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진정한 충성

도둑질을 들키지 않고 요행 잡히지 않았다 해도 도둑놈은 스스로 도둑임을 안다. 누가 쳐다보기만 해도 가슴이 뛴다. 늘 불안하고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다.

숨어 살던 흉악범이 잡힌 다음 제일 먼저 하는 소리는 이제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도 불안과 공포가 없어지니 살 것 같다는 것이다.

죄 짓고는 못 산다는 말이 이래서 실감난다. 실정법을 위반하면 처벌 받는 것이 당연하다. 언젠가 관습법이라는 말이 유행한 때가 있었다. 국민정서법도 입에 오르내렸다.

양심법은 무엇인가. 양심이 죄를 심판한다는 의미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짐작할 것이다. 청와대 수석들의 실종된 양심을 묻기 위해서다.

이동관 대변인이 한 일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그의 처신이 어때야 되는지 국민은 아는데 그만은 모르는가. 못 느끼는가. 양심의 부재다. 장상 총리 내정자가 인사청문회 때 한나라당의 심재철 의원이 서슬 퍼런 추궁을 했다. 이동관 대변인은 그 질문 내용을 한번 읽어보라. 인터넷에 다 나와 있다.

이동관 대변인이 한 짓을 보자. 춘천 땅을 부인 명의로 샀다. 농지는 소유자가 직접 경작해야 한다는 법을 위반했다. 그는 사과했다. 진심인가.

재벌총수가 특검 후 국민에게 사과했다. 진심일까. 국민은 믿는가. 벌써 몇 번째 사과인가.

이동관 대변인은 농지법 위반 이외에 농지취득 과정에서 허위로 위임장을 작성, ‘가짜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한 공문서위조 의혹도 불거졌다. ‘가짜 농업경영계획서’는 국민일보에 의해 사실로 확인됐다. 당연히 특종이다. 이 때부터 이동관의 처신이 빛난다. 편집국장과 사회부장에게 기사를 빼달라고 수차례 전화를 건다. 기사는 빠진다. 노조가 들고 일어난다. 권력형 외압이라고 파문이 인다.

국민일보 노조의 성명을 한 구절 인용한다.

“본보 사건팀은 이 대변인이 배우자가 외국에 있다고 거짓으로 기재한 위임장을 토대로 농업경영계획서를 대리 제출했고, 이를 근거로 춘천 농지를 취득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지면에 실리지 않고 있다”

“잘못했다. 이번 건을 넘어가주면 은혜는 반드시 갚겠다.’ 이는 이동관 대변인이 편집국 간부에게 했다는 말이라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은혜를 갚는다는 말은 없다.

‘기사가 안 된다고 판단했고 회사에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다’ 이는 편집국장의 말이라고 한다.

청와대 대변인의 ‘공문서 위조’가 기사가 되지 않는다면 뭐가 기사가 되는가. 이미 국민일보는 박미석 수석의 논문 표절 특종 기사도 회사 사장의 지시로 한때 누락해 기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특종과 깔아뭉개기에 장기가 있다.

“국민일보 편집국장은 친한 언론사 동기로, 두세 차례 전화를 해 사정을 설명하고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친구끼리 하는 말로 ‘좀 봐줘’라고 말했을 뿐”, “위협이나 협박을 가한 적은 없다”

이동관 대변인의 해명이다. 좀 봐달라고만 했으니까 위협이나 협박이 아니라는 말이다. 과연 그런가.

이동관은 청와대 대변인이 되기 전까지 언론인으로 살아 온 사람이다. 기자들의 선망인 정치부장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거대언론 동아일보의 정치부장 출신이다. 그래서 언론권력이던 정치권력이던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독재시절에 기자 생활을 했다. 청와대라는 곳이 얼마나 무섭고 가슴 떨리는 곳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청와대의 말 한마디면 산천이 떨었다.

동아일보는 독재정권에 저항했으나 백지광고라는 참담한 탄압을 받고 손을 들었다. 그 후 기자들은 대량으로 쫓겨났다. 그렇게 청와대는 무서운 곳으로 이동관 대변인에게 기억되어 있을 것이다.

정치부장도 막강하다. 아니라면 도리 없으나 초짜 정치인은 꼼짝 못한다. 정치부장의 말 한마디는 큰 위협이다. 그런 현장을 많이 봤다.

