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 문서공개 등.... 계파간 '노선갈등' 시동

정부가 한일 관계와 관련된 외교문서를 잇따라 공개한데 대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한일협정 문서공개와 문세광 사건 관련문서 공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어 문서공개의 저의에 대한 의혹은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또 최근 자체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도 '가장 먼저 변해야 할 대상'으로 한나라당이 30%를 넘는 수치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앞섰다. 또한 박근혜 대표의 개인 지지율은 작년 총선 이후 꾸준히 떨어져 처음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긍정적 이미지를 앞서는 수준에 이르렀다. 박근혜 대표가 신년기자회견에서 무정쟁·민생올인을 선언한 것도 이같은 위기의식에 따른 것으로 보여진다. 한나라당에 백가쟁명식 노선갈등이 불붙었다. 한나라당은 20일 열린 새해 첫 의원총회를 열어 어떤식으로든 노선 재정립이 불가피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2월초 의원연찬회를 계기로 본격적인 의견수렴에 나서기로 했다. 특히 박 대표에게 직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원희룡, 남경필 등 소장파와 김용갑 등 강경보수성향의 의원들이 대거 불참함에 따라 갈등은 표면화되지 않았다. ◆2월초 연찬회, 당 노선투쟁 격론일 듯 한일협정 문서와 문세광 사건 관련문서 공개후 관심의 표적이 된 박 대표는 20일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누구의 딸이라는 것을 잊어달라"고 말해 박 전 대통령 시절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자신을 의식할 필요가 없음을 밝혔다. 박 대표는 비공개 회의에서도 "문서공개에 대해 공당의 대표로서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 문제와 관련해 대표인 나에게 부담을 갖거나 나를 염두에 두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또 그는 "나는 개인이 아니라 공당의 대표로서 의견을 말하고 있다. '박근혜'를 잊고 어떤 부담도 갖지 말라.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박 대표의 발언은 정부가 박 전 대통령 시절의 과거사를 들추는 것에 대해 정면으로 돌파할 뜻을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는 점은 기분 나쁘지만 이 문제를 일단 털고 나가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전날 신년기자회견에서도 '밝힐 것은 밝히자'며 2월 임시국회에서 한일협정 문제를 다루자고 공세적인 자세를 취했다. 박 대표의 이같은 태도는 지난 연말 타결 직전에 있던 과거사법이 결국 박 대표의 '고집'으로 무산되었다는 비난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박 대표의 김덕룡 원내대표에 대한 불만도 노골적이었는데, 의원총회에서 김 원내대표는 "과거사법과 관련해서 일단 유보시킨 점은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라고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소장파, 김덕룡 당 '개혁' 박차 한나라당의 예상되는 노선 갈등은 크게 세 갈래로 분류된다. 영남권 보수성향 의원들의 강경 보수론, 수도권 소장파 중심의 개혁적 중도보수론, 그리고 그 사이에 비주류 그룹의 중도론이 자리잡고 있다. 우선 소장파들의 움직임은 김덕룡 원내대표가 "우리의 길은 어디까지나 개혁적 중도보수이며 이를 보여줄때만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당내 개혁세력의 구심을 자임하고 나서면서 활발해졌다. 특히 박 대표의 '우경화'에 불만을 표해온 원희룡, 고진화, 남경필 등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은 "개별적인 불만 형식이 아니라 지도체제, 당내 민주주의, 당의 환골탈태 등과 관련해 종합적인 노선투쟁을 펴겠다"고 집단대응 방침을 천명한 상태다. 하지만 이들은 당직개편을 통해 전진배치된 박세일 정책위의장, 유승민 비서실장 등 '정책적 매파' 그룹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간 '수구꼴통'이라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이었던 영남권 보수파와의 말싸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노선투쟁의 알맹이와 테크닉을 갖춰야 할 과제를 안게됐다. 이에따라 소장파들은 김덕룡 원내대표를 매개로 당내 개혁 블록을 형성하고, 앙금이 가시지 않은 이재오, 김문수 의원 등의 '국가발전전략연구회'와도 사안에 따른 전략적 연대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보수파, 소장파 '박근혜 2기 체제' 맹공 영남권 보수의원들의 모임인 '자유포럼'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 역시 '박근혜 2기 체제'에서 철저히 배제돼 쇠락의 문턱에 접어들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자유포럼' 대표인 이방호 의원, 이상배 의원 등이 연일 한나라당의 발전적 해체와 민주당, 자민련을 포함하는 '범보수연합'을 주장하고 나선 것도 "당의 정체성을 바로세우기 위해선 박 대표가 좀 더 분명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강경보수론의 일환이다. 김용갑 의원은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이제와서 부인할 이유도 없거니와 새삼스레 당의 노선이 무엇인가를 놓고 논쟁을 할 이유도 전혀 없다"며 "지난 연말 4대입법 투쟁에서 당의 정체성을 망각한채 의원들의 동의도 없이 서명을 하고 왔던 그 지도부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심각한 일"이라고 김덕룡 대표를 직격하기도 했다. 물론 '보수연대론' 등 이들의 주장은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은 탓에 당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에는 '박근혜 친위부대'의 전면부상에 따른 소외감, 몰락의 위기감이 집결돼 있어 한나라당이 중원으로 가는 길에 적지않은 걸림돌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도파, "보수-소장파 모두 배제해야" 소장파와 영남권 보수파를 싸잡아 비판하고 있는 '국민생각', '푸른정책모임' 등은 중도론을 주도하며 세확산에 나서고 있다. '국민생각'의 회장인 맹형규 의원은 "극우파들도 나름대로 애국심을 갖고 있지만 대선 승리에 걸림돌이 있고, 소장파들도 인기영합주의를 자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키웠다. '국민생각'은 의원 39명이 참여하고 있는 당내 최대 모임이고 차기 원내대표 경선에서 모임의 좌장격인 강재섭 의원의 출마가 점쳐지고 있어 이들의 활동반경 넓히기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박진, 임태희 의원 등이 주축이된 '푸른정책모임'도 소장파와 영남보수파 사이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중도 성향의 의원들을 적극 흡수하며 박근혜 친정체제에 대한 잠재적 비판 세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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