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단독처리’vs 야 ‘실력저지’?

여야 4인 대표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4대입법을 비롯한 쟁점법안 처리를 둘러싼 정치권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27일 밤 4인 대표회담을 갖고 국가보안법과 과거사법 쟁점에 대한 절충을 시도했지만 끝내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 천정배 원내대표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김덕룡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5시 30분부터 6시간 넘게 마라톤 협상을 가진 뒤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며 국민여러분께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4자회담을 통해 대치정국의 해소를 기대하던 실낱같은 기대가 사라지고 연말정국은 다시 급랭으로 반전할 것으로 우려돼 막판 대타협 여부가 주목된다. 이날 오후 5시30분부터 밤 12시까지 진행된 심야 협상에서 여야는 국가보안법의 조문별 입장을 조율하는 등 이전 회담보다는 진전된 형태의 논의를 진행했으나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평행선을 그린 것으로 전해졌다. ◆ 굳은 표정속에 4자회담 재개 이날 회담에 앞서 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협상 타결 전망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응답을 극히 꺼리며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물어본다고 뭐가 나오겠어요?"라고 답했다. 이부영 의장도 회담재개의 배경에 한나라당측 태도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 "과장법이다. (상대방이)뭐하지 않으면 (우리도)뭐하지 않겠다는 말은 정치인이 쓰는 수사법이 아니다"고만 말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도 기자들의 질문에 일절 응답없이 굳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여야 관계자들은 4인 회담이 최종적으로 깨지면 열린우리당의 ‘단독처리’와 한나라당의 ‘실력저지’가 곧바로 격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벌써부터 ‘국회법에 따른 처리’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27일 당 상임중앙위 회의에서 “4인 회담이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면 국회법에 따른 국회 운영을 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상임위와 본회의를 단독으로라도 진행하는 게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원내 지도부는 4인 회담이 결렬될 경우 즉시 상임위를 열 수 있도록 상임위별로 만반의 준비를 지시해둔 상태다. 한나라당이 참석할 경우엔 표결로, 불참할 경우엔 단독으로 법안들을 처리해 모두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김원기 의장에 '직권상정' 압박 열린우리당의 이런 전략은 결국 김원기 국회의장에게‘공’을 넘기려는 계산으로 보인다. 당 관계자는 “일단 법안들을 법사위에 넘겨두고 한나라당 소속인 최연희 법사위원장에게 처리를 촉구하되, 거부할 경우엔 김 의장의 본회의 직권상정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안법 연내폐지를 촉구하며 농성과 시위를 벌여온 열린우리당 당원 및 지지자들의 공격 표적도 차츰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집중되고 있다. 국회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열린우리당 강경파 의원들도 ‘직권상정 연내처리’를 구호로 내걸고 김 의장을 압박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4인 회담’이 결렬 위기에 몰린 것은 여당이 강경 기조로 돌아선 탓”이라며,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고 열린우리당을 압박했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 그 책임을 열린우리당에 떠넘기며, 단독 처리를 몸으로 저지할 명분을 쌓으려는 계산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표는 이날 당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어렵게 성사된 4자 회담에서 문제가 해결되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다”며 “(그러나)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분명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보나 타협보다는 원칙 고수에 무게를 두겠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 ◆우리당 "박대표 원칙만 되풀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4인 대표회담이 결렬 위기에 놓이면서, 두 당 지도부의 정치력 부재를 탓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가보안법 개폐 등 ‘4대 법안’을 둘러싼 상임위 협상이 일찌감치 한계를 드러내면서 두 당 지도부의 정치력과 ‘통 큰’ 타협을 기대했지만, 되레 한계만 드러냈다는 것이다. 여야 관계자들은 지난 21일부터 진행된 4인 대표회담을 되짚어 보면, 이런 부정적 결과는 ‘예고된 일’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여야는 철학과 가치관에서 서로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존재였다. 4대 법안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한나라당은 ‘위헌’으로 맞받아쳤다. 특히 한나라당 쪽에선 박근혜 대표의 ‘원칙적’인 태도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상황에 정통한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27일 “보안법 폐지 얘기만 나오면 박 대표는 ‘그러면 국군은 나라를 어떻게 지키나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박 대표가 회담 내내 쟁점에 대한 당의 입장이 적힌 수첩을 들여다보며 발언을 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박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도 “역사에 대한 책임 문제가 있으며, 한나라당만 쳐다보는 지지층을 생각해야 한다”고 원칙론을 거듭 강조했다. ◆한나라 "여 강경파 눈치보느라" 이에 대해 한나라당 쪽은 “한마디로 책임 떠넘기기”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열린 자세로 임하고 있다”며 “여당은 남 탓하지 말고, 협상의 진짜 걸림돌이 되고 있는 여당 강경파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받아쳤다. 핵심 지지층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불안정한 상황 역시 여야 지도부의 행동반경을 제약했다는 지적이다. 열린우리당으로선 외부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각종 당원모임까지 보안법 연내 폐지 등을 주장하며 지도부 책임론까지 거론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개정 수용 의사를 갑자기 ‘없던 일’로 돌린 것은 사학재단 관계자들이 박근혜 대표 등을 방문해 “정치적 타협을 하지 말라”고 압박한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7일간 예정된 여야 대표 4인회담이 협상시한을 꽉 채우며 진행되었지만 결국 결렬되었다. 양당 4인 지도부는 정확히 자정이 된 시각, 국회 귀빈식당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합의된 내용은 없다" "다시 협상을 할지 안할지 모른다"며 각자 브리핑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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