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과 김주열과 관창, 그리고 우리 10대들

대한민국 국민이면 유관순 열사를 존경한다. 열사가 어떤 일을 했는지 다들 안다. 3·1운동 때 어린 나이로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옥사했다는 사실도 안다. 열사가 옥사할 때 몇 살의 나이인지도 다 안다. 18세의 꽃다운 나이다. 나이도 어린데 무슨 독립운동이냐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옥 속에 갇혔어도 만세 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열사는 어른들도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옳은 일이기 때문에 했다. 목숨을 버릴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애국애족이라고 한다. 나이를 말할 것인가.

화랑 관창을 알 것이다. 황산벌에서 백제와 싸울 때 관창은 어린 나이에도 조국 신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어느 누구도 관창의 어린 나이를 말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잔 다르크’는 소녀의 몸으로 군사를 이끌고 영국군과 싸워 조국 프랑스를 구한다. 프랑스의 어느 누구도 ‘잔 다르크’의 나이를 묻지 않는다.

4·19의 불꽃을 피운 김주열 열사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 그는 고등학생이었다. 지금 어느 누구도 열사의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10대들의 애국심을 특별하게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유관순’ 열사나 ‘관창’이나 ‘김주열’ 열사나 ‘잔 다르크’나 지금 촛불집회에 나온 이 나라의 10대들이나 철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다니는 손녀가 있다. 촛불집회에 갔다고 한다. 왜 거기 갔냐고 물었다. “좋은 신문 읽어 보세요. 왜 쇠고기를 반대해야 하는지 잘 알 수 있어요.” 할 말이 없었다.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저희들도 알 것은 다 알아요. 우리 반 애들 다 알아요. 저희는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는데 지금 어른들은 교과서와 너무 다르지 않아요?”

할 말이 없었다. 나이가 중요한가. 저처럼 똑 부러지게 민주주의를 말하는 아이를 어린애라고 할 수 있을까.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고, 이명박은 초중고와 싸운다.”

원로 언론인 리영희 선생은 한겨레 창간 20돌 기념 인터뷰에서 말했다. “대통령의 최근 상황을 보고 있으면 독재에 가까운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향하는 사회는 미국처럼 돈이 지배하는 사회”라며 “누가 봐도 미국의 비위를 맞추고자 한-미 정상회담 전에 뜯어 맞추고 모든 것을 양도해 버린 것”라고 했다.

매일 밤 청계천 광장을 메우는 촛불의 장관, 그 곳에 주인공들은 학생들이다. 10대의 학생들이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촛불 시위의 중심에 바로 우리 아이들, 10대 청소년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어린 학생들이라고 걱정의 눈으로 보는 어른들이 있다. 10대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저희 10대들도 다 생각이 있고 꿈이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이 나라는요. 앞으로 저희 10대가 이끌어 가요. 저희가 앞으로 이 나라를 짊어지고 가야 해요. 내년이면 선거해요. 우리가 철부지에요?”,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이렇게 배우지 않았어요. 불의의 대해서는 분노하라고 배웠어요. 우리는 분노하고 있어요. 대통령도 어른들도 다 반성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고등학생에 이어 대학생들도 합류를 한다.

“요즘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일 때문에 신경 쓰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 “우리가 못하는 것을 중고생들이 한다는 게 매우 놀랍고 부끄럽다.”

애들 손을 잡고 참가한 부모들도 있었다. 자식들을 걱정했다.

“학교 급식을 어떡해요. 광우병에 걸렸을지 모를 쇠고기를 우리 애들이 먹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치고 끔찍해요.”

아직 발병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면 될까. 아무도 믿지 않는다. 정직하지 못한 정부의 오락가락 발표를 국민이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거짓말 하는 정부 믿으면 잘못이다.

소도 생명이 있는데 10년은 살도록 해야 되지 않느냐. 소를 그렇게 빨리 잡는 줄 이제야 알았다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동물애호가’라고 표창해야 될까. 입만 열면 말이 바뀌는 농림수산식풉부 장관의 말을 이제 믿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린 세상이다. 정직과 신뢰가 얼마나 소중한지 정부는 깊이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불신은 억지로 가라앉질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부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누르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촛불집회에 잠가하지 못하도록 학생들을 감시하고 협박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 촛불집회 참석 때는 정학을 시키겠다고 일부 학교에서는 엄포를 놓고 있다. 서울교육청에서는 무려 900여명의 교감 장학사 등을 집회 현장에 보내 현장지도를 한다고 한다.

