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 제가 기억이 없고요. 그런 얘기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없어요… 대답하기에는 조금 적절치 않네요."

머리가 참 ‘대단히 알뜰한’ 비서관이다. ‘기자를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 그런 얘길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없어요.’ 라는 수준의 머리로 무슨 언론 비서관인가. 사표를 내는 게 이명박 정권 지지율 덜 떨어트리는 일이라 생각한다.

KBS 이사장을 한 김금수라는 사람이 있다. 노동계에서 매우 존경받던 사람이다. 이번에 다 까먹었다. 그에게 지면 할애 하는 것이 창피하다. 자식들 보기 민망할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살아 온대로 살아야 한다. 이번에 꼴이 뭔가. 오랜 친구라는 최시중 위원장이 정연주 사장 몰아내는데 협조하라면 그 자리에서 야단을 처야 된다.

친구가 잘못된 일을 하는데 당연히 충고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함께 나눈 말이 밖에 새나와 책임을 진다니. 이런 사람이 노동운동을 했으니 참 한심하고 측은하다.

솔직히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려는 진짜 이유는 KBS가 끊임없이 공정보도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상관없이 눈치도 모르고 사실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그게 어떻단 말인가. 언론의 사명은 공정보도와 사실보도가 아닌가. 그렇다면 KBS와 정연주에게 상을 줘야지 쫓아내려고 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정연주 쫓아내면 지지도 올라갈 줄 아는가. 여론 조사 한 번 해보면 어떤가.

한번 물어보자. KBS는 여론조사에서 한국의 대표 방송으로 공정하고 영향력 있고 신뢰 높은 언론기관으로 평가됐다.

KBS 사원들은 무한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 어느 언론학자가 말했다. 언론기관으로 신뢰도, 공정성, 영향력, 모두 1위라면 그 이상의 성취가 어디 있느냐고.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를 보면서 KBS 아니면 저런 프로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김앤장을 말한다>를 보면서 역시 KBS 정신을 생각했다. 막강한 권력에도 무릎 꿇지 않는 KBS정신이다. 정연주 사장의 민주언론을 지키려는 의지도 함께 평가 받아야 한다.

KBS노조는 우리의 언론사의 큰 족적을 남겼다. 오욕의 역사를 밟고 일어나 민주언론으로 다시 태여 났다. 90년 4월 투쟁 당시 민주광장을 꽉 메운 노조원을 생각해 보자. 식당 아주머니 청소하는 아저씨도 모두 함께였다.

그 중심에 민주노조가 있었다. 나는 그들의 눈물 나는 투쟁을 생생하게 목격한 증인이다. KBS와 MBC의 노조, 그들이 없었다면 방송은 언론 대접에서 제외 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KBS 사태는 민주방송의 위기다. 느닷없이 감사원이 특별감사를 한다고 발표했다. KBS가 법을 초월한 기관이 아니기에 감사를 받을 짓을 했으면 면할 길이 없다.

그러나 구구하게 이유 댈 것 없이 정말 이번 감사가 무슨 명분인가. 국민에게 물어보라. 정연주 잡자는 것 이외에 무슨 이유가 있단 말인가. 겨우 한다는 짓이 뉴라이트의 국민감사청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인가. 국민들이 납득할 것 같은가. 초상 집 맏상제가 웃을 노릇이다. 할 일을 해야지. 왜 이리 치졸 무쌍한가. 국민들이 감사원을 감사하자면 어쩌지. 법에 없으니 안 된다고 하겠지.

KBS가 위기다. 사면초가다. 누구나 자신을 보호할 권리는 있다. 노조가 있어야 할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닌가. 민주언론 쟁취를 위해 모든 것을 던졌던 KBS노조. 국민들은 노조를 지켜보고 있다.

KBS 손관수 기자가 쓴 글이 생각난다. 손 기자는 노조가 정연주 사장 퇴진 운동을 추진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이 침탈당할 위기에 있는 이때에, KBS인이 하나 되어 방송 독립을 고민해야 하는 이때에, 권력에 눈먼 이들이 그토록 거세하고자 했던 KBS 사장을 우리가 스스로 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방송독립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폭이라고 생각한다.”

손관수 기자는 KBS 박승규 노조위원장에게 KBS 미디어 비평 프로인 <미디어포커스>를 보는 시각과 인식에 대해 비판 했다.

“박 위원장께서 ‘미디어스’ 인터뷰에서 ‘미디어 포커스’공도 있다. 안다. 하지만 조중동 비판이 50% 정도면 괜찮은데 60~70%까지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조중동 비판을 하더라도 가운데 서서 조중동 잘못과 청와대 잘못을 반반씩 이야기했다면 이런 비판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10%~20%가 그토록 ‘편파적인 방송’의 결정적 잣대인가요?

박승규 KBS노조 위원장의 형평성 잣대가 대단한데 새까맣게 때 묻은 인간과 조금 때 묻은 인간을 꼭 같이 새까만 놈이라고 욕하지 않았다는 시비 같다. 과연 그런가. 조중동이 조금만 비판받을 언론인가. 75% 시장 점유율의 불공정을 어떻게 형평성의 잣대로 보는가.

조중동이 퍼 붓고 있는 KBS나 정연주에 대한 저주같은 비난이 언론의 공정성이란 인식인가. 참여정부 시절 미국산 쇠고기 반대에 그토록 반대하던 조중동이 이제 한 바뀌 삥 돌아선 것이 공정한 언론의 보도라고 보는가.

언론단체들은 KBS에 대한 감사 결정에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믿는다.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한나라당과 현 정부의 지속적인 사퇴 압력과 최근 벌어진 광우병 사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KBS는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는 검역주권을 포기한 것이며 앞으로 미국산 쇠고기가 전면 수입될 경우 위생 조건은 제대로 지켜질지 국민 건강엔 문제가 없는지 우려와 논란이 적지 않다는 국민의 우려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과 촛불 집회에 대해서도 조중동과 달리 자세히 보도했다. 조중동은 방송이 광우병 괴담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한나라당 역시 방송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광우병 사태와 관련해서 KBS는 적극적인 보도 자세를 보였다. 협상 타결 때부터 졸속, 굴욕협상의 가능성을 지적했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을 추락시켰다면 그게 KBS의 잘못인가. 편파 왜곡의 대명사인 조중동은 방송이 광우병 괴담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비난한다. 사실인가. KBS가 잘못인가. 국민들이 잘못이란 말인가.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KBS 노조와 조직원은 살아 온 날과 살아 갈 날을 생각해 보자. 공정언론을 생명처럼 여길 줄 믿는다. 치욕적 5공 회귀는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선택은 KBS가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시위가 점차 격렬해 진다. 이제 경찰은 시위참가자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언론은 어떻게 보도 할 것인가. 엎드릴 것인가. 일어 설 것인가.

정연주가 눈에 가시로 보이니 뽑아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쓸 것이다. 그러나 눈에 가시를 뽑아내려다가 실명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게 간절한 소망을 담아 권한다. 하늘에 순응하면 살고 거역하면 망한다. 국민은 하늘이라 하지 않았는가. 국민의 소리가 무엇인지 들어야 한다. 바로 지금 들어야 한다. 늦으면 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후회를 해도 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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