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마님부터 CEO까지 '막강 파워' 범상치 않네!

해마다 재계에선 자산가 이름이 공개된다. 누구나 한번쯤 부자를 꿈꾼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높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중 여성들의 이름이 점점 늘어간다는 점이다. 대부분이 재벌가문의 안주인들로, 이들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면서 부(富)의 이전도 남녀평등을 향해 가는 듯 하다. ‘암닭이 울면 집이 망한다’는 옛말은 그저 옛말일 뿐인 세상이다. <시사신문>이 재벌가 안주인에 대해 집중 조명해 봤다.

재벌가 안방마님 사회활동 1순위는 ‘미술관 운영’
든든한 재력과 전문식견까지 두루 갖추고 맹활약

그동안 재벌가 안주인들은 단지 ‘여자’란 이유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두문불출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저 안방주인의 역할에 만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창업 2세대와 3세대로 이어지면서 상황은 바뀌고 있다. 외부로 절대 자신의 활동을 드러내지 않으며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을 유지했던 안방주인들이 사회활동에 나선 것이다. 자녀 교육을 마친 뒤 40~50대 이후에는 그 활동 반경도 넓어지는 추세다. 물론 창업 2세대에선 ‘우아하고 품격 있는’ 미술관 관장직 정도에 만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주인 부호 1위 홍라희 여사

▲ 이명희 신세계 회장에 이어 여성 부호 2위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관장. 경영활동을 하지 않는 재벌가 안주인 중에서는 가장 많은 자산가다.
재벌가 안주인이면서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다. 홍 여사의 추정재산은 6000억 원 대를 넘어선다. 삼성가의 직계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1조9000억 원대의 자산으로 ‘여성부호 1위’이기는 하지만 홍 여사도 안방주인으로는 늘 여성부호 ‘1위’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여성부호 ‘탑10’ 안에도 항상 이름이 랭크된다. 공식 직함은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홍 여사는 내무부장관을 지낸 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장녀다. 해방 한 달 전에 전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 ‘라희(羅喜)’는 한자 뜻으로 보면 ‘전라도에서 얻은 기쁨’으로 풀이된다. 또한 발음으로 보면 일본말로 ‘라희’의 발음이 ‘락키’인 탓에 7월생인 그를 축복하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알려진다.

홍 여사는 경기여고와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전공을 살려 지난 1995년 1월 옛 호암미술관장에 취임했다. 당시 4000여 점의 미술품을 수집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뒤를 이어 수만 점의 국내외 작품을 추가로 구입해 호암미술관을 꾸몄다.

▲ 리움미술관 전경
이런 맥락에서 홍 여사는 미대를 졸업한데다 시아버지로부터 고미술까지 배운 덕분에 전시기획이나 컬렉션에서 상당한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다. 일례로 지난 1996년 미술관장 취임 1년 만에 프랑스 정부가 주는 예술문학 훈장인 ‘코망되르’를 받기도 했고, 99년에는 세계에서 8번째로 로댕 전문 갤러리인 ‘로댕 갤러리’를 열어 세계 예술계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다.

물론 최근 삼성특검과 맞물려 그의 미술품 수집 문제가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상태. 하지만 국내외에서 여전히 홍 여사의 대한 신뢰가 두텁다. 미술관 운영 외에도 다양한 문화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예술의 전당 후원회원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지난 1998년에는 북한 유적 답사를 위해 북한을 다녀오고, 사단법인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의 이사를 맡아 활동했다. 99년에는 기업과 정부 학계의 리더그룹이 대거 참가하는 디자인 정책스쿨 국제산업디자인대학원에 입학해 디자인 과정을 이수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든든한 재력과 전문식견까지 모두 갖춘 홍 여사의 사회활동이 삼성특검 이후 어떻게 이어질지 주목된다.

사회활동을 하는 재벌가 안주인들 중에는 미술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홍 여사의 리움미술관을 포함해 흔히 ‘빅5’ 미술관인 성곡미술관, 아트선재미술관, 아트센터나비, 금호미술관 등이 모두 재벌가 안주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안방마님에서 미술관장으로…

