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변칙증여' 구형 불구 '가족 승진' 대거 단행

삼성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변칙증여 사건에 대한 구형이 내려졌다. 징역형에 해당되는 무거운 구형이다. 물론 다음달로 예정된 선거공판에 가봐야 결론을 알겠지만, 사법부가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브레이크'를 건 것은 명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아랑곳없이, 삼성그룹은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이건희 회장 가족들에 대한 승진조치를 단호하게 진행시켰다. 1월 10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국민수 부장검사)는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변칙증여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전 에버랜드 사장)에 대해 징역 5년을, 박노빈 에버랜드 사장(전 상무)에 대해 징역 3년을 각각 구형했다. "이재용 씨 때문에 회사가 손해를 입어" 검찰은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이현승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이 사건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거액의 자금 조달 및 증여세 문제를 피하면서 그룹 경영권을 아들 재용 씨에게 넘기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과정의 일환"이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영권 승계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단죄돼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상속증여세법 개정을 앞두고 에버랜드가 CB를 긴급히 발행한 뒤 주주 26명 중 25명이 대량 실권하고 재용 씨가 최소 주당 8만5천원의 CB를 7천700원씩에 인수해 회사가 97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재용 씨가 100억원도 안 되는 자금으로 삼성그룹 경영권을 장악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주장했다. 변호를 맡은 김종훈 변호사는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에는 CB 관련 내용이 없어 피고인들이 알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이들이 공모했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며 "CB가 주주 우선배정 방식으로 발행된 이상 인수 여부는 주주들에게 달린 것이지 경영자가 임의로 제3자에게 넘길 수도 없다"고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CB 발행을 통해 100억원 가량의 자금이 에버랜드에 유입된 이상 재용 씨에 대한 저가 재배정을 통해 기존 주주들이 손해를 입었다면 몰라도 회사가 손해를 입지는 않았으므로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할 수도 없다"며 "피고인들에게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태학 사장은 "회사가 자금이 필요해 적시에 CB를 발행해 견실한 회사를 만들려던 것일 뿐 어떠한 다른 의도도 없었다"고 말했으며, 박노빈 사장은 "기업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게 사법부가 올바른 판단을 해달라"고 최후진술 했다. 이들은 지난 96년 11월 최소한 주당 8만5천원에 거래되던 에버랜드 CB를 발행하면서 기존주주들이 대량실권 한 96억원 어치 CB를 이사회 결의를 통해 이재용 씨 남매에게 주당 7천700원에 배정, 회사에 970억원 상당의 손실을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불구속기소됐다. 선고 공판은 2월 2일 오전 10시다. 이건희 회장의 딸·사위·처제 몽땅 임원인사 승진 한편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 1월 12일 삼성그룹이 단행한 임원인사는 오너 가족의 대거 승진조치로 인해 삼성의 '로열 패밀리화'를 더욱 공고히 했다는 평가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맏사위인 임우재 씨는 삼성전기 임원에 전격 선임됐다. 또 부인인 이부진 씨도 신라호텔 상무보에서 '보'꼬리를 떼고 한 단계 승진했다. 부진 씨의 경우 임원 선임 1년 만에 다시 승진했다. 임우재 씨는 지난 99년 부진 씨와 결혼했다. 임 씨는 삼성전자 미주본사 전략팀 소속으로 현재 사실상 유학중인 상태. 둘째딸인 서현씨도 이번에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에서 상무보로 승진, 새로 임원이 됐다. 남편인 김재열 제일모직 상무는 지난 2002년 제일기획에 입사한 뒤 제일모직으로 옮겨 지난해 상무보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지난해 제일기획 임원에 선임되면서 삼성 경영활동에 참여하게 된 김 상무보는 이번 인사로 부인이자 이 회장 차녀인 서현 씨와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게 됐다. 삼성측은 "제일모직이 전통적으로 '인재사관학교' 구실을 한 데다 마케팅과 인터넷 전문가인 김 상무보가 경영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체 경험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이번 전보인사를 실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번 인사가 '제일모직은 서현 씨 몫'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로써 이 회장의 결혼한 딸과 사위들이 모두 삼성 계열사에 몸담게됐을 뿐 아니라 모두 삼성 임원이 됐다. 한편, 이 회장의 막내딸인 윤형 씨는 이화여대 불문학과를 지난해 졸업하고 유학준비중이다. 또한 이건희 회장의 처제인 홍라영 삼성문화재단 상무보(40)도 상무로 승진해 화제다. 홍라영 상무는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예술경영 공부를 하고 뉴욕 현대 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등 유명 미술관에서 근무하다 99년 삼성미술관 부장으로 입사, 삼성가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홍라영 상무 이외에도 이 회장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장(58)의 동생들은 삼성 계열사에 몸담고 있다. 홍 여사 셋째 남동생인 석준 씨(49)는 삼성SDI 부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홍 여사 바로 아랫동생인 홍석현 회장(54)은 계열분리 된 중앙일보 회장을 맡고 있다가 주미대사로 내정된 상태. 넷째 동생인 석규 씨(47)는 주식회사 보광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은 86년 제일모직 비서실에 입사한 후 삼성코닝 등을 거쳐 96년부터 삼성SDI에서 기획총괄을 맡고 있다. 외환은행 등을 거치면서 금융관련 업무를 배웠으며, 미국 노스웨스턴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아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실력파로 알려져 있다 . 이재용 씨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런데 전무승진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는 결국 유임됐다. 당초 올해로 상무 3년 차에 접어드는 이 상무의 경우, 전무승진이 상당히 유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무는 지난 2001년 상무보로 처음 임원이 된 뒤 2년만인 2003년초 '보'꼬리를 뗐다. 특히 다른 재계 2~3세들에 비해 경영참여시기가 다소 늦은데다 직위도 낮아, 승진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던 상황이라 이채를 띠고있다. 삼성 관계자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임원들의 노고를 먼저 보상하고 경영수업을 차곡차곡 밟아간다는 차원에서 이 상무가 유임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은 아직까지는 이 상무의 승진을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이 상무의 경영수업이 얼마나 착실하게 이뤄지는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며 "얼마나 빨리 전무로 승진하느냐는 사실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재용 상무의 경영수업 과정에서 불거지고 있는 계열사와의 주식거래를 둘러싼 시민단체의 비난과 소송 등이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등이 부담으로 작용, 여론을 의식해 이번 승진인사에서 조용히 넘어가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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