이동관 대변인이 국민일보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고 ‘봐 달라’는 부탁과 함께 ‘봐 주면 은혜를 갚겠다’ 했다면 봐주지 않을 경우에는 역시 뭔가 있다는 위협을 느끼지 않았을까. 집권초창기 청와대 대변인의 애소(?)를 거부할 수 있는 편집국장이라면 대단한 사람이겠지만 국민일보 편집국장은 역시 상식의 인간이었다. 봐 줬으니까.

이동관은 논설위원을 지냈다. 참여정부 시절 김병준 교육부총리 임명과 관련한 사설을 썼다. 인터넷 TV로 방송이 됐다. 준엄했다. 서슬이 퍼랬다. 3분 칼럼이라고 했다. 살펴보자. 이 대변인은 2006년 8월 2일자 ‘노 대통령의 오기가 김병준 사태 불렀다’는 제하의 동아일보 3분 칼럼을 썼다. 그는 김병준 교육부총리 인사 파문을 강력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교육부총리가 자진사퇴했다면서 임명 13일 만에 사퇴한 인사파탄의 원인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민심과 거꾸로 가는 노 대통령의 오기와 소통부재의 리더쉽 때문이다”라고 질타했다.

“여당 내에서 조차 반대가 적지 않았는데도 노 대통령은 군사 작전하듯 전격 내정해 임명했다. 그 후유증이 인사파탄으로 나타난 것이다.”

“정부 중요자리의 인사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시행착오와 국력소모는 고스라니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민심에 귀 기울이는 ‘소통의 정치’가 이뤄질 때 레임덕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요즘 누리꾼들의 논평은 촌철살인이다.

“노무현 대신 이명박, 김병준 대신 이동관 넣으면 딱이네.”

“노 전 대통령을 폄하하는 글인데 지금 보니 이명박 대통령을 얘기하는 것 같다.”

“자승자박, 사필귀정, 자 이젠 니 차례다.”


싫겠지만 다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입이다. 대통령의 뜻을 정확하고 진솔하게 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국민의 소망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기자들 앞에서 매일 브리핑을 하고 그의 모습은 방송을 통해 전 국민에게 알려진다. 대변인은 청와대의 꽃이다. 국민들에게 가장 정확하게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전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직한 모습이다. 정직은 신뢰를 주고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것을 뒷받침 하는 것은 도덕성이다. 저 사람이 하는 말은 진짜야. 믿을 수 있어. 이렇게 국민들이 생각할 때 대통령의 말은 천금이 된다.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는 재벌 총수가 국민 앞에 나와 별의 별 소리를 다 해도 국민은 믿지 않는다. 도덕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동관 대변인이 방송에 나와서 대통령의 말을 전할 때 국민들은 얼마나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 그가 설사 실수를 저질렀다 해도 그의 위법행위는 국민들의 믿음을 주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취임 초부터 재산형성 과정에서의 도덕성 논란뿐 아니라 보도를 막기 위해 언론사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부분에서는 더 이상 고려할 여지를 상실한 것이다.

도덕성 논란에 휘말린 대변인의 말은 절대로 무게가 실릴 수 없고 이는 대통령의 부담과 직결될 것이다. 때문에 공직자의 말과 행동은 거짓이 없어야 하고 이번 청와대 대변인의 경우 설사 실수라 해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재산공개 과정에서 잘못으로 박미석 수석이 사퇴했다. 위법논란이 끊이지 않는 곽승준 수석과 김병국 수석도 이동관 대변인과 함께 거취를 결심해야 할 인물이다. 그 중에서도 이동관 대변인은 결단을 하루라도 더 늦출 수가 없다. 왜냐면 그의 얼굴 뒤에는 늘 이명박 대통령이 겹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도 위장전입 멍에를 지고 있다.

한승수 총리와 내각의 장관들, 청와대 수석들의 위장전입과 투기의혹은 일일이 꼽을 수도 없다. 이동관 대변인의 브리핑 하는 얼굴과 겹쳐서 의혹 장관, 의혹수석들의 모습을 떠 올리며 국민들은 얼마나 그에게 신뢰를 보낼까.

국민들은 그의 거취를 지켜본다. 빠른 결단이 대통령과 국민을 위하는 것이다. 공직자로서 절망하는 국민을 보는 것 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대변인 사퇴가 바로 국민의 절망을 조금이나마 덜어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어제 광화문에는 수만의 인파가 몰렸다. 정부가 2시간이 넘게 쇠고기수입 관련 생방송 해명을 했는데도 국민은 믿지 않는다. 신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호랑이라고 한다는 장관의 말을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 신뢰를 잃은 대변인의 역할은 끝났다.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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