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의 반쪽짜리라는 불명예를 회복 하는 길

세계 2차대전 후 가장 빠르게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는 한국이라고 한다. 더구나 6.25라는 골육상쟁의 처참한 비극을 이겨내고 민주주의 뿌리를 내렸으니 얼마나 대견한가.

가시밭길이었다. 전쟁과 가난, 독재의 탄압과 맞서 흘린 고귀한 희생을 어찌 일일이 거론하겠는가.

세계는 우리를 대한민국을 칭찬한다. 유일한 분단국가로 기억되어도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고 외환보유고 3천억 달러의 부자 나라라고 부러워 하니 기분 좋다.

그림 한 장 사는데 몇 십 억원을 지불하는 부자도 살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다. 국민의 권리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제 18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는데 투표율이 46%라고 야단이다. 너무 낮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70%는 된다는데 그걸로 따지면 대한민국은 후진국이다.

후진국이라고 평가절하 되도 할 말이 없다. 46%의 투표율은 엄연한 사실이고 더욱 할말이 없는 것은 20대의 투표율이 19%라는 사실이다.

20대라면 비판의식이 강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도 20대였다. 그런 20대가 투표율에서는 낙제다.

비판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바늘구멍보다도 더 좁은 취직 걱정과 투표 해 봤자 생기는 거 없다는 나름대로 비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거기에다 현실정치에서 보여주는 정치인들이 부정적 행태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더욱 부채질 할 것이다.

46%의 투표율에다 그 절반의 득표로 당선이 되는 이른바 10만 선량이라는 국회의원. 어떤 의원은 27%라는 최저득표기록을 세웠다.

어느 교수가 토론에 나와서 한 말이 오래 뇌리에 남는다. 이번 당선된 의원들은 투표 정족수 미달로 당선 무효라는 극언을 했다.

상식대로 말하면 투표참가자가 50% 미달하면 정족수 부족이다. 선거가 성립되지 않는다.

당선된 의원들은 말 할 것이다. 누가 투표하지 말했느냐고. 맞다. 투표하라고 사정을 했다. 선관위에서는 공공시설 이용시 할인받을 수 있는 투표확인증까지 발행했다. 그런데도 46%다.

결국 정치와 국민이 함께 반성해야 할 문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로운 일이면 힘 좀 들고 귀찮더라도 참여한다. 선거도 같다.

아무런 이득이 없고 그렇다고 대단하게 정의롭지도 않은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발 품 팔아 왜 투표를 하느냐는 생각이 투표장으로 가는 발길을 잡는 것이다.

법정공휴일인데 애인과 놀러가든지 아니면 잠이나 실컷 자지 아무 가치도 못 느끼는 투표를 왜 하느냐는 국민은 없을까.

그러나 우리 곰곰이 생각해 보자. 선거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정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독재자의 말 한마디가 바로 법이 되는 세상이 된다면 어찌 될 것인가.

국민이 피를 흘려가면서 직선제를 쟁취한 것은 바로 독재를 거부하기 때문이었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직선제가 국민들의 외면으로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 버린다면 이건 바로 국민의 불행이다. 그래서 투표가 필요하고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다.

46%의 투표율이라도 선거는 끝이 났다. 한나라당은 153석으로 과반수를 얻었고 민주당은 81석이 됐다.

안정 세력을 만들어 달라고 외치던 한나라당이 언론의 예측한대로 절대과반수를 얻었다면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국회에서 상임위원장까지 독식하고 마음대로 국회를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최선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균형이다. 적당히 견제도 받아야 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국회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의석을 차지한다면 그건 아니다. 잘못 갈 수가 있다. 화를 부르게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토론하고 표결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원칙대로만 한다면 절대로 억지 정치는 없다.

정답대로 하는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들이 정치인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는가. 정치는 정상궤도에 오르고 갈등은 사라진다.

이것이 우리 국민 모두가 소망하는 이상적 정치의 모습이다. 반대는 하되 죽기살기식 결사반대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성숙한 정치의식은 바로 상대를 인정하는 상생의 정치다.

지금까지 이 땅의 정치는 전부가 아니면 전무의 정치였다. 그래서 정치는 황폐화되고 국민에게 외면을 당했다.

반갑지 않은 소문이 들린다. 한나라당이 과반의 의석으로 쟁점법안을 밀어 붙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반드시 부작용이 생기고 갈등이 증폭되고 정치는 실종되고 여야간의 정치투쟁만이 남는다.

정치와 정치인을 국민에게 백안 시 당하고 나라가 어떻게 되던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정치허무주의에 빠진다. 이게 바로 나라의 불행이다. 왜냐면 애국심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운 금배지를 떼고 다니는 국회의원이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창피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뭐가 창피하냐니까 몰라서 묻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꾸만 배지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못 달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 안달을 한다. 죽기 살기다. 국회의원이 되면 뭐가 생기는지 뭐가 좋은 건지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여러 가지 달라지는 게 있다고 한다. 생기는 거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장관들 불러놓고 하인 다루듯 하는 의원도 있다. 반말 찍찍 하는 의원도 있다.

그런 위세를 부리려고 국회의원 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 하려는 진짜 이유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고 그 말은 맞다.

국민은 어떻게 보는가. 절대로 그렇게 보지 않는다. 책임은 국회의원에게 있다.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아닌가. 아니라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선거가 끝났다. 반복하지만 반의 반쪽자리 국회의원이라고도 한다. 투표정족수 미달이라 당선무효라는 교수도 있다.

국회의원의 귀라고 이런 소리가 안 들릴 리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잘 하면 된다. 반의 반쪽 자리 국회의원이라고 폄훼를 해도 잘만 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46%의 투표율도 문제지만 100%의 투표도 문제다. 결국 잘하면 되는 것이다.

무능한 국회의원의 가장 큰 후원자는 국민의 무관심이라고 한다. 얼마나 창피한 말인가. 반의 반쪽자리 국회의원의 불명예를 씻는 방법은 무엇인가. 잘 하는 것이다.

반의 반쪽에다 무능까지 겹치면 명예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족보에다 국회의원이라고 적지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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