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하자니 안 되겠고, 침묵하자니 역풍 두렵고

한나라당을 휩쓸고 있는 ‘물갈이 쓰나미’가 전선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대운하 폭풍’이 불어닥칠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첩첩 산중이다. 최근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둘러싸고 당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 관계자는 “이번 총선에서 대운하 공약을 내세웠다간 불리하다는 내부 조사결과가 나왔고 당 수뇌부는 물론 대통령 측근들까지 공약에 대해선 함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나라당이 지난 대선에서 간판 공약으로 내걸었던 대운하 공약이 결국은 총선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대운하 공약이 종적을 감춘 내막을 알아봤다.


내부 조사결과 “총선에서 불리하다”, 당 수뇌부도 ‘운하 함구령’

“한반도 대운하 앞으로도 사사건건 한나라당 발목을 붙잡을 것”


“대운하의 ‘대’자라도 잘못 꺼냈다간 역풍에 날아갈 수도 있다.” 한나라당 핵심 인사의 전언이다. 그는 “공천 갈등이 가라앉기도 전에 야당은 총선에서 의석수를 확보하기 위해 대운하로 공격을 해올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대운하 공약은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간판 공약으로 입지를 굳혀왔다. 당시 MB측 핵심 관계자는 “이명박 후보의 ‘불도저’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대운하는 포기할 수 없는 공약”이라면서 “당내에서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지만 곧 잠잠해 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후 당내에서 파열음이 고조되고 반대 여론이 들끓자 이재오 최고위원은 대운하 순례를 도는 등 어느 정도 반발을 잠재워왔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한반도 대운하는 앞으로 사사건건 한나라당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천 갈등이 극에 달한 현재까진 대운하가 가시화되고 있지 않지만 이미 곪을 대로 곪았다는 얘기였다.

실제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대한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치고 있다. 사면초가에 처한 꼴이다.


대운하는 ‘올가미’?


최근 서울대학교 교수 381명은 본교 박물관 대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운하 건설 전면 백지화를 촉구했다.

서울대 교수 381명은 전체 교수진 1750여 명의 22%에 해당하는 숫자로 ‘집단의사’에 이은 ‘집단행동’으로 번질 경우 사회적 파장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이날 발표한 명단 이외에도 반대 의사를 가진 교수들이 더 많다는 것이 교수 측 설명이다.


뿐만 아니다. 대운하가 지나가는 영남지역의 반발도 심상치 않다. 얼마 전 권기윤 민속학과 교수 등 국립 안동대 교수 26명은 성명을 통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에서 바닷길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물류 이동이 가능한데 배를 산으로 보내 억지로 물길을 뚫는 대운하 건설은 상식을 저버린 행위”라고 지탄했다.


대학 교수들이 집단적으로 경부운하 건설 반대 의견을 낸 것은 서울대에 이어 2번째이고, 경부운하가 지나는 곳으로 거론되는 영남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촉발됐다. 이후 영남권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는 실정이다.


당내 반발도 만만치 않다. 대다수 의원들이 ‘웃전 눈치 보기 식’으로 입을 다물고 있지만 물밑에선 “이건 정말 아니다”는 말들이 오고가는 상황.


한나라당 박측 핵심 인사는 “대운하를 총선에 내세웠다가 불리할 것 같다는 수뇌부의 판단은 곧 민심이 운하 쪽에 없다는 것과 동일한 뜻”이라면서 “민심이 따라주지 않는 공약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고 비꼬았다.


총선을 앞둔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선 대운하 공약이 총선에서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란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모 의원의 보좌관은 이에 대해 “공천을 받는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면서 “공천이 끝나도 야당 측에서 대운하를 두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어떤 공세를 펼칠지는 안 봐도 뻔한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무조건 불리한 ‘한나라당’


즉 야당측에선 충분한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한 채 총선 이후 섣불리 대운하에 대한 공세를 폈다간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따라서 총선이 시작되기 전 대운하를 집중적으로 이슈화 시킬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야당 측 한 인사는 “현재 대운하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총선에 불리할 것 같으니까 입도 뻥긋 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해가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그 자체만으로도 정치적인 공격을 당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어 “본격적인 총선전에 돌입하면 우리 측에선 한나라당이 운하를 놓고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몰아붙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그럴 명분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향후 한나라당이 야당의 집중 유탄 투하에 어떻게 대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st35@sisa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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