인적사항까지 파악한다니 이건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막는 것이다. 이래서 막아질 일이 아니다.

이미 알려진 이른바 ‘촛불시위와 선동주동자’라고 하는 학생을 사법처리 한다고 했다. 21명이다. 거기에는 인터넷에서 ‘대통령탄핵을 주창한 라고 하는 고 2학생도 포함되어 있다.

인터넷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모두가 자신이 주동자고 선동을 했으니 처벌하라고 자수를 한다. 문득 ‘드레피스’사건이 떠오른다. 죄 없이 군부에 체포된 프랑스 장교 드레피스를 위하여 당대의 문호 ‘에밀 조라’가 나선다. 수많은 프랑스 지식인이 “나를 체포하라”고 궐기한다. 정부는 무릎을 꿇는다. 지금 사법처리가 될 21명의 네티즌을 위하여 선동 주모자라며 실명을 밝히고 나를 체포하라는 시민들은 19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아니라 이 나라의 10대들이다.

<시사IN>의 현장 취재기를 소개한다. 이용호 기자는 열다섯 살짜리 학생의 말을 전했다.

“광우병 무서워요, 저 아직 15년밖에 못 살았어요” 어떤 기자가 따라와서 물어요. “광우병이 위험한지 어떻게 알았어요? 인터넷에서 알았어요?” 참 나, 되묻고 싶어요. “그럼 기자 아저씨는 어떻게 알았어요? 학교에서 공부했어요?”

“제일 짜증나는 게 우리를 무개념 ‘찌질이’로 보는 거예요. 조·중·동이 그러잖아요. 애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나왔다고. 맞아요, 공부하기 싫어서 나왔어요. 당장 10년, 20년 뒤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공부할 맛이 나겠어요? 오늘도 집회에 나갔다 일찍 집에 가려는데, 또 기자가 말을 걸어요. “왜 일찍 가요? 재미없어서 가요?” 제가 그랬어요. “아저씨, 우리 여기 재미로 나온 거 아니거든요. 사진기자들이 자꾸 우리 얼굴 찍잖아요. 여기 나온 거 부모님이 알면 죽어요. 우리 생각 좀 해줘요. 아, 짜증나.”

“저 지금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인데요, 초등학교 때부터 광우병이 문제라는 걸 알았어요. 노무현 정부 때 미국 쇠고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수입이 중단된 적 있잖아요. 그땐 지금처럼 위험하다는 분위기도 아니었는데 조·중·동에서 난리를 쳤어요. 학교에서 신문읽기 수업할 때 그런 기사 본 기억이 나요. 그때 광우병이 무서운 병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당선되고 나서 언론이 말을 바꾸잖아요. 대통령이 조건 없이 수입하겠다는데도 별소리가 없어요. 지금 언론이 뭔가 조작하고 있다고 느끼는 게 그래서예요.”

“진짜 이상한 건 어른들이에요. 왜 이렇게 무관심한지 모르겠어요. 며칠 전 선생님한테 “광우병 때문에 앞으로 학교 급식 안 먹을래요”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나도 먹을 건데 왜 안 먹어? 괜찮아”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느꼈어요. 선생님이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르시는구나. 솔직히 요즘 어른들 뭘 몰라요.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고. 학생들이 집회에 많이 참석하니까 선생님이 “어른이 알아서 잘할 테니까 너희는 집회 가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하거든요. 선생님 앞에서는 그냥 예예, 했지만 속으로는 ‘내가 선생님보다 더 잘 알아요’라며 비웃었어요.”

청문회 때 인터넷의 위력은 대단했다.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이 노무현 정부 때와 달리 개방 찬성을 주장하자 인터넷을 뒤져 동영상 물증을 찾아내 공개했다. 네티즌 왈 “아직 대한민국 네티즌을 모르는구먼, 거짓말한 거 다 찾아낸다.”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도 이영호 민주당 의원이 제시한 사진자료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가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나 뭇매를 맞았다.

광우병은 잠복기가 길다고 한다. 이미 한국에 들어 와 있는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한가. 앞으로 수입 될 쇠고기는 안전한가. 아무도 확실하게 모른다. 믿지를 못한다. 바로 불확실성의 공포다. 혹시 감염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그래서 어떻게든 막아 보자는 것이 국민의 뜻이고 10대의 생각이다.

