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급' 프로그램 안방습격

TV 보는게 아니라 에로비디오를 보고 있는 듯, “불쾌 하다”
특정 프로그램 “남녀간 정사신 10회 이상 방송…심각하네”


케이블 TV 선정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밤늦은 시각,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낯 뜨거운 장면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방송되기 일쑤다.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어린 아이들이 볼까 겁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케이블 채널의 자체 제작 드라마의 비중이 늘면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농도 짙은 애정신이 등장하는 가하면 성범죄, 성도착 등 비정상적 성관계가 자세하게 묘사되기도 한다. 채널만 돌리면 ‘포르노물’을 연상케 할만 한 장면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 <시사신문>은 케이블 TV의 ‘아찔한 노출’을 집중 해부했다.

이혼 관련 프로그램, 이혼과 무관한 중고생 시청점유율 46.5%
19세 이상 관람 등급 오히려 청소년 유혹하는 ‘금단의 열매’


“채널을 돌리던 중, 예전에 자주 애청하던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어요. 바로 tvN에서 방송하는 ‘위자료 청구소송’이라는 프로그램이었죠. 지상파 프로그램인 ‘사랑과 전쟁’같은 장르를 좋아하는 저로선 예전부터 자주 봐왔거든요. 최근 몇 달간 TV볼 시간이 없었던 전 방송을 보다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시청하는 시간이 10분도 채 안됐는데…남녀 간 정사신이 족히 7~8번은 나오더군요. 속옷을 벗기는 것까지…정말 적나라하더군요. 심각하지 않나요?” 케이블 TV 시청을 즐긴다는 김지영(26·여)씨의 말이다.

평소 지상파 방송보단 케이블 방송을 더 선호하는 김씨는 최근 방송을 보다 혀를 내둘렀다고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TV 시청을 할 수 없었던 최근 몇 달 사이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의 선정성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 있었다는 것.

‘애들볼까 무서워요’

또 다른 애청자 성정은(30·여)씨도 김씨의 반응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성씨는 “예전에는 남녀 정사신도 많이 가려서 연출됐지만 최근에는 TV를 보는게 아니라 마치 에로비디오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서 “심한 경우엔 여배우가 아주 다 벗고 나오더라”고 한숨지었다.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하다지만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문제는 어른들이 봐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프로그램들이 TV를 장악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시청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두 자녀를 두고 있는 이봉주(44)씨는 주말 밤 자정 시간대에 중학교 3학년생인 아들과 함께 케이블TV의 한 채널을 무심코 보다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고 한다.

듣기 민망한 성적 표현과 함께 노출이 심한 남녀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이씨는 “가족과 TV를 보고 있을 때 야릇한 내용의 방송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야 하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 케이블 TV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의 노출 수위가 갈수록 위태롭다. 공중파에서는 언감생심 꿈
도 못 꿀 여배우들의 가슴 노출은 이제 ‘키스신’ 정도로 여겨질 정도다. 또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
들에서는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여자 출연자들의 옷 벗기기에 여념이 없다.

작년부터 최근까지 방영된 케이블 성인물은 약 20여편. tvN의 ,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 OCN의 ‘메디컬 기방 영화관’, ‘천일야화’, 슈퍼액션의 ‘서영의 스파이’, 채널 CGV의 ‘라디오 야설극장 색녀유혼’, ‘파이브 걸즈’, 스토리온의 ‘이사람을 고발합니다’ 등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이 중 스토리온 채널에서 높은 시청률로 방영되고 있는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는 남편이나 아내를 고발해 온 이들의 사연을 재연화면으로 지켜보면서 패널들이 토의를 나누고 그에 대한 판결을 내는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성관계 시간이 짧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불만이나, 노출 심한 아내에 대한 남편의 불만 등 지극히 사적인 부부관계를 들여다봄으로써 시청자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코미디 TV의 ‘無조건 기준! 그 속이 알고 싶다’는 신개념 엽기 지식 버라이어티 실험 쇼를 지향한다. ‘섹시 댄스’의 기준을 찾기 위해 과감한 노출 의상을 입은 여성의 댄스를 직접 본 남성 출연자들의 심장 박동수를 체크하는 식의 기상천외한 실험을 마다 않는다.

이 프로그램 역시 실험이라는 명목 하에 반라로 여자 출연자들을 춤추게 하는 등 높은 선정성으로 유명세(?)를 떨친 바 있다.

