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기술·제품기술 원천…오너 소유?

최진민 귀뚜라미 명예회장의 남다른 기술보유 이력이 업계의 화제다. 최 회장은 귀뚜라미 보일러에 적용 되는 특허 및 산업재산권을 500여개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귀뚜라미보일러에서 보일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최 명예회장의 특허 및 사업재산권을 임대해야 하는 상황. 동종 업계에서 오너가 이렇게 산업재산권을 보유 전례가 없어 의아한 시선을 보낸다. 최 명예회장이 이렇게 많은 특허·실용신안을 보유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시사신문>이 귀뚜라미의 특허 소유 현황을 짚어 봤다.


▲ 최진민 귀뚜라미보일러 명예회장의 특허 소유는 타 기업과 명백히 구분되는 특징 중 하나다.
보일러의 역사 귀뚜라미보일러 “뭔가 달라도 달라(?)”
핵심 기술은 최진민 회장 소유, 쓰려면 돈 내고 써야

국내 보일러라고 하면 다양한 브랜드가 떠오르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주)귀뚜라미보일러(이하 귀뚜라미)다. 40여 년간 보일러 업체를 지켜왔다는 전통성은 국내 보일러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물론 그 역사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출광21 리콜사태를 비롯해 최근에는 소비자들의 집단 항의도 이어졌다.

그렇다고 귀뚜라미가 보일러업계의 위상이 깎이는 것은 아니다. 40여년간 보일러 업계 선두를 수성해온 만큼 소비자의 신뢰도 적지 않은 탓이다. 이런 배경에는 귀뚜라미의 기술력이 있다. 사실 보일러 업계에서는 보일러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기술’을 꼽는다.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는 실용신안·특허(이하 실용특허)이 꼽힌다. 산업재산권분류되는 실용신안과 특허는 둘 다 물건에 대한 기술적 창작 활동으로. 실용신안은 이른바 소(小)발명, 소(小)개발이고 특허는 보다 고도한 발명에 대해서 부여되는 권리다. 그렇다면 귀뚜라미 보일러의 실용특허는 어떨까.

귀뚜라미에는 기술이 없다?

귀뚜라미와 함께 소위 보일러 3강으로 일컬어지는 경동나비엔과 린나이코리아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구분점이 있다. 법인 보유 실용특허가 가장 적다는 것이다.

귀뚜라미가 보유한 실용특허 종류는 동급 업체와 비교해서 가장 적은 수치로 20여 개에 불과하다. 경동나비엔이 약 150여 개, 린나이코리아가 180여 개 보유한 것을 감안하면 크게 적은 수치다. 귀뚜라미의 역사와 판매해온 보일러 종류를 생각하면 이것은 언뜻 납득가지 않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국내 최초 연탄보일러 공급에 이어 국내기름보일러 1호를 탄생시키는 등 보일러시장의 기술에서 선봉을 달려오던 귀뚜라미였기 때문이다.

그 비밀은 최진민 귀뚜라미그룹 명예회장에게 있다. 귀뚜라미 법인이 아닌 최 명예회장이 약 120여 개에 달하는 실용특허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산업재산권을 모두 포함하면 최 명예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500여 개에 이른다.

업계에는 이런 유례없는 특이한 최 명예회장의 이력이 자주 화제가 되고 있다. 귀뚜라미 기술의 대부분이 최진민의 이름으로 등록된 탓이다.
귀뚜라미 관계자는 “귀뚜라미가 경쟁사에 비해 A/S기간이 긴 것도 모두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라며 “최 명예회장은 보일러에 대해 누구보다 전문가다”라고 설명한다.