0.1%의 위험성이라도 막으려고 노력하는 정부의 모습을 국민은 원한다. 정치인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질지 모르지만 국민은 자식들의 10년 20년 30년을 걱정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심재철 의원은 광우병과 벼락 맞을 확률을 비유했지만 이것이야 말로 국민한테 벼락 맞을 소리다. 한국을 방문한 칼로스 구티에리슨 미국 상무장관은 미국의 쇠고기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강변한다.

한술 더 떠 “이명박 대통령의 파트너십과 결정을 내리는 단호함, 용기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존경심을 갖고 있다”, “이 대통령과 같은 지도자를 두었다는 점에서 한국은 행운”, “이 대통령은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는 매우 긍정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소리다. 과연 미국의 쇠고기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가.

미국 CNN방송의 보도는 이렇다. “미국에서 연간 1200만 마리의 소가 도축되지만 부실한 검역 체제 때문에 쇠고기의 안전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 공개된 '쓰러지는 소'들도 규정에 따라 검역관의 검사를 거쳐야 했지만 그런 절차는 없었다는 것이다. 청문회에서 ‘수트팍’ 의원이 질문한다. “이 동영상을 보면, 최소한 '쓰러지는 소' 두 마리가 미국의 규정을 무시하고 불법으로 도축된 것 아닌가?" 도축장 사장 ‘스티브 멘델'이 대답한다. "그렇다."

전직 검역관은 원인을 분석했다. 부실한 검역 체제의 원인은 인력 부족과 업계 로비 때문이고 미국 전역에서 검역 인력이 11 퍼센트 정도 부족하며, 어떤 지역에서는 20퍼센트에 이른다는 것이다.

육우업계 출신 인사들이 농무부의 주요 보직을 맡고 있는 등 업계 로비도 검역 부실의 또 다른 이유로 지적됐다.

미국 언론까지 검역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온 가운데 한국의 검역단은 수출용 쇠고기를 처리할 도축장들에 대한 본격 점검에 들어갔다. 왜 미국 농무부는 한국 검역단의 활동을 비공개로 하는가. 열흘간의 빠듯한 일정은 충분한가.

검역단이 아무리 현지 검사를 하고 미 상무장관이 아무리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장담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치켜세워도 한국 국민들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생겨도 수입을 금지할 수 없도록 규정한 ‘수입위생조건 5조’는 명백한 검역주권 침해라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권을 포기한 정부를 어떻게 국민이 믿는가. 사료금지조처도 후퇴했다.

그 밖에도 미국에서는 먹지 못하는 부위도 수입을 하게 됐다. 미국의 학생들에게는 먹지 못하게 하는 부위도 수입의 길을 열어 놨다. 그래서 우리도 못 먹겠으니 수입하지 말라는 학생들의 요구는 지극히 정당하지 않은가.

세상사 순리로 풀어야 한다. 물이 흘러가듯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말썽이 생긴다.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은 있지만 그건 속담이다. 촛불 집회가 마땅치 않더라도 놔둬야 한다. 교감 장학사 동원한다고 막아 질 일이 아니다.

과천의 주부들이 쇠고기 수입반대 현수막을 걸었다고 불법이라고 하면 주부들이 견디지 못한다. 공무원들에게 억지로 미국산 쇠고기 급식 시키면 반드시 부작용 생긴다. 장병들에게도 미국산 쇠고기 급식은 안하기로 하지 않았는가.

이명박 정부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다. 지금 이명박 정권의 지지도는 절벽 끝에 와 있다.

법적 구속력은 없더라도 탄핵요구가 130만 명에 이른다. 주모자를 처벌한다고 해도 촛불시위는 멈추질 않는다. 5월17일 청계천 광장 촛불집회에는 6만 명이 모여 “헌법 제1조” 를 합창했다고 한다.

역사는 후퇴하지 않는다. 뒤로 돌아가는 듯해도 앞으로 간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것이 청소년들이다. 그들이 자유당 독재를 무너트리는 선봉에 섰다. 학생들을 철부지로 알면 안 된다. 이해득실 계산으로 목까지 꽉 찬 기성세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리 청소년들은 순수하고 똑똑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의 사태를 폭설과 비유하고 폭설이 그치기를 기다린다고 하면서 반미와 좌파의 선동으로 몰고 공안정국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복잡하지도 않고 명쾌한 쇠고기 문제는 그런 방식으로 해결이 안 된다. 탄압이 강하면 반발만 높아질 뿐이다. 대통령은 10대 청소년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명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솝’ 우화가 생각난다. 애들이 말한다.

“나는 양치기 대통령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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