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땅위에 바짝 엎드려 있는 까닭은

현대백화점의 움직임이 은근하다. 정몽근 회장이 자신의 아들들에게 주식지분을 증여한 것. 이는 최근 현대백화점의 상대적인 실적부진과 절제의 상황이 '의도된 게 아니냐'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11월 17일, 현대백화점H&S는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주식 56만주를 차남인 정교선 그룹 경영관리팀장(부장)에게 증여했다고 공시했다. 정 회장의 증여 후 현대백화점H&S 지분은 13.23%로 줄었으며 정 팀장은 10%의 지분을 처음으로 확보하게 됐다. 장남인 정지선 그룹 부회장의 지분은 1.23%. 주식증여로 후계의 첫걸음 떼다 정몽근 회장의 이러한 움직임은 일찍이 예견되었다. 정 회장은 이미 10월 20일에도 현대백화점 지분 4.3%(95만주)를 단체급식 전문업체인 현대지네트에 매각했다. 현대지네트는 장남인 정 부회장이 지분 50%를 소유한 기업. 이에 따라 정 부회장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백화점 지분 6.2%에다 현대지네트가 매입한 백화점 지분 4.3%까지 합쳐 10.5%의 현대백화점 지분을 확보한 셈이 됐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지분 변동이 현대백화점은 장남인 정 부회장에게, 백화점 특수판매와 여행업을 맡는 현대백화점H&S는 차남인 정 부회장에게 물려주기 위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정몽근 회장의 증여는 최근 현대백화점의 부진한 실적과 맞물려, 재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물론 현대백화점은 3/4분기 시장전망치에 비교적 부합되는 실적을 올렸다. 11월 12일, 현대백화점은 3/4분기 매출액이 1802억원으로 전기에 비해 0.6%,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5%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매출총이익은 전기대비 7.2% 감소한 반면 전년동기에 비해서는 2.5% 늘어났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215억원, 177억원으로 전기대비 각각 53.4%, 30.3% 감소했다. 반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선 175.5%, 151.5% 늘어났다. '일시적인 효과'로 실적부진 모면한 현대백화점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실적에 대해 "물론 예상치를 웃돌기는 했지만 실적회복을 이끌만한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올린 실적은 영업개선에 따른 호조라기보다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억원 정도 줄어든 인건비와 광고판촉비 등 판관비 절감 효과로 인한 일시적인 효과라는 게 중론. 물론 현대백화점의 매출 증가율은 7월 이후 증가세로 반전됐지만, 전문가들은 "3~4월 '윤달효과'에 따른 결혼특수가 10~11월에 집중된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3/4분기 카드관련 손실을 적게 반영한 것도 현대백화점 실적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4/4분기에는 265억원 규모 카드연체 채권 매각 손실이 반영될 것이며, 이에 따라 순이익은 소폭 흑자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서 현대백화점은 비교적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현대백화점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더욱이 롯데나 신세계 등 경쟁업체들은 신규점포 출점 계획을 공격적으로 꾸준히 세우고 있지만, 현대백화점은 이렇다 할 신규사업 계획이 없다.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 이는 내수침체로 사업 전망이 불확실한 까닭이 우선이겠지만, 자금여력 및 파트너와의 제휴 측면에서 새로운 업태 진입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 많이 작용하고 있다. '후계가 마무리 될 때까지는 신중하자' 그런데 일각에서는 현대백화점이 공격적인 경영을 자제하고 있는 주된 이유로 정몽근 회장의 '후계구도'를 꼽고 있다. 즉 정 회장이 아들들에 대한 후계구도를 마무리지을 때까지 사업상의 적극적인 자세를 자제하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정 회장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근거로 부산 수영만 인근 부지를 든다. 이곳은 원래 1997년 현대가 먼저 부산시로부터 임차했던 곳. 원래 현대 측은 2006년 9월까지 1596억원을 들여 현대백화점 부산2호점을 짓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최근 사업성 변화를 이유로 추진일정과 투자규모를 확정짓지 않은 채 잠정보류 중이다. 이를 틈타 신세계는 이곳에 국내최대 쇼핑몰을 짓겠다고 선언한 상태. 현대 측은 부산 수영만 인근 부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대신, 이익면에서 탁월한 현대백화점 무역점과 목동점을 운영중인 한무쇼핑의 지분매수를 추진 중이다. 이 또한 정몽근 회장이 튼실한 알짜배기 사업을 아들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의도로 재계는 보고있다. 결국 4/4분기 실적이 드러나고 지분증여와 후계구도 등 회사 내의 변동상황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가야 현대백화점의 향방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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