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건희 회장 희망의 메시지냐 눈치의 노림수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지금 희망으로 가득하다. 정부마저 손을 놓을 지경인 악화일로의 한국경제가 무색할 이건희 회장의 연이은 '희망 메시지'에 담긴 속뜻은 무엇일까. 11월 17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지난 5월 말 4개월 여의 해외 장기체류를 마치고 귀국한 뒤 제휴관계에 있는 외국기업의 총수들을 서울 한남동의 삼성 영빈관인 '승지원'으로 초청했다. 이 회장은 만찬을 가지며 한국경제 상황에 대해 희망적 견해를 강렬하게 웅변했다. 우연치고는 기묘한 '희망론' 삼성과 관련되지 않은 일, 특히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해 말을 아끼기로 유명한 이건희 회장. 그런데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한국경제에 대해 낙관적 견해를 피력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지난 11월 15일에는 미국 코닝사의 제임스 호튼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수출이 꾸준히 잘되고 있고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특히 정보기술(IT) 인프라가 튼튼하기 때문에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비상한 주목을 끌었다. 그런데 이 회장의 발언은 마침 해외순방 중이던 노무현 대통령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분들이 위기를 제일 많이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한 뒤 나와 '우연치고는 기묘하다'는 평판을 얻기도 했다. 사실 이건희 회장이 한국경제에 대해 희망적 의견을 나타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0월 11일 칼리 피오리나 HP 회장을 승지원으로 초청해 가진 만찬에서도 "한국경제가 소비위축으로 다소 침체돼 있으나 정부가 경제살리기에 나서고 있고 휴대폰·반도체 등과 같은 수출주력 품목들이 호조를 보이고 있어 사정이 점차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적 전망을 피력했다. 지난 6월 고바야시 요타로 후지제록스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도 "한국경제가 현재 수출이 잘되고 있어 내수만 살아나면 경제가 곧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하면서 "한국이나 일본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역할과 협력이 긴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올 들어 승지원에서 열린 3차례의 외국 유력 기업인 초청 만찬에서 빠짐없이 한국경제에 대한 희망적 메시지를 담아낸 셈. '접대성 멘트'냐 '진심어린 호소'냐 이건희 회장은 작년에는 해외 기업인과의 접촉이 별로 없었으며, 지난 2002년 피오리나 HP 회장,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당시 회장 등과 승지원에서 만나기는 했으나 한국경제의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올해 들어 터져나온 이 회장의 한국경제에 대한 희망적 견해 피력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재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국경제가 아무리 암울하다고 해도 핵심 제휴관계에 있는 외국기업인 앞에서 비관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며 '의례적인 발언'이라는 쪽에 무게를 뒀다. 반면 또한 다른 관계자는 "이 회장이 누구보다도 경제가 어렵다는 걸 잘 알텐데 '희망적이다' '좋아질 것이다' 등의 낙관적 견해를 나타낸 것은 결국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한 '립서비스' 차원일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의 발언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재계 1위 그룹의 수장으로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생각이 담긴 것 이외에 다른 뜻은 없다"며 "외국 기업인을 위한 의례적인 발언이었다면 굳이 언론에 공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을 위시한 재계가 새삼 희망론을 들고 나온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눈치를 보기 위한 포석이라는 지적이 많다. 얼마 전 노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 미국 교민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대기업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도 잇따라 비상경영을 선언하며 위기감을 조장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따라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된 재계가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는 관측. 암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건희 회장 그 진정한 뜻이 어디에 있든, 이건희 회장이 올해 유난히 왕성한 대외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 그동안 '은둔자'라는 별명이 친숙한 행보를 보인 이 회장이기에, 최근의 정력적인 활약상에 담긴 의미 또한 호사가들의 숙제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열정은 최근 완전히 되찾은 건강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평이다. 11월 16일 소식통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암 재발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건강을 완전히 되찾다는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암 진단 이후 끊임없이 제기됐던 '위독설'에서 깨끗이 벗어났다. 이건희 회장은 5년 전인 지난 1999년 10월께 건강검진을 받다가 폐 부근에서 암세포가 발견된 이후 삼성서울병원과 미국의 암 전문병원인 MD앤더슨암센터에서 물리치료를 받아왔다. 대개 의료계에서는 암 진단 이후 5년이 경과한 상황에서 재발 가능성이 현격히 떨어졌을 경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완치'라는 표현을 쓴다고. 그러므로 이 회장이 완치되었다 보아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계는 이건희 회장의 왕성한 대외활동을 기대하고 있다. "재계의 거목이 건강을 회복하게 된 것 자체는 삼성뿐만 아니라 재계로서도 큰 행운"이라며 활발한 활동을 기대했다. 여기에는 그 동안 건강상 이유로 이 회장이 고사해 왔던 전경련 회장직 수락 여부에 대한 기대도 은근히 포함되어 있다. 승지원은 이 회장의 초특급 아지트 이처럼 건강을 회복한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영빈관인 한남동 승지원을 '아지트' 삼아 재계의 거목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6월 이후 현재까지, 이 회장은 승지원에서 외국귀빈과의 공식적 만찬 회동을 네 차례 가졌다. 이 회장은 '희망론'이 본격적으로 피력된 11월 15일 미국 코닝사의 제임스 호튼 회장과의 회동을 비롯 ▲ 10월 11일 미국 HP의 최고경영자 칼리 피오리나 회장 ▲ 6월 22일 프랑수와 데스쿠에트 주한 프랑스 대사 ▲ 6월2일 고바야시 요타로 일본 후지제록스 회장 등과 만찬을 주최했다. 프랑스 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레종 도뇌르를 전달받은 프랑수와 데스쿠에트 대사의 경우를 제외하면, 회동의 주요 내용은 양국의 경제현안 논의와 정보교류, 협력방안 확대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승지원 초빙인사는 외국 귀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10월 14일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을 초대해 만찬을 주재한 게 대표적 사례.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함께 한 재계 총수들의 요청으로 이뤄진 만찬은 재계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 경제 현안에 대해 매우 활발한 의견교환이 이뤄졌다는 것이 삼성관계자들의 전언. 이 회장은 또 해마다 12월이 되면 승지원에서 계열사 사장단회의를 갖고, 한해 사장단의 노고를 치하한 뒤 굵직굵직한 경영화두를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회동은 삼성이 공식적으로 언론에 공표한 것에 불과할 뿐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더하면 실제는 훨씬 많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승지원을 선호하는 것은 아무래도 외부인의 눈에 띄지 않은 데다 분위기가 편안하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앞으로도 승지원을 통한 이 회장의 공식·비공식 회동은 계속될 같다"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