▲ 귀뚜라미보일러는 40여년간 업계 1위를 지켜오고 있는 보일러 업체다. 하지만 그 기술 원천을 둘러싸고 업계의 말이 적잖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도 업계일각에서는 아리송한 반응을 보인다. 이런 귀뚜라미의 사업방식이 여타 경쟁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법인이 특허를 보유하지 못하면서 이에 대한 특허사용료(로열티)를 지불하는 등의 대가가 따르게 된다. 때문에 경동나비엔과 린나이코리아는 모두 연구소를 통해 자체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개발되는 기술은 법인명으로 출원된다. 오너의 명의가 아니니 기술 이용에 있어 별도의 계약이 필요하지도 않다.

반면 귀뚜라미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귀뚜라미 그룹을 가리켜 500여 개에 달하는 특허 및 산업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이 되는 셈이다. 회사가 실용특허에 대한 권리를 가진 것과 오너가 실용특허에 대해 권리를 가진 것은 전혀 다르다. 회사가 권리를 보유했을 때와 달리 오너의 특허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 귀뚜라미는 오너와 별도로 임대(실시권) 및 권리이전 계약을 체결해야만 한다.

즉, 기업에 실용특허 권리가 있지 않다는 것은 해당 기술사용을 위해 최 명예회장과 계약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귀뚜라미 관계자는 “지금은 잘 알 수 없지만 명예회장과 특허 사용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었다”면서 “일부 기술은 무상사용하기도 하고 다른 일부는 특허료 낸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법인이 기술을 자체 개발해 출원하는 경우보다 제품원가에 있어서는 특허료 만큼의 부담이 작용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귀뚜라미만 이렇게 다른 것일까.
이어 귀뚜라미 측 관계자는 “최진민 명예회장이 보일러에 정통한 인물인 만큼 실용특허가 쌓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며 “사측 기술개발은 귀뚜라미 측에서는 별도의 연구소를 운용하지 않고 품질개선팀에서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일러 시장이 과도기로 완전 신기술이 나오기는 힘드니 기존의 기술을 개선하는데 역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기술 원천은 오너일가로

한 보일러 전문가는 “기술에는 끝이 없다”며 “보일러 업계 당면한 문제는 열효율을 높이는 것부터 전자화 된 보일러의 제어기술 등 과제가 끝이 없다”며 “실용특허 개발을 오너 개인이 모두 담당한다는 것은 이해가지 않는 일”이라고 밝혔다. 보일러가 1990년대 이전처럼 기계식이 아닌 전자공학, 기계공학, 연소공학, 재료공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가 한데 모여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 귀뚜라미는 현 체제를 바꿀 생각은 없어 보인다. 심지어 최 명예회장의 장남인 최성환 과장도 보일러, 에어컨 등에 실용특허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귀뚜라미의 핵심 기술, 제품 디자인의 원천을 오너부자(父子)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업계의 의아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귀뚜라미의 제품은 아직 시장 1위를 달성하고 있다. ‘뭔가 다르긴 다른 1위’ 귀뚜라미의 현 체제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시선이 집중된다.


▶ 귀뚜라미그룹 지배구조

▲ <귀뚜라미 계열사 지분 현황 (2006년 12월을 기준)>
* % 지분율.
* 괄호 안의 지분은 (주)귀뚜라미보일러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
* → 지분 보유 방향.

1962년 창립된 귀뚜라미보일러는 올해 창립 46주년을 맞이한다. 귀뚜라미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 난방역사와 함께 한다고 할 정도로 국내 보일러 업계를 이끌어 오던 맏형이다. 현재 귀뚜라미그룹은 (주)귀뚜라미보일러를 중심으로 5개의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

이들 기업은 계열사간의 순환출자 구조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특히 핵심 역할을 하는 귀뚜라미문화재단의 역할도 돋보인다. 귀뚜라미문화재단은 귀뚜라미보일러에 20.06%, 나노켐에 19.92%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창업주인 최진민 명예회장과 그의 일가 등의 지분은 귀뚜라미보일러 61.78%, 귀뚜라미홈시스 61.96% 나노켐 38.61%, 귀뚜라미랜드 52%를 보유하면서 사실상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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