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 없으면 그 뒤에 오는 것은 독재

엿장수 가위질이란 말이 있다. 길게도 자르고 짧게도 자르고 자기 마음대로다. 오죽하면 엿장수 맘 대로라는 말이 나왔을까.

푸줏간에 매달린 고기 덩어리도 주인 마음대로다. 이렇게도 자르고 저렇게도 베어내고 마음대로다. 세상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이들의 행위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욕을 할 수도 없다. 엿을 많이 잘라 주던지 고기를 많이 썰어 주던지 이를 봐도 자기가 보고 손해를 봐도 자기가 본다.

자치단체장이 개발을 결정했다고 하자. 당연히 이해가 갈리는 주민들이 있을 것이고 경제성이 없을 수도 있고 잘못된 정책일 경우도 있다.

자치단체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결정권도 있다. 지금은 자치시대라 중앙에서 간섭하기도 어렵다. 의회가 견제할 수 있지만 단체장이 다수당 소속일 때는 소용이 없다.

쿠바의 ‘카스트로’가 은퇴를 했다고 한다. 50년 동안 권좌에 있었다니 새삼 놀랍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존경은 아니다. 50년이면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하지 않았는가.

카스트로가 더 없이 잘나서 50년 권력을 누렸을까. 아니다. 독재였다. 남미의 여러 나라들이 독재국가란 오명을 썼다. ‘카스트로’도 독재로 장기집권 했다.

대충 생각나는 독재자의 이름을 대 보자.

이락의 후세인, 칠레의 피노체트, 이디 아민, 차우세스크, 170만을 학살한 캄보디아의 포 폴트, 필리핀의 마르코스, 히틀러, 뭇소리니, 소모사, 스페인의 프랑코, 중국의 마오쩌뚱, 베트남의 고딘디엠, 인도네시아의 스카르노, 북한의 김일성,

그 밖에도 수두룩하지만 시간을 아끼자. 그러나 우리도 고백은 해야지.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은 어떤가. 솔직하게 고백하자. 부끄럽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이렇게 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백성이 주인이라는 말이다. 정말 그런가. 헌법에서 그렇다니 그런 줄 알아야 하는가.

해방 후 이승만이 독재정치를 했다. 국민은 주인이 아니었다. 주인은커녕 하인도 그런 하인이 없었다.

야당이 있었지만 반대를 하면 가차 없이 탄압했다. 부산 정치파동 때는 국회의원 태운 버스를 기중기로 끌고 갔다. 민의를 조작하기 위해 소달구지와 마차도 동원했다. 이것이 우의(牛意)와 마의(馬意)라는 것이다.

영구집권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도 했다. 법은 마음대로 하는 것이고 정치깡패 동원은 필수다. 백주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라는 명언도 등장했으니까.

결국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들의 4.19 의거로 쫓겨나 객사를 했다. 독립운동가의 영광은 사라지고 독재자란 오명을 역사에 남겼다.

박정희 독재는 군부독재의 출발이었다. 총칼로 헌정질서를 짓밟고 파괴했다.

박정희 독재를 미화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독재와 민주주의는 합께 할 수 없고 자유는 인간만이 누리는 신의 은총이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권리기 때문이다.

참 많이 죽었다. 독재에 항거하다 죽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들의 고귀한 죽음이 우리에게 자유로 돌아왔다.

전두환 독재도 못 된 짓 참 많이 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 탄압은 피의 잔치였다. 국민들은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통해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재갈이 물렸고 몸은 언제나 서빙고동 보안사의 담보물로 잡혀 있었다. 더 얘기가 필요한가.

국민의 힘은 위대했다. 6.10민주항쟁은 노태우의 항복을 가져왔고 독재는 사라졌다.

이승만에서 전두환에 이르기까지 독재의 사슬에 묶인 국민의 아픈 상처는 지금도 가슴에 피멍이 든 체 상흔으로 남았다.

우리는 김일성독재를 거품을 물면서 비난했다. 언론도 그랬다. 그러나 우리의 독재에는 침묵했다. 이승만에게 박정희에게 전두환에게 독재자라고 한 언론이 있는가. 말은 했다. 단군 이래 최고의 영도자라고. 아버지라고 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이제 독재 얘기는 그만 두자. 독재라면 이에서 신물이 나는 우리 국민이 아닌가.

견제세력이라고 한다. 설명할 필요도 없다. 견제세력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가.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아버지는 절대적 권위를 갖는다.

견제가 필요하다. 어머니다. 그래야 균형을 이룬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지만 왜 3권 분리인가. 혼자 권리를 가지고 있으면 견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은 게 인간의 심리다. 자유당은 일당독재였다. 자기들 마음대로였다. 이승만이 한마디 하면 그게 법이었다.

