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6인회 행로 추적

▲ 과거 이명박 대통령의 의사결정기구였던 ‘6인회’ 멤버들이 다시 날개짓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연결하는 모종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6인회’라 불리는 의사결정그룹이 있었다.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이재오·박희태·김덕룡 의원,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이 그들이다. 각종 정치적 사안에 이 대통령은 이들의 힘을 빌렸다. 때문에 ‘6인회’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불렸을 정도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당선 된 후 이들은 대부분 어두운 길을 걸어야 했다. 이 부의장은 당선되기는 했으나 ‘형님공천’ ‘상왕정치’ 논란에 휘말렸으며 최 전 회장은 방통위원장이 됐으나 정치권 안팎의 강한 반대여론에 부딪쳐야 했다. 김덕룡·박희태 의원은 ‘물갈이 바람’에 낙천됐으며 이 의원도 ‘한반도대운하’ 반대여론을 이끈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에게 지역구를 빼앗겼다. 막후 영향력을 발휘하던 이 대통령의 원로그룹에서 낙천·낙선 등 험한 길을 걷게 된 6인회 멤버들. 최근 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문원로회의 공중분해…대통령에 직언 역할 여전히 주목
이상득 국회부의장 당 내·외 사안 물밑 조정역할 ‘막후 실세’
최시중 방통위원장 정치적 사안에 말·말·말 “중립이 뭐야?”
공천 탈락 박희태 ‘당 대표감’, 김덕룡 의원 정치특보 거론

‘6인회’가 꿈틀거리고 있다. 각종 논란과 낙선·낙천으로 잠시 뒤로 물러섰던 이들이 일선 복귀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밑 조율자 ‘이상득’

각종 사안에 중재를 맡아왔던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조용한 터 닦기를 하고 있다. 그는 한나라당 경선, 본선에서 이 대통령과 외부의 갈등 조율을 맡아왔던 인물. 때문에 이번 당외 친박 복당문제가 길어지며 친박계 내부에서 교섭단체 구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무소속 친박 당선자들과의 물밑 접촉을 통해 이들을 만류하기도 했다.

또한 ‘MB계 소장파’의 중심격인 정두언, 박형준, 주호영 의원과 만나 정국 돌파책을 모색하며 모종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삐그덕’ 소리를 내는 당·청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막후 조정자’ 역할을 자임한 것.

또한 당의 새로운 지도부 구성인 ‘박희태 대표-홍준표 원내대표-임태희 정책위의장’ 라인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그는 ‘형님공천 파문’ 후 자신에게 조명이 집중되는 것을 급구 피하고 있다. ‘55인 난’으로 크게 상처를 입은 데다 국민 여론이 그의 움직임을 ‘상왕정치’로 인식할지 모른다는 우려에 스스로 행동반경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재오 의원의 복귀로 그와 권력 갈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거론되자 “일을 하면서 서로 생각이 틀린 점은 있었지만, 이 의원과 나는 인간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갈등을 가져본 적이 없다”며 세간의 ‘오해’를 풀어냈다.

또한 이러한 갈등이 새 지도부 구성을 둘러싼 문제인 점을 의식, “누가 당 대표가 되든 원내대표가 되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수도권 소장파가 이 부의장 등 원로그룹에 맞서 ‘안상수 당 대표-정의화 원내대표’ 카드로 맞서고 있다는 관측에 대해 “왜 자꾸 당 대표와 원내대표 선거 문제를 갖고 나와 이재오의 갈등설을 부추기느냐”며 “나는 그냥 평의원으로서 일본 문제만 열심히 해나가겠다. 정쟁에 휘말리게 하지 말라. 가만있는 평의원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부의장은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뒤에도 “나는 어떤 말조차 할 수 없고 몸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런 얘기가 나와 답답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 부의장이 당 내 어느 계파와도 소통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그의 물밑 조율 역할은 여전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 대표? 국회의장?

이상득 국회부의장과는 달리 정치적 일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총선에서 낙천한 박희태 의원이 그다.

지난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가 전략지역으로 분류돼 공천에서 고배를 마시자 “이럴 수가 있느냐. 기절초풍할 일”, “그동안 당 기여도나 이번 대선에서 역할을 볼 때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생겼다”며 탈락에 대한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차기 국회의장 물망에 오르내리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그는 이 대통령의 낙선·낙천자 초청 만찬에서 “정권을 교체해 힘 있는 의원이 되나 했더니 이게 웬 청천벽력인가”라며 공천 탈락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토로했다. 이어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라는 영어 속담을 인용하며 “눈에서 멀어지더라도 대통령께서 잘 좀 배려해주시라”고 의미심장한 주문을 했다.

그 주문이 통한 것일까. 그는 원외 당 대표로 거론되고 있다. 이미 당 내에서는 그를 당 대표로, 홍준표 의원이 원내대표를, 임태희 의원이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을 맡는 박희태-홍준표-임태희 라인업을 마쳤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들의 만남은 영남 당 대표와 수도권 당 원내대표, 실무형 정책위의장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또한 박 의원은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5선으로 당 대표로서 무게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에다 친이 성향이지만 친박 진영으로부터 거부감이 없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박 의원은 지난 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부터 계파화합을 강조했던 인물로 친박계와의 갈등이 극에 이른 시점에서 그의 ‘화합형’ 대표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박 의원이 원외 인사이기에 ‘관리형 대표’로서 손색이 없다는 게 당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박 의원은 “아직 당 대표에 나선다고 명확하게 이야기 해본 적은 없지만 여러 상황을 보고 있다”면서 “친한 친구인 정몽준 의원과 심각한 대결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당 내·외의 ‘확정적인’ 시각을 경계했다.