연예전문채널 ETN은 얼마 전 ‘백만장자의 쇼핑백’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거의 나체인 여성의 몸 위에 초밥을 놓고 시식하는 일명 ‘네이키드 스시’(알몸 초밥)를 내보냈다가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청소년 시청률 ‘급증’

주요 부위만 살짝 가린 여체 위에 생선초밥을 올려놓은 ‘알몸초밥’을 일종의 트렌드로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었다는 것이 방송 관계자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여성의 몸을 성적 도구화했다는 이유로 거센 후폭풍을 맞기도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이 나간 후 ETN 측에 주의 통보와 함께 방영 내용에 대해 자체적인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 운동본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ETN의 ‘백만장자의 쇼핑백’은 ‘네이키드 스시’와 관련된 내용을 방송해 여성의 몸을 성적인 도구로 전락시키고 나아가 여성의 인격을 무시했다”면서 “이러한 내용의 프로그램이 다시 방송되지 못하도록 인터넷에서 서명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Mnet의 ‘비키니 하우스’라는 프로그램에선 진행자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연예뉴스를 진행해 방영 전부터 외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외설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ETN의 리얼프로그램인 ‘응사마 장가가자’는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는 ‘전원일기’로 유명한 ‘응삼이’ 박윤배씨가 서바이벌 형식으로 두 여성과 데이트를 즐긴 후 마음에 드는 여성이 생존하는 형식의 리얼프로그램이다. 기획 의도는 ‘응사마 장가가기 프로젝트’라고 밝히고 있지만 정작 화면에는 여성들과의 데이트 과정에서 농도 짙은 스킨십과 5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다소 질펀한(?) 장면들이 여과 없이 연출됐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지 제작자들의 의중이 의심된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연일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특히 심야시간의 ‘포르노 급’ 프로그램에 대한 청소년층의 애청자가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서 ‘청소년 TV시청 행태 및 이용자 특성 분석’에 따르면 중고생의 심야시간(밤12시~새벽2시) TV시청률이 최근 3년간 꾸준히 늘어났다.

중학생의 경우 2005년 17.8%에서 2007년 18.4%로 2년새 0.6%포인트 증가했으며 고등학생은 2007년 18.6%로 2005년(17.8%)보다 시청량이 0.8%포인트 상승했다. ‘19세 이상 시청가’ 프로그램이 대거 배치된 시간대에 청소년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

시간대별 청소년 시청률 현황도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중고생은 밤9시부터 시청률이 상승하다가 10시 무렵에 최고치에 이르고 11시 이후 하락한다. 오후1시부터 밤10시까지인 청소년보호시간대의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하는 결과다.

청률이 높은 19세 이상 시청가 프로그램에 청소년들이 높은 시청점유율 등 보이는 등 구체적인 프로그램 시청유형도 충격적이다.

예컨대 스릴러 에로물인 미국영화 ‘육체의 거래’는 한 케이블 TV에서 심야시간에 방송했음에도 중고생 시청점유율이 37.5%에 달했다. ‘법률적 자문과 함께 이혼과 위자료에 대한 오해 해소’라는 ‘건전한 명분’을 내세운 케이블 TV 프로그램 ‘김구라의 위자료 청구소송’의 경우 이혼과 무관한 중고생 시청점유율이 46.5%나 됐다. 재연 드라마형식의 프로그램 진행이 청소년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평가다.

방송영상산업진흥원 측 관계자는 “19세 이상 시청가능 등급이 오히려 청소년을 유혹하는 일명 ‘금단의 열매’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방송사들이 교묘하게 이를 이용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외면할 수 없는 ‘섹시코드’

그래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계속해서 제작될 가능성이 크다. 지상파 방송이 메우지 못하는 틈새시장인 탓이다. 케이블 채널 관계자는 “아직은 외국뿐 아니라 지상파와 견줘도 제작 여건이 열악하다”며 “앞으로 시청층이 두꺼워져서 투자를 많이 하면 질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케이블 TV는 프로그램 편성에 있어서도 ‘섹시코드’를 강조하고 있다. 심야 시간대 성인용 드라마와 영화를 집중 편성하는 것은 기본.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선정성이란 결국 양날의 칼이다”고 말한다. 케이블 채널의 심야 시간대는 지상파 채널에서 감히 다룰 수 없는 소재나 내용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게 열려 있지만 좋은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가 상대적으로 보장되기에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묘사가 가능하지만, 폭력과 섹스라는 소재 자체의 속성이 이미 선정성과 직결되는 만큼 케이블 프로그램의 제작자들에게는 상당한 수준의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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