▲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 여사,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인 노소영(시어머니인 고 박계희 여사도 아트센터나비의 전신인 워커힐호텔 미술관을 운영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누나인 박강자,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부인 박문순 등이 이곳들의 운영을 맡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각 기업에서 미술 쪽을 책임지며 든든한 재력을 바탕으로 미술관을 운영, 한국의 대표적인 컬렉터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들이 모두 여성부호 ‘탑10’에 이름을 올린 것은 아니지만 재벌가 안주인으로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홍 여사만큼이나 미술관 운영에 열정적인 인사가 정희자 여사다. 현재 경주 아트선재미술관과 서울 아트선재센터의 관장을 겸하고 있다. 정 여사는 한국 미술계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한 대표적인 인사. 대우그룹 붕괴와 함께 한때 관장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대신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한 딸 김선정씨가 줄곧 부관장직을 맡아 활동했다. 선재라는 미술관 이름은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장남 김선재씨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SK가도 미술관과는 떼어 놓을 수 없다. 고 최종현 회장의 부인인 고 박계희 여사가 아트센터나비로 이름을 바꾼 옛 워커힐미술관을 운영한 탓이다. 박 여사 시절 워커힐미술관은 앤디 워홀의 국내 최초 개인전을 비롯해 피카소, 오펜하임 등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거장들을 국내에 소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2000년말 워커힐호텔에 있던 기존 미술관은 문을 닫았지만 대신 서울 종로구 SK본사 사옥 4층에 아트센터나비가 문을 열었다. 박 여사의 뒤를 이어 최태원 SK회장의 부인이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씨가 운영을 줄곧 맡고 있다.

▲ 성곡미술관 전경.
‘신정아 사건’으로 도마 위에 오른 성곡미술관도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부인인 박문순 여사가 운영하는 미술관이다. 박 여사는 성품이 조용하고 차분해 대외적으로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지만 젊은 작가들의 등용에 공을 들여 미술계 안팎의 인기가 높다. ‘한국적인 현대 미술 정립을 위해 젊은 작가를 양성한다’는 슬로건은 박 여사의 철학을 담고 있다. 젊은 작가들의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의 작품도 적극적으로 구입하는 열성적인 행보가 이목을 끌기도 했다.

무슨 일을 해도 우린 억만장자

미술관과는 거리가 있지만 재벌가 직계로, 안주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사는 이화경 미디어플렉스 사장이다. 동양제과 창립자로 ‘오리온 성공신화’를 이끈 고 이양구 회장의 둘째 딸인 이 사장은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부인이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부부 모두가 최고 경영자의 위치에 있는 보기 드문 케이스다. 이 사장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주도하는 경영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가치만 2000억 원대를 넘어선다.

이 사장은 1975년 동양제과에 입사, 2000년 사장직에 올랐고, 2002년부터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했다. 구매를 알아야 제대로 경영할 수 있다는 선친의 뜻에 따라 구매부 말단직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것이 지금의 이 사장을 최고 경영자 위치에 올려놓은 밑바탕이 됐다.

이 사장의 최고 작품은 마케팅 담당 상무 때 만든 초코파이 ‘정(情)’ 시리즈 광고다. 이 광고를 만들면서 제과업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당시 잇따른 유사품 출시로 주춤거릴 때 정을 주제로 한 이 광고로 매출이 3배나 늘었다. 이외에도 이 사장은 배니건스 등 외식 사업과 쇼박스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선친의 뒤를 이어 엔터테인먼트 분야 성좌에 한발 다가섰다.

이 사장이 최고 경영자 위치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면 대조적으로 여성 부호 반열에는 올랐지만 안방마님 자리를 고수하는 인사도 여럿이다. 대표적인 인사가 바로 LG그룹 안주인 김영식 여사다. 김 여사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아내로, 주식가치 등 추정 자산이 5000억 원대에 육박한다. 재벌가 안살림을 맡고 있지만 당당히 억만장자 대열에 올라 있는 것이다.

김 여사는 김태동 전 보사부장관의 딸이다. 김 전 장관은 충북 괴산 출신이자 수재집안으로 유명한 가문 출신. 또한 김 여사는 구 회장과 금실이 매우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밖에도 LG가의 경우 김 여사의 올케인 구미정씨(최병민 대한펄프 회장 부인)가 1500억 원대, 구혜원 푸른상호저축은행 회장, 구자경 명예회장의 외손녀인 김선혜씨가 1000억 원대의 여성 부호 대열에 올라 있다. 구본무 회장의 장녀 구연경씨도 1000억 원대에 육박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김승연 회장으로부터 지난해 (주)한화 주식을 증여받은 부인 서영민씨,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부인이자 현재 현대그룹을 이끌고 있는 현정은 회장, 롯데가 신격호 회장의 딸인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 등이 1000억 원대 주식부자 반열에 올라 있다.


▶ 재벌가 여성들, 럭셔리 보단 답답한 생활?

재벌가 여성들은 수많은 여성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한마디로 ‘럭셔리’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온갖 명품을 휘감고 원하는 모든 일을 만끽할 수 있다는 특권(?)이 부(富)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게 재계의 전언이다. 재벌가 여성들 대부분이 사치와는 거리가 있는 성격의 소유자들이 대부분인 탓도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기에는 가문의 제약이 많다는 의미에서다. 생활의 단면을 보면 수긍이 갈 법도 한 얘기다.

일례로 경호원과 함께 생활해야 할 만큼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하기도 하고, 겸손하게 사람들을 대해도 주변사람들과 흉물없이 친해지기가 어렵기도 하다. 또한 질투의 대상이 되기 쉽고, 어딜 가든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고충도 있다. 그들도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공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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