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기 국회의장, '직권 상정' 최후의 결단 하나

정치권 최대 현안 '국보법 연내 폐지' 여부 '지둘러'에서 '서둘러'로 대변신 할까 주목 여권이 '국가보안법 연내처리 유보' 문제로 지도부가 고민에 휩싸이고 있다. 국보법 폐지를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된다는소장파들의 요구가 점점 거세지고 있기때문이다. 특히 이들 소장 강경파들은 천정배 원내대표가 제안한 '여야 대 타협' 방안에 대해 "한나라당이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이철우 의원에 대한 간첩조작 사건으로 백색테러를 자행했다"며 원인무효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국보법 폐지는 더 이상 흥정과 타협의 대상이 아니기에 반드시 연내에 처리돼야 한다"며 마침내 김원기 국회의장의 동참을 압박하고 나섰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김 의장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의장직권으로 국보법 폐지를 국회 본회의에 상정시켜 다수결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김 의장이 이들의 주장대로 통과가 불투명한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에 이를 상정시켜 연내 처리 강행을 서두를 것인가. ◆너무 '뜨거운 감자' 국보법 존폐 문제 사실 국가보안법 존폐 혹은 개폐 문제는 우리 정치권의 너무 '뜨거운 감자'라는 게 거의 일치된 시각이다. 이는 이로 인해 파생될 문제들이 결코 적지 않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실제로 국보법이 여권의 의도대로 어떠한 방법으로든 폐지되었을 경우, 우리 사회는 대 변화라는 새로운 질서가 도래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정가의 대부분 관측이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실체를 정식 인정하는 단초가 되고 나아가 남북관계가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획기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로 현재까지 정부에서 꾸준히 거론되어 왔던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남북정상 회담 추진이 급속도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동시에 취임 때 김원기 국회의장이 거론했던 남북 국회 회담 추진도 함께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때 풍문으로 나돌았던 '김원기 국회의장의 방북설'이 현실화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남북관계가 완연한 봄기운을 맞으면서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신질서를 구축하면서, 여권으로서는 노무현 정권이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개혁의 가속도까지 더해 차기 정권 재창출까지 기대되는 계기가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북한도 이 문제와 관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즉 북한의 웹사이트는 지난 주 여권의 국보법 연내처리 유보 방침과 관련 '배신행위' '반통일적 행위'라고 맹렬히 비난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입장은 단호하고 처절하다. 국보법 폐지안을 결사 저지하겠다는 각오이다. 그러면서도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의 과거 '북한 노동당 가입' 의혹과 여당의 국보법 폐지 추진을 직접 연계시켜 안보 이슈를 재점화하며 대여 총 공세에 불을 지폈다. 박근혜 대표는 "조선노동당 사건은 당시에도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여당 의원이 이 사건으로 실형을 받고 복역한 후 공천까지 받았다"며 "국보법은 당과 당 지지자들을 위해서만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지켜내야 하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당의 명운을 걸고 결사항전도 결코 마다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모습이다. 이 대목 정가 일각에서도 "만일 국보법 폐지가 논란 속에서도 여권의 강행처리로 결국 이루어진다면, 한나라당은 정체성의 혼란과 존립 근거를 상당부분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점치고 있다. 한나라당이 당의 명운을 걸고 이를 저지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셈이다. ◆수위 조절하며 명분 쌓아가고 있나 여야가 국회 법사위에서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놓고 격돌을 벌인 데 이어 임시 국회 소집문제로 대치를 계속하고 있던 지난 주 어느 날 김 의장이 돌연 국회 본청 기자회견장에서 특별 기자회견을 가져 주목을 끌었다. 이날 김 의장은 표면적으로는 회견을 통해 국보법과 관련한 법사위에서의 공방을 중단할 것과 정기국회가 끝나는 대로 임시국회를 즉각 소집할 것을 밝혔다. 당연히 모든 관심은 김 의장이 국보법 폐지안을 직권 상정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에 모아졌지만, 김 의장은 그 부분에 관해서는 여야 타협을 주장하는 원칙론적인 얘기만 반복할 뿐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반면 김 의장 측은 한나라당이 임시국회 의사일정 협의에 계속 응하지 않아 국회가 공전될 경우,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 모아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선다는 방침을 말했다. 일단은 김 의장이 여야 대표에게 대화와 타협을 종용해 본 것이다. 이러한 기조는 김 의장이 행한 연세대 특강에서도 이어졌다. 김 의장은 연대 강연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상대에 대한 인정 또는 타자에 대한 관용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인식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이런 일련의 기조는 전번 월초 '친정'인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사회를 끝내 거부한 배경에서도 보여지고 있다. 이후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무사히 처리되었지만, 당시에는 한나라당이 불참해 국회 본회의가 열리지 못하는 상황으로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김 의장에게 의사봉을 잡기를 권했지만 김 의장이 이를 거절했었다. 그렇다면 과연 김 의장의 이러한 '지둘러'의 행보는 끝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현재까지 김 의장이 원칙론적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위 조절과 명분 쌓기용 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리도 피를 보여주는 것'이 순서일까 지난 3월초 총선이 불과 한달 밖에 남지 않았던 당시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출범한지 몇 개월에 불과한 시절. 비록 집권여당이었지만 국회에서 혼자 힘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원내 3당. 16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던 그 때 결국 열린우리당은 헌정 사상 초유로 거대 야당의 힘에 굴복해 '대통령 탄핵'이라는 핵 폭풍을 맞게 된다. 당시 '친정'이 한나라당이었던 박관용 국회의장은 경호권까지 발동해 단상을 점거하고 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끌어내며 대통령 탄핵을 주도적으로 처리했다. 박 의장의 의사봉 방망이가 힘차게 두드려지고 본 회의장이 온통 탄식과 분노로 난장판으로 변해 갈 때, 당시 김원기 의원도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입술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로부터 9개월이 흐른 지금 열린우리당은 지난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승리, 국회 과반수를 넘긴 거대 여당으로 변했다. 그리고 경호권까지 발동할 수 있는 그 국회 수장에 '노 대통령의 정치적 사부'로 불렸던 6선의 김원기 의원이 의장이 되어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정치권의 최대 현안인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전면에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얼마 전 국보법 폐지와 관련 "낡은 유물은 칼집에 넣어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거듭 밝혔던 점도 주목되는 양상이다. 결국 국보법 폐지 문제야 말로 도저히 여야의 타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최대 현안이라고 할 때 김 의장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김 의장은 그동안의 '지둘러' 이미지에서 '서둘러'로 변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지난 3월의 '탄핵 정국'을 이번에는 '국보법 정국'으로 답할 것인가. 연말 정국의 핵 뇌관이 바로 김 의장의 손안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형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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