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우리의 극우파

언제나 그랬었고 지금도 그러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봄이 오면 벚꽃이 피듯이, 여름이면 태풍과 폭우가 내리듯이 일본의 '망언'과 역사 왜곡에 의한 아시아 침략의 야욕은 홍두깨처럼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대응은 너무나 뻔한 일회성적이며 전시용이요 감정적인데다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가을이면 낙엽이 지듯이, 겨울이면 나목이 움추리듯이 슬그머니 꼬리 내리고는 침묵해 버리기 일쑤였다.

정한론(征韓論) 이후 역사 교과서 파동까지 일관된 대화혼(大和魂)의 발로는 확고한 뿌리와 탄탄한 줄기와 무성한 잎과 꽃들로 치장된 일본적 파시즘이라는 천황주의 극우 이데올로기선상에 버티고서 아시아 전역을 배회하며 둥지를 틀고자 틈새를 노리고 있다.

소련 동구권 분해와 걸프전으로 미국의 지구 지배체제가 확립된 때에 발맞춰 세계사는 급격히 보수. 우경화로 치달아 국민국가의 이기주의가 제2의 제국주의 시대를 맞은 듯이 찰스 다윈적인 민족 적자생존의 단계로 들어섰고, 이에 일본 극우파는 장기적인 경제 불황의 출구로 제2차대전 이전의 팽창주의에 대한 향수 어린 망상으로 그 출구를 모색, 그 첫 시도가 교과서 개정으로 나타났다.

역사는 반복하는가. 그래서 '개화'란 구호가 20세기 초기에 미망 속의 약소국을 식민지로 유도했듯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란 유혹이 21세기의 후(중)진국으로 하여금 경제적인 예속화로 귀착시킬 것인가. 일본 극우파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역사 교과서는 그 길로 나아가기 위한 첫 걸음이자 21세기적인 '정한론'이다. 단순한 교과서 문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이 터진 뒤에 목소리만 높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은 옳았을까. 진정한 민족 주체성을 지닌 인사들에게 기회주의적인 매명가들이 합세하여 돼먹지도 않은 엉터리 진단서와 처방전을 남발하고는 세태 따라 슬며시 조신하는 몸사리기가 반복되어 왔다.

그 때엔 어김없이 독도는 일본 땅 식의 생뚱한 문제를 제기할 테고 우리는 또다시 어제 했던 그대로인 식민통치운운을 복창하다가 이내 침묵한다. 이 치욕스런 소극적 방어본능의 시지포스적인 헛수고를 극복하려면 이번에야말로 근본적인 대응책을 내놔야 할 판이다.

일본 국수주의가 거론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메뉴에 독일 참회론이 있다. 독일은 양심적인 국가권력이며 일본은 야만과 우둔의 나라인양 동네북처럼 쳐댄다. 과연 그럴까. 너무 단순한 비교다.

독일 극우파의 야만은 일본에 못지않으며,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보여준 비인도적인 처사는 일본과 옛 형제지간에 다름 아님을 보여준다. 문제는 국민성이나 국가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차이일 것이다. 극우파는 독일. 일본뿐이 아니라 미국이나 한국도 같을 따름인데 독일은 다행히 극우파가 지배계급이 아니었을 뿐이다.

독일의 참회는 유럽 여러 나라들이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함께 할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나온 인도주의 이념의 열매에 다름 아니다. 프랑스의 친독 인사 심판이 얼마나 냉혹했던가는 세계사의 교훈이 되고 있으며, 지금도 나치 전범을 체포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독일이 취할 길은 참회밖에 없었다.

아시아는 어땠는가. 중국을 비롯한 몇 나라를 예외로 한다면 제2차대전 후 아시아를 지배해온 것은 친일파래도 지나칠 게 없을 지경이다. 저쪽에서는 나치 경력이 체포의 빌미인데 이쪽은 출세의 경력이다. 저쪽은 나치 전력이 노출되면 공직에서 파면 당하나 이쪽은 친일파를 발굴 혹은 비판하면 파면 혹은 학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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