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신랑 활짝 웃던 날, 중년의 친구들은 울었다!

▲ 신랑신부 행복하게 살기를. ⓒ 강기희

지난 주말(19일) 노총각으로 살아가던 친구가 장가를 갔다. 신랑의 나이가 마흔 일곱, 신부는 스물 셋이라고 했다. 둘의 나이 차이는 무려 스물 넷. 누가 보더라도 한 번쯤은 '거, 심하네' 할 정도로 나이 차이가 크지만 하객으로 참석한 이들은 그런 말 대신 신랑신부에게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노총각 장가 가던 날, 온 동네가 웃었데요

박수를 치는 하객 중에는 나이 지긋한 중년의 모습을 한 신랑 친구들이 유독 많았다. 신랑과 신부가 나란히 입장을 할 때는 신랑신부는 활짝 웃었지만 정작 웃어야 할 하객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신랑 신부에게 무슨 사연이 있기에 그러했을까.

그날 본 신부는 가냘프고 새처럼 작은 몸을 하고 있었다. 신부는 하객들이 보내주는 박수소리에 부끄러움도 잊고 무엇이 좋은지 마냥 웃었다. 덕분에 결혼식에 참여한 하객들이나 주례선생까지 자주 폭소를 터트렸다.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결혼식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신부의 손을 꼽 잡고 있는 신랑은 신부보다도 키가 작았다. 신랑은 결혼식을 위해 굽 높은 구두를 신었지만 신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했다. 신랑이 신부보다 키가 작은 이유는 그가 곱사등이라는 신체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신랑은 키가 작다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놀림도 많이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견디기 힘든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들이었다. 남 몰래 흘린 눈물이 누구보다 많은 새신랑.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비하하는 친구들에게 화를 내기보다 웃음으로 고통의 세월을 삭였다.

어릴적부터 곱사등이었던 친구. 자신이 왜 그런 몸으로 살아야 했던지 기억이 없는 친구는 곱사등을 천형으로 알고 살았다. 친구만으로 끝났으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뒤 이은 남동생도 형을 닮아 곱사등이다.

난감한 세상. 친구 부모님은 곱사등이 된 두 아들을 어떻게든 키워냈다. 무너지는 억장을 감당해온 부모님은 이국의 여자와 결혼하는 아들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가슴에 품고 있던 지난 세월은 끝내 감출 수는 없었던 듯 부모님의 눈가에도 뜨거운 눈물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신부. 이젠 '임수정'으로 불러주세요. ⓒ 강기희

▲ 도둑놈 소리 듣지 않으려면 신부에게 잘 해야 해! ⓒ 강기희

친구와 백년가약을 맺은 신부는 난방이 되고 있는 신부대기실에서도 자주 몸을 떨었다. 몰아닥친 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한 그녀는 베트남 출신. 그녀는 지난해 연말 친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말도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까지 날아왔다. 그래서인지 신부가 입고 있는 흰 드레스가 홋겹처럼 얇아 보였다.

다문화가정이 10만 가구를 넘어선다는 대한민국. 이제 거리에서 이국의 여성을 만나는 것은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국제결혼 초기만 해도 이러저러한 문제점이 많았지만 근래에는 긍정의 면이 더 많이 부각된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늘고 그들에 대한 지원도 생겨났다.

딸 자식 같은 어린 신부, 친구들 "행복하게 해줘야 해!"

신부측 부모님이 앉아 있어야 할 의자는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빈자리로 남아 있었다. 딸의 결혼을 지켜보지 못하는 베트남의 사람들. 이제 그들은 국가적 사돈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닌 시절이다. 채울 길 없는 신부 부모님의 자리, 빈자리가 만들어내는 허전함은 신랑 친구들이 대신 채웠다.

"꼭 딸 자식 시집 보내는 것 같구먼."

한 친구는 어렵게 결혼을 성사시킨 신랑보다도 어린 나이에 이국의 땅으로 시집 온 신부 걱정을 더 많이 했다. 그 친구의 딸은 스물 다섯. 딸의 나이가 신부보다 두 살이나 많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가 한마디 한다.

"그럼 신랑을 사위라고 생각혀."
"그거 말 되는 걸."