박정희 시대도 다를 바 없었다. 유정회란 거수기를 임명해 놓고 국회를 손아귀에 넣었다.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선거도 귀찮아 장충체육관에 빛 좋은 개살구인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인가 뭔가를 모아놓고 대통령을 뽑았다.

박정희에게는 참 좋은 세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그러진 신화를 부러워하는 인간들은 없을까. 그 때가 좋았어! 하면서 그리워하는 인간들은 없을까.

있을 것이다.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국회의원 하려고 별의별 고생과 온갓 짓 다 하는데 그냥 “너 해.”한 마디로 끝나는 유정회라면 얼씨구나 하고 춤출 인간들이 널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런 국회의원은 필요도 없고 앞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런 국회의원을 국민이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다.

2007년 12월 19일. 대한민국은 정권이 바뀌었다. 집권세력이 바뀌고 새로운 대통령이 이 나라를 이끈다. 이것이 이명박 정권이다.

참여정부의 공과나 평가는 역사에게 맡긴다. 그 대신 국민들은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고 정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정치세력이라 할지라도 이제 한나라당이 집권 세력으로서 이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반대세력이라 해서 무조건 질시하거나 적대해서는 안 된다. 좋은 정책에는 아낌없는 협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정도를 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집권세력도 생각을 잘 해야 한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았다는 감정적 접근이 아니라 이 나라를 책임지는 정치세력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집권했으니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오만이다. 비극의 시작이다.

여론 조사에서 인수위 지지도가 하강곡선을 그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이 당선자의 지지율이 내려가는가.

영어몰입교육 문제, 한반도 대운하 문제, 숭례문 국민성금 복원 등 전혀 정리되지 않은 정책들이 발표되고 공개되어 과연 새 정부가 제대로 정책을 펴 나갈 수 있는지 국민들의 의구심이 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걱정이 되는 것은 새 정권담당자들의 조급함과 오만이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좋다고 해도 정부조직 개편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졸속은 무엇인가.

통일이 국민의 염원이자 비원임에도 통일정책을 주도하는 통일부는 숨 끊어지기 직전에 겨우 살아났다.

그것도 좋다. 그런데 국민들이 느낌은 불안이다. 원래 새로 당선된 대통령의 별명은 불도저라고 한다. 밀어붙이기는 특허처럼 되어 있다.

거기에다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야당이 강력하게 반대하자 4월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후 통과시키자고 했다는 후문이다.

얼마나 자신만만한가. 국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과반수를 자신하는 한나라당을 오만을 국민이 비판하면 잘못인가.

오만이 판단을 그르친다. 오만이 무리수를 두게 한다. 많은 득표차로 당선이 됐다고 하지만 분석해 보면 전체 유권자의 30% 정도가 한나라당을 지지했다.

30%가 오만의 근거가 되는가. 설사 4월 총선에서 과반수를 만들어 낸다면 무슨 일이든 한다는 생각인가. 숫자로 밀어부치면 된다는 생각인가. 힘의 논리와 독재와는 어떤 관계인가.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자동차의 속도계는 200키로 이상이지만 그대로 달리면 사고가 난다. 그래서 브레이크도 있고 액셀도 있는 것이 아닌가.

국민들은 이 부분에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어느 정부 어느 정당 어느 정치인도 민주주의를 신봉하며 독재를 부정한다. 그러나 독선과 독재는 사촌지간이다.

이승만 대통령도 처음부터 사사오입 개헌을 한 것이 아니다. 박정희도 처음부터 유신헌법과 체육관 선거를 하진 않았다. 그 과정을 깊이 살펴야 한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굴러간 것이다. 이래서 견제가 필요한 것이다.
누가 하는가. 국민이 한다. 하늘같은 국민이 하고 국민만이 할 수 있다.

내각 명단이 발표됐다. 평균재산이 39억이라고 한다. 백억이 넘는 사람도 있다. 참여정부에서라면 입각은 꿈도 못 꿀 사람들이다.

예정자 발표 전에 검증을 했을 것이다. 대상자를 두고 검증을 했더니 서류심사에서 절반 이상이 탈락했다고 한다. 결격자다. 그러니까 이번 발표된 인물은 적격자란 얘기다.

어떤 청와대 수석 내정자는 제자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고 스스로 부적절했다는 고백도 했다. 참여정부에서라면 한나라당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왜 잣대가 다른가. 이것이 바로 오만이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하라’는 것이다.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오만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오만이 불러오는 것은 독선이고 독선은 반드시 시행착오를 일으킨다. 시행착오를 일으켜 반발이 커지면 반발을 누르기 위한 강제가 등장한다. 그게 바로 강압이고 국민은 용인하지 않는다. 군사독재 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비극은 우리가 원치 않아도 올 수 있다. 때문에 국민이 현명해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견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견제세력은 국민이고, 깨어있는 국민만이 견제세력을 만들어 낸다.

억압시대에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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