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는 것뿐인 잘못된 인사를 왜 한단 말인가

왜들 이러시는가. 결과가 명백한 무리수를 왜 두시는가. 밀어붙이면 대충 넘어가리라고 생각하시는가. 아무렇게 해도 민심은 따르리라고 믿으시는가. 오만의 근거는 어디에 두셨는가. 지금이 전두환의 ‘땡 전’시대라고 생각하시는가.

1961년 5월16일 새벽, 서울 남산에 있던 KBS는 육군소장 박정희가 이끄는 쿠데타 군에게 점령당했다. 이것이 이른바 5.16군사혁명이다.

이들은 방송국을 점령하고 혁명공약을 발표했다.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궐기했다”로 시작되는 혁명공약은 그로부터 18년 동안 지속된 군부독재의 명분이었다.

왜 쿠데타 군은 방송국을 점령했을까. 방송은 총보다도 더 무서운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언론은 흑을 백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KBS가 없었다면 쿠데타는 성공할 수 없었다는 술회는 그들의 입에서 나왔다. 당연한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그때나 이때나 방송의 위력은 대단하다. 요즘 신문의 힘이 점차 시들고 있다. 노무현 정부를 물어뜯어 깊은 상처를 입혔어도 조중동의 독자수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방송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가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은 더욱 더 신문의 설자리를 좁게 만들었다. 방송을 장악하는 세력이 권력을 장악한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위원장으로 내정된 최시중씨 때문이다.

잠시 최시중씨의 경력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그래야 왜 이 분이 방통위원장으로 적격이 아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대통령의 ‘측근중의 측근’이고 ‘고문중의 고문’이다. 포항출신에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의원의 친구다.

이명박 대통령후보 선거대책본부의 상임고문을 역임했다. 갤럽의 회장을 지내고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전략을 사실상 기획하고 집행한 ‘6인회’의 좌장이다.

언론은 최시중씨를 이 대통령의 멘토(후견인)이고 복심이고 분신이라고 평한다.

“물이 넘치면 대통령을 위해 제방이 되고 바람이 불면 병풍이 되겠다.”

그 스스로가 한 말이다. 목숨을 바친다는 맹서와 다를 바 없다. 앞으로의 행보가 한 눈에 보인다. 방통위원장이 되면 어떤 일을 어떻게 할지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최시중씨가 이 대통령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존재일 수 있지만 국민에게도 그럴지는 자신이 없다.

방통위의 전신인 방송위원회는 무소속 독립기구로 위원장을 호선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방통위는 대통령의 직속기구로 위원 5명 가운데 위원장과 위원 2명을 지명해 과반수를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한국방송공사의 이사 선임권과 방송문화진흥회(MBC최대주주)의 임원 임명권을 갖는다. 마음만 먹으면 KBS와 MBC를 좌지우지 할 수도 있다.

왜 최시중씨는 방통위원장으로 부적격인가. 이미 지적한 것만으로도 그는 실격이다. 또 있다. 형평성이다.

참여정부 시절. 서동구씨는 노무현후보의 언론고문을 했다는 이유로 KBS사장 취임 일주일 만에 낙마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조중동과 언론노조는 입을 모아 서동구씨의 KBS사장 임명을 반대하고 규탄했다. 서동구씨는 세상이 다 알고 있듯 민주언론을 위해 투쟁하다 투옥이 됐고 그 후 해직된 경향신문의 전 편집국장이다.

이 나라 언론의 몇 안 되는 존경받는 언론인이었다. 언론노조와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측근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KBS의 사장이 되면 언론의 공정성을 해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서동구씨는 사임했다. 그렇다면 최시중씨는 어떤가. 그는 서동구씨에 비할 바가 아닌 대통령 측근 중에서도 실세다. 그런 최시중씨는 KBS의 영향력보다 몇 배나 더 강력한 권한을 갖는 방통위원장 자리에 앉아도 아무 문제가 없단 말인가.

최시중씨는 말한다.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생을 걸었었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편파적으로 위원회를 운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생을 걸어 대통령을 만든 사람이 그를 위해 편파적 행동을 안 한다는 말을 믿으라는 것인가.

죠지 오웰의 1984년은 모든 정보를 독점하는 음습한 ‘빅 브러더’의 공포세계를 보여준다. 이제 우리에게도 MB 브러더의 출현이 눈앞에 왔다고 믿어야 할 세상이 된 것이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최시중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개혁과 국가발전에 대한 확고한 소신과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오랜 언론생활과 한국갤럽회장 등 풍부한 언론경험을 토대로 방송과 통신 분야의 중립적인 위치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가. 그런데 왜들 이렇게 반대를 하는가. 설사 야당은 당리당략이라 할지라도 언론단체들은 왜 반대하는가. 그들은 질식사 하는 민주언론의 비참한 모습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위해 자기 인생의 모두를 걸었다는 최측근 실세가 그 위력을 가늠할 수 없는 언론권력을 장악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내 이름이 거론됐기에 언급을 한다. 야당의 우상호 대변인이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자기 형의 친구를 방통위원장에 임명할 수 있느냐.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방송전문인이라고 해서 이기명 후원회장을 방통위원장에 임명했다면 한나라당이 잘 했다고 했겠느냐.”

여기서 한 마디 할 얘기가 있다. 참여정부가 출범하고 방송위원장을 임명할 때 주위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있었다. 그 때 누군가 내 얘길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대통령의 측근이 방송위원장을 하면 누가 방송을 공정하다고 할 것인가. 이는 이 나라 방송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이게 정답이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생각이었다고 믿는다. 설사 노무현 대통령이 그 자리를 권했다 해도 난 거절했을 것이고 거절 이유에 대해 대통령도 이해했을 것이다.

벼슬 사양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도운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측근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바로 방송통신위원장은 대통령 측근이 앉을 자리가 아닌 것이다.

최시중씨가 방통위원장이 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점쟁이가 아니라도 알 수 있다. 방송은 대통령 의중대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걷잡을 수없는 갈등과 충돌이 발생할 것이다.

이미 야당은 국민적 저항을 예고했다. ‘땡전’ 뉴스 같은 것을 내 보낼 수 밖에 없고, 온갖 왜곡 과장 허위보도를 일삼는 방송을 국민이 믿겠는가. 이 나라는 온통 불신의 시궁창으로 변할 것이다.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4.19혁명 당시 서울신문이 불타고 광주민주화 운동과정에서 광주 KBS와 MBC가 불탔다.

대통령은 최시중씨가 방통위원장으로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적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임명권자로서 자존심도 있을 것이다.

특유의 ‘해 봤어?’가 발동할 수도 있다. 그게 위험하다는 것이다.
언론을 장악했다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언론이 아무리 거짓 보도와 왜곡보도를 해도 국민은 진실을 안다. 거대 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가 왜 신뢰도에서 바닥을 기는가. 이제 조선일보를 훌쩍 뛰어 넘어 동아가 천방지축이다.

언론도 정치도 진실해야 한다. 정도를 가야한다. 언론장악으로 잠시 국민을 현혹시킨다 한들 그것이 얼마나 오래 견디겠는가.

언론은 장악해서도 안 되고 장악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 늦지 않았다. 잘못을 바로 잡는 사람에게는 박수를 보낸다.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실세나 측근은 절대로 방송통신위원장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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