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으면 안 왔다”

귀순자들에겐 지난 1960~80년대가 ‘귀순자 황금시대’였다.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던 정부가 탈북자를 귀순용사로 분류해 극진한 대우를 해줬기 때문. 실제 이때 망명한 귀순자들은 ‘월남 귀순용사 특별보상법’에 따라 신분보장은 물론 보상금·취직·학비·주택·연금 등 각종 혜택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1993년 6월 러시아 벌목공의 대량 귀순을 계기로 ‘귀순북한동포보호법’이 제정되자 사정은 180도 변했다. 우선 주관 부처가 국가보훈처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됐다. 귀순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경제적 난민에 대한 생활보호대상자적 처우로 격하되며 대부분의 경제적 지원이 사라졌다.

1993년 이후 귀순자들은 ▲9평 규모의 영구임대아파트 임대보증금 700만원 ▲월 최저임금액의 30~100배 수준의 지원금 ▲북에서 가져온 정보 및 물자에 따른 기여금 등만 받게 됐다.

이 시기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1993년 이전에 들어온 귀순용사와 비교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1997년 이후에 들어온 탈북자에 비해서도 현저하게 불리한 조건으로 남한사회에 정착해야 했다. 탈북자들이 스스로 주변화하거나 남한사회의 이방인, 2등 국민 등으로 비하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그러자 정착민들의 시름도 깊어졌다. 북한에서 사회활동을 했던 경력을 인정받지도 못할뿐더러 정착금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 실제 2003년 7월 탈북해 2004년 8월 입국한 김모(36·여)씨.

북한에서 간호사로 종사하던 김씨는 남한에서의 고된 생활에 대해 토로했다. 그는 “하루빨리 정착해 북에 두고 온 남편과 아이 둘을 빼내와야겠다는 생각뿐이던 그는 하나원 출소 즈음해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북한에서 간호장교로 7년간 복무하다 재대 후 북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5년간 일했던 경력이 남한 땅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고 토로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한 그의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뿐이었다. 북한군에서 간호장교가 되기 위해 전문대 과정 3년을 이수한 것이 정규학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졸 학력의 탈북 여성으로서 그가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식당 종업원이 유일했다. 그는 “남한사회에서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해 희망이 전혀 안 보인다”며 “솔직히 괜히 내려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현행 제도는 탈북자의 자활 노력에 따른 인센티브제를 핵심으로 한다. 정착금 전체 지급 수준은 유지하되 기본금과 취업 노력을 유도하는 장려금을 구분해 지급함으로써 자립과 자활을 유도한 것이다.

1인가족 기준 총 1000만원의 기본급을 지급하며 직업훈련, 자격증 취득, 장기 취업자 우대금 등 자활 노력에 따라 최대 1540만원의 장려금을 지급한다. 노동력이 없는 60대 이상의 고령자나 장애인, 아동에게는 가산금이 사유에 따라 역시 최대 1540만 원까지 지급한다. 이외 가족 수에 따라 최소 1000만~1500만원의 임대아파드 보증금도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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