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용제 연관 없다’ vs ‘독성물질 사용에 있다’ 여전한 의문은?

한국타이어 직원들의 잇따른 돌연사 의혹이 새국면을 맞고 있다. 이들의 죽음이 ‘작업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조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노동부 대전지방노동청의 의뢰를 받아 역학조사를 실시한 한국산업안전공단 측은 지난 2월20일 최종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국타이어에서 발생한 심장성 돌연사 등 질병사망은 직무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혹을 둘러싼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유가족들은 ‘기만적 행위’라며 이번 조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작업환경 관련성이 있다는 발표에 유가족들이 비난하고 나선 사연은 무엇일까. <시사신문>이 유가족 측의 여전한 의혹제기, 한국타이어의 입장, 역학조사 발표 등 한국타이어 직원들의 돌연사 의혹 전말을 되짚어 봤다.

논란 거듭하는 돌연사 의혹…역학조사 결과 유기용제 연관성 못 찾아
유족 “2년간 15명 비슷한 질병 사망, 회사·기관이 은폐, 축소한다”

▲ 한국타이어 사망자 유족들이 원인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그동안의 한국타이어 직원들의 돌연사 의혹 전말은 이렇다. 한국타이어 직원들의 돌연사 의혹은 지난해 8월 몇몇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2006년 5월부터 2007년 5월까지 1년 동안 대전공장과 충남 금산공산, 대전 유성의 대덕연구단지 내 중앙연구소 등에 근무하던 직원 8명이 잇따라 사망했다는 게 당시 알려진 내용의 핵심이다.

이중 2명을 제외한 6명은 모두 심근경색과 같은 심장질환으로 급사했다. 당연히 이들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불거진 만한 사안인 셈이다.

유족 반발, 회사 반박 ‘공방 가열’

비슷한 사인으로 잇따라 직원들이 돌연사하자 원인을 몰라 어리둥절했던 유가족들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의혹은 점점 더 세상에 퍼져 나갔다. 유가족들은 과다한 업무와 스트레스, 작업장 환경 등에 문제가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들의 죽음과 관련, 산재처리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노동계까지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나섰다.

한국타이어 측은 창사 이래 처음 벌어진 일에 적잖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업무 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다만 직원들의 책임관리 측면에서 도의적 책임이 있는 만큼 유가족들의 산재승인 소송의 비용을 지원할 의사는 있다고 밝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의문제기 정도에 머물렀던 사안은 잇따른 전직 직원들의 충격 폭로가 이어지며 의혹의 몸집을 키웠다. 한 전직 직원은 “공장에서 타이어를 생산할 때 사용하는 벤젠이나 솔벤트, 신나 등과 같은 독성이 강한 유기용제를 별다른 안전조치 없이 사용해 정신착란이나 우울증, 성불구 등 건강이 나빠진 직원들의 상당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한국타이어 측은 이에 대해 “현재 유기용제는 100%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과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은 절대 취급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렇게 양측의 주장이 엇갈렸지만 사업장 내부 공개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었던 유가족들. 그런데 공중파의 한 방송프로그램이 의혹이 불거진 지 3개월 가량된 지난해 11월 내부 직원 촬영한 공장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연기가 자욱한 공장 모습과 유기용제인 솔벤트 사용 모습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동영상은 TV를 시청한 시민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특히 방송사가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사용하는 유기용제의 유해 실험을 해보니, 뇌나 심장근육에 이상이 발생하는 결과까지 도출됐다. 뿐만 아니다. 직원들은 문제점이 있다는 인식을 하면서도 회사에서 쫓겨날 것을 걱정해 입을 닫아야 했고, 탈의실까지 1미터 간격으로 CCTV가 설치된 모습이 방송을 타면서 파장은 일파만파 확산됐다. 포털사이트 등에는 한국타이어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카페나 토론방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 한국타이어 사옥.
한국타이어는 이 같은 동영상이 공개된 직후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관련 법규에서 정한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고 있으며, 공장에서 사용되는 솔벤트는 발암물질이 전혀 검출되지 않는 개량 솔벤트라는 게 핵심 골자다.

이런 입장 표명 이후 노동계의 비난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더구나 2년 사이 사망자가 15명에 달한다는 추가 의혹도 불거져 나왔다. 그리고 정부차원의 역학조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잇따른 조사에서 돌연사와 직업적 요인과의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고, 유가족들과 노동계의 분노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과로’ 추정 발표에 유가족 비난

한국타이어와 유가족의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 2월20일 한국산업안전공단이 역학조사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공단은 노동부 대전지방노동청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실시한 역학조사 결과 “한국타이어에서 발생한 심장성 돌연사 등 질병사망은 직무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추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되어 온 화학물질에 의한 심장성 돌연사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교대작업이나 연장근무 등으로 인한 과로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해석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역학조사팀은 “96~07년까지 전·현직 근로자의 전체 사망률은 일반인구 집단에 비하여 낮았음(표준화사망비 84)에도 불구하고, 허혈성심질환으로 인한 사망수준은 상당히 높았다(표준화사망비 141)”고 전제하며 “심장성 돌연사의 유발요인으로 작업장의 ‘고열’이, 관상동맥질환의 위험요인으로는 ‘교대작업 및 연장근무 등으로 인한 과로’ 의 관련 가능성이 추정된다”고 밝혔다.

한국타이어 측은 공단의 발표에 대해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화학물질에 의한 심장성 돌연사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하지만 앞으로도 유가족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할 계획이며, 산재 관련 사안들이 법과 원칙에 의해 해결될 수 있도록 기업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계는 즉각 성명을 발표하며 비난하고 나섰다. 공단의 최종결과 발표가 ‘기만적인 행위’라고 주장했다. 한국타이어 해고자 등으로 구성된 피해대책위는 2월20일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사망사고를 은폐하고 축소하려던 한국타이어와 산업안전공단은 사돈관계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로 하여금 면죄부를 주게 하여 이명박 정권은 출범하기도 전에 치명적인 범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한국타이어 집단사망 사태의 심각성은 2년 사이 1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인 타이어 제조과정에서 사용되고 있는 1급 독성물질 사용에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이런 각각의 주장들은 앞으로도 험난한 가시밭길을 예고하는 셈. 한국타이어와 노동계, 그리고 노동청의 엇갈린 주장들이 어떤 합의를 도출하고, 또 풀리지 않는 의혹들의 진실을 밝혀가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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