신부를 위로하는 말이라면 그래도 될 것 같다. 친구인 신랑이 사위처럼 느껴지는 자리. 신랑 친구들 중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에서부터 서울 생활을 하다 몰매를 맞고 허리가 구순의 노인처럼 굽은 친구까지. 오십 줄을 바라보는 나이들답게 다양한 외양과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연애 한 번 해보지 않은 한 친구는 자신도 노총각이면서 장가 가는 친구를 향해 신부 잘 챙기라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너 임마, 신부한테 잘 못하면 나 한테 혼나. 알았어?"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심중엔 신랑보다 나이 어린 신부가 안쓰러워 보였나보다. 신랑과 말도 통하지 않은 신부는 연신 웃고 있지만 눈가에 서린 걱정 만큼은 지워지지 않았다.

▲ 신랑신부 맞 절.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신부로 인해 주례선생도 웃고 신부도 웃고 신랑도 웃고 하객 모두가 웃었다. ⓒ 강기희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신랑의 동생이 지난해 결혼을 했는데, 제수씨 역시 베트남 여성이라는 점이다. 급하게 통역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제수씨가 나서서 해결해 주니 가족 관계에서의 언어 소통에 관한 부담은 어느 정도 덜은 셈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부는 고운 한복으로 갈아 입고 친구들에게로 왔다. 한복이 잘 어울린다는 칭찬은 신랑이 대신 받았지만 신랑 역시 그 말을 신부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신부는 신랑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니며 인사를 했다. 활짝 웃는 모습이 귀여운 신부. 그 때문인지 먼 이국의 여자라는 생각도 잊었다.

웃음이 매력적인 신부 "행복하세요~"

신부의 이름은 '우엔옥슁'이다. 그러나 결혼식 사회를 본 친구도 자주 헷갈릴 정도로 발음이 어려웠다. 신부가 자신의 이름을 베트남식 발음으로 몇 차례나 말했지만 제대로 따라 하는 친구들이 없을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본 신랑이 신부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지었다며 그 이름을 공개했다.

"우리 애기 이름을 공개합니다. 성은 임가로 했고, 이름은 수정이라고 지었습니다. 애기가 아나운서 강수정씨 만큼 이쁘거든요. 앞으로 '임수정'이라 불러주세요."

신랑은 신부를 향해 '애기'라 했다. 신부도 애기라는 말은 알아 듣는지 신랑이 '애기'라고 부르면 곧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이 임수정으로 변한 것은 모르는지 신랑이 '임수정'이라 불러도 무슨 말인지 몰라 큰 눈만 이리저리 또르르 굴렸다.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의 대화에서도 통하는 말은 거의 없는 듯했다. 신부가 할 수 있는 말도 '안녕하세요' 나 '감사합니다' 전부였다. 영어가 되지 않으니 공용어라는 의미도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눈빛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눈을 가리켰더니 신부는 처음 해보는 눈썹 화장이 무겁다며 자주 눈을 깜박였다.

마흔 일곱 해 동안 곱사등이라는 장애를 달고 살아온 친구, 이쁜 색시 만나 입이 귀에 걸렸다. 신랑이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하지만 친구들은 어린 딸을 시집보내는 아비의 마음 만큼은 접지 못했다. 신랑과 신부는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신혼여행지인 제주도로 출발했다.

결혼식은 해피엔딩, 남은 친구들은 울적

남은 친구들은 끼리끼리 모여 술잔을 놓지 못하고 있었는데, 캄보디아 여성과 재혼한 친구가 한마디 했다.

"야, 결혼 못한 진상! 한국에서 여자 찾기 힘드니 너도 더 늦기 전에 베트남 다녀와. 정선군청에서 결혼 지원금으로 5백만원까지 지원해 준다잖어."

"그래, 그 말이 맞다. 한국에서 나이 오십 줄에 드는 놈을 누가 데리고 가겠냐. 어서 정신 차리고 비행기 타라. 그게 상수인 것을 성표가 오늘 멋지게 보여주지 않았더냐. 저렇게 참한 색시 구하기 쉽지 않으니 얼른 비행기 타라."

친구들끼리 주고 받는 말을 들으며 술잔을 비우는데, 가슴 한구석이 근원을 짐작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내참, 이렇게 기분좋은 날에 밀려오는 슬픔은 또 뭔지.

▲ 신부측 가족은 한 사람도 오지 못했다. ⓒ 강기희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