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생이는 차게 식혀서 먹어야 제맛

▲ 매생이. ⓒ 김용철

식성이 점차 찬 음식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 이냉치냉의 법칙에 따라 겨울철의 일시적인 현상인지, 체질변화에 의한 건지 불분명하지만 음주 후 속 다스리는 음식도 찬 국물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아침에 일어나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는 맑은 콩나물국은 뚝배기째 끓여 나오는 해장국보다 도움 된다.

겨울엔 특히 매생이국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매생이국의 묘미는 젓가락도 숟가락도 아닌 마셨을 때에 있다. 차게 식은 매생이를 먹어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식당에서 파는 매생이국은 대부분 뜨겁게 나오기 때문에 묘미를 충분히 즐기지 못한다.

맛객이 좋아하는 매생이국을 잘 사먹지 않고 집에서 끓여먹는 이유도 찬 매생이를 먹기 위함이다. 찬 매생이국은 먹어본 사람만 그 맛을 안다. 뜨거울 땐 잘 느끼지 못했던 매생이 특유의 부드러움은 극치 그 자체이다. 향미는 또 어떻고, 혀에 감기는 감칠맛은 감식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준다. 그러나 매생이국의 가장 큰 미덕은 숙취해소가 아닐까 싶다.

전날 무리한 음주로 아침이 괴로운 날, 냉장고에 매생이국만 있다면 대번에 그날의 컨디션을 회복되고 만다. 천하 진미도 생각나지 않은 입맛이지만 매생이국만큼은 후룩~ 후루룩 잘도 마셔진다. 정신이 번쩍 드는 건 당연하고 속에 부담도 주지 않는다.

겨울철 주당의 친구로서 손색없는 매생이라 할 수 있다. 그 매생이가 요즘 제철이다. 시장 어물전에서 스티로폼 박스 안에 덩어리진 채 놓여져 있는 게 매생이이다. 적은 양으로 보이지만 국을 끓이면 5인분은 충분히 나온다. 보통 한 덩이에 6~7천원선에서 거래된다.

이번엔 택배주문으로 매생이와 굴을 받았다. 시장에 비해 신선도가 있으면서 가격이 싸다는 장점이 있다. 육안으로 확인된 굴의 상태가 무척이나 싱싱해 보인다. 절반을 덜어 흐르는 물에 살짝 행궈서 안주로 내 놓았다. 굴의 향은 고스란히 살아있고 날개부위의 쫄깃함은 그동안 맛본 굴 중에서 으뜸이었다. 자연산 답다.

매생이국 그리고 매생이누룽지탕

매생이 몇 덩이는 뒷날 속풀이 할 요량으로 냉동실에 넣어두고 한 덩이는 매생이국을 또 한 덩이는 담날 매생이누룽지탕으로 감식했다.

<매생이국 끓이는 법>

재료: 매생이, 굴, 마늘, 참기름, 소금

1. 매생이를 찬물에 두세 번 행군다.
2. 굴을 흐르는 물에 씻어 채에 담아 물기를 뺀다.
3. 팬에 기름을 두르고 굴을 물이 나올 때까지 볶는다. (70% 정도만 익히는 요령이 필요하다)
4. 끓는 물(매생이 한 덩이 기준으로 6~7대접) 굴과 매생이를 넣고 5분정도 끓인다. 간 마늘도 약간 넣고 천일염(굵은소금)으로 간을 한다.

<매생이누룽지탕 끓이는 법>

재료: 매생이, 누룽지, 홍합, 굴, 새우, 쑥갓, 소금

1. 홍합을 잘 손질해서 끓인다. (홍합은 장사가 잘 되는 어물전에서 구입해야 싱싱하다)
2. 홍합육수에 미리 불린 누룽지, 새우, 굴, 홍합살을 넣고 끓이다가 매생이를 넣는다.
3, 누룽지가 충분히 물러지면 대접에 덜고 쑥갓을 올린다.

▲ 매생이누룽지탕. ⓒ 김용철

그간 매생이국은 해마다 끓였지만 매생이누룽지탕은 첫 시도였다. 결과는 대만족! 시원하고 개운한 국물 맛에 구수한 누룽지가 입맛을 돋는다. 전통의 매생이국에 더해 갈수록 요리법이 개발되고 있다. 매생이수제비, 매생이전 등. 전라도 해안지역 일대에서 먹던 매생이가 전국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매생이는 장흥군 특산물이다. 이맘 때 장흥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매생이국을 내 놓는다고 하니 매생이의 고장답다.

사라진 매산자반?

장흥에서는 매생이를 매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때문에 '매산자반'이라고 하면 매생이로 만든 자반을 말하는 것이다. 매산자반에 대해 최승범의 산문집 <풍미기행>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성현의 <용재총화>에도 김 이야기가 나온다. 김을 ‘감태’ 라고 한 것은 특히 남해산을 두고의 이름이라고 했다. 이와 비슷한 매산으로 만든 자반은 그 맛이 일품이라고 했다. 매산은 ‘김보다 조금 짧은 것’이라 했으나, 오늘날 우리말사전에서는 그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다. 성현의 친구였던 김윤은 매산자반을 ‘천하의 진미’로 즐겼다고 한다. (최승범 저 <풍미기행>)

맛객의 관심은 매산자반으로 쏠렸다. 국거리로만 생각했던 매생이가 자반으로도 먹었다니 말이다. 하지만 매산자반에 대한 자료는 더 이상 어디에서고 찾을 길이 없다. 우리의 향토음식 한 가지가 사라진 건 아닌 가 싶어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다만 감태자반은 먹은 기억이 있어 매산자반이 대략 어떠한 먹을거리일거란 추측은 가능하다. 참고로 감태자반은 마른 감태를 양념간장에 무쳐서 먹었다. 매산자반도 그런 음식이 아니었을까 싶기는 하다. 아무래도 냉동실에 있는 매생이를 꺼내 겨울햇살에 말려봐야 그 맛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매산자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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