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해라서 그랬던지 온통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야단법석을 치던 어둡고 찌든, 다사다난했던 갑신(甲申)년을 보내고, 새벽에 일어나 일나가라고 울어대는 '닭'의 해 을유(乙酉)년을 맞았다. 올해는 '소', '닭'보듯 하는 무관심의 대상이 아닌 일찍 일어나 살림살이 늘리는 해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음식점, 미용실, 양품점, 슈퍼마켓 등 자영업 매출이 지난해들어 부쩍 감소세를 나타내던 극심한 내수(內需)침체로 문을 닫는 영업소들이 속출했다는 것이 요즘 한국의 경제 불황을 말하는 국민여론이다. 또 정치권은 어떤가.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안법 폐지안 등 4개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려는 여당과 이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야당간에 막발, 고성, 모함, 흑색선전 따위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진흙탕 싸움으로 지새우는가 하면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방불케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졸부(猝富)들이 '돈'무대에서 춤을 추는 등 빈부의 차이가 극심해지는 나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수출신장'을 입이 마르도록 선전하고 있지만 심상치 않은 내수 불황으로 "체감경기가 이른바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외환위기때보다 더욱 좋지 않다"는 서민의 하소연이 1년 내내 그치지 않았다. 내수경기의 대표적 현상인 소매업 생산은 최장불황기간인 2년 가까이 연속 감소를 기록했던 것이다. 보잘것없이 작은 식당 주인들의 '솥뚜껑 시위'가 서민의 경제난과 불황을 대변하고 있다. 5% 대 성장을 공약(空約)했던 정부는 뒤늦게 "4%대에 그칠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국민에게 또다른 충격을 안긴 것은 지난해 3월12일 헌정(憲政)사상 처음으로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등에 대한 탄핵안을 의결했던 사실이다. 대통령의 권한행사는 즉각 정지됐고, 전 고건 총리가 대행했던 것이다. 5월14일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이 난 다음에야 회복됐다. 국민의 탄핵반대 역풍은 예상외로 컸던 탓으로 '4·15 17대 총선'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과반의석(152석)은 놀랄만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탄핵을 주도했던 야당은 급기야 패배라는 쓴맛을 어쩔 수 없이 삼켜야 했다. 또 다른 획기적인 사태는 정부의 신행정수도 이전법을 지난해 10월21일 헌법재판소가 '이전법'의 위헌을 결정한 사실이다. 수도 이전은 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추진했던 대대적인 사업이다. 정부는 어쩔 수 없이 헌재 결정을 수용, 즉각 사업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행정수도 입지로 결정했던 충남 연기, 공주 등 충청권의 거센 반발, 여권의 헌재 공격 등 정치, 사회적인 폭풍같은 후유증이 거세졌다. 정부의 '대책위'는 몇가지 대안을 강구, 곧 내놓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신행정수도특별법'으로 위헌결정에 따른 후속대책인 '행정특별시', '교육·과학 행정도시' 등 3개안으로 사실상 압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일로 행정부 2인자인 이해찬 총리가 듣기 민망한 발언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이 총리는 자신의 심한 한나라당 폄하발언에 대해 사과하라는 요구에 대리인을 시켜 그것도 '사과'한다는 뜻인지, 사의(謝意, 사례한다는 뜻)라는 알쏭달쏭한 말로 어물어물 지나치고 말았다. 이후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총리무시전략'을 편 데 대해서 "(정치생활)17년인데 그런꼴 어디 한두번보냐, 질문 안하니까 편하고 좋더라"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그는 지난해 10월 유럽순방 중 조선·동아일보에 "까불지말라, 내 손안에 있다"는 등 참으로 품격낮고 이해하기 어려운 속언을 마구 쏟아놓았다. 이제 그는 예언(豫言)까지 하고 나선다. "……2007년(대선)은 ……(현 여권이)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총리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올해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끝으로 교육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이름뿐인 대학, 이를테면 '간판'을 얻기 위한 대학이 수두룩하다. 올해는 이따위 대학답지 않은 대학들은 결단코 도태(淘汰)돼야 한다. 또 교육부는 꼭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의 실상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학생 대비 교수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도서관의 책은 얼마나 되고, 연구실의 실험기기는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졸업생은 사회의 어느 부문에 얼마나 진출하고 있는지 등 학생과 학부모가 알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난해 '수능 휴대전화 커닝' 같은 낯뜨거운 일은 앞으로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 '도덕불감증'을 여실히 드러내는 짓은 결코 없애야 할 것이다. 안규호 시사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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