그는 “지금은 차기 한나라당 대표의 리더십과 비전을 논해야 할 때”라며 “수도권에서 원내대표가 나오니 영남권에서 당 대표가 나와야 한다는 얘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영남 당 대표론’을 지적하기도 했다.

원로 역할 톡톡히

다선(5선)·고령(67)의 선을 넘지 못해 낙천한 김덕룡 의원도 정치 재기를 노리고 있다. 김 의원은 이 대통령의 낙천·낙선자 초청 만찬에서 “오늘 운세를 보니까 줄을 잘못 서면 손해 보는 운세더라”면서 “21세기는 환경의 시대 아니냐. 환경 시대의 주제어 중 하나가 ‘리사이클링(Recycling. 재활용)’”이라고 말했었다. 기다리면 언젠가 다시 중심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 것.

그는 서울 서초동에 개인 사무실을 내고 “세월을 낚으며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취약 지역인 호남과 경기 지역의 표심을 끌어내는 데 일등 공신으로 활약했던 만큼 ‘역할론’이 제기될 필요충분조건은 갖췄다고 보는 것이다. 원활한 야당 관계 등을 위해서도 ‘원로’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의 빠른 복귀를 점치게 하고 있다.

김 의원은 정치특보나 특임장관직에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새 지도부 구성을 즈음해 소통 창구를 재정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탓이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현재 당·정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소통의 창구로 정무수석이 있기는 하지만 기능 중심으로 흐르면서 정무 기능은 약화된 측면이 있다”며 “정무 기능 약화는 곧 청와대의 민심 파악을 힘들게 해 각종 문제를 불거지게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치적 무게감과 연륜을 지니고 있으면서 청와대와 당의 소통을 도울 정무장관이나 특임장관 등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6인회로 대표되는 원로그룹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원로그룹은 경륜도 있고 중진 그룹에 비해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면도 적다”며 “당내 사정을 잘 모르는 이 대통령이 앞으로도 이들 원로그룹을 자주 찾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정치적 중립’ 있다? 없다?

▲ “형님들이 도와줘야”난관에 봉착한 이명박 대통령의 구원투수로 원로그룹이 주목받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나 대선과정에서 ‘큰형님’으로 막후 조율 역할을 했던 이들을 이용, 꼬인 당정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6인회 멤버 중 정치적으로 나서지 않겠다고 했으나 잦은 ‘정치적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이도 있다. 방통위원장으로 올라설 때부터 논란이 됐던 최시중 전 캘럽 회장이다.

그는 방통위원장을 맡으며 ‘중립’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공정해야 할 방통위원장을 맡게 되면 청와대가 방송·통신을 장악하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를 의식해서다. 그는 취임사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확고하게 지킬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취임 두 달간의 행보는 이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이다. 최 위원장은 취임 이틀 후인 지난 3월27일 김금수 KBS 이사장을 만나 정연주 사장을 교체하는데 협조해달라고 요청한 데 이어 지난 5월12일에는 미국산 쇠고기 파문과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물러나지 않는 정 사장에게 있다며 사실상 이사회가 나서 정 사장의 퇴진을 압박할 것으로 주문했다.

그는 또 “쇠고기 협상의 경우 언론홍보나 대응이 미흡했다. 방통심의위가 곧 활동을 시작하게 되지만 사후 심의가 아닌 사전에 체계적으로 홍보하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국정홍보에 개입하는 발언을 했다.

직원들에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지시한 것도 물의를 빚었다. 방통위는 이달 초 포털사이트에 대통령 비난 댓글을 삭제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최 위원장은 정치 행보뿐 아니라 방통위 운영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협의 중인 직제 개정안이 측근들을 위한 것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는 것. 이 개정안의 핵심은 고위공무원단으로 한정된 기조실장과 대변인 자리를 개방형 공무원임용제 대상으로 바꾸는 것인데 이 두 자리를 비롯해 신설될 정책보좌관 자리에 모두 최 위원장 측근이 거명되고 있다.

시민단체 등은 “방송장악 등 언론통제의 파렴치한 시도를 방관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으며 정치권에서는 “방송의 최고책임자가 당정협의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것은 방송의 중립성이나 공정성에 심대한 위해를 끼칠 수 있는 행동들”이라며 “대통령 스스로 나서서 이런 부분들에 조치를 취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지금은 조용히 기다릴 때

대부분의 인사들이 여의도 안팎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여의도를 떠나는 이도 있다.

이재오 의원은 미국행을 선택했다. 그는 “내가 역할을 맡으면 안 된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는 그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게 낫다”며 6개월 또는 1년여의 유학길에 올랐다.

한편 이 밖의 친이 인사들 중 공천 갈등의 주역으로 꼽혀 끝내 낙선한 이방호 의원은 개인 사무실을 내고 정치권 복귀를 저울질하고 있으며 이 대통령의 브레인으로 활약했던 박형준 의원은 지역구에 힘을 쏟고 있다.

맹형규 의원은 12년간의 의정활동을 정리하는 정책보고서 선집을 발간하는 자리에서 “1996년에 시작된 국회에서의 길 찾기에 대한 답을 아직 얻지 못했다”고 말해 모종의 역할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신설될 것으로 알려진 신설될 것으로 알려진 정무장관직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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