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 국정원장 ‘방북 대화록’ 유출 파문

▲ 국정원 역사상 첫 내부 발탁인사로 화제를 모았던 김만복 국정원장이 ‘방북 대화록’ 유출 사건으로 불명예스러운 퇴진을 하게 됐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방북 대화록’과 관련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연초 언론보도로 문제가 된 그와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간 대화록 유출은 자신이 한 일이라며 사의를 표명한 것. 정치권과 대통령직 인수위는 이를 강하게 질책하며 조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김 원장의 ‘방북 대화록’ 유출로 불편하기는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국정원 최고책임자가 기밀문서를 유출한 것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45년 국정원 역사상 첫 내부 발탁인사인 김만복 국정원장. 그는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건부터 남북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주요 현안의 막후에서 활약했지만 지나친 언론노출과 총선출마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의 불편한 관계 등 구설도 끊이지 않았다. 김 원장은 어떤 인물이며 ‘방북 대화록’ 사건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아봤다.


연초부터 국정원이 발칵 뒤집혔다. 중앙일보 10일자 신문에 김만복 국정원장이 대선 하루 전 방북,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록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이날 오전 브리핑을 갖고 “일부 언론에 김만복 국정원장의 지난 12월18일 방북 시 김양건 북한 통전부장과의 대화록이 공개됐다”며 “이번 사건은 국가 주요기밀이 누출됐다는 점에서 인수위 차원에서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해 엄중 대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보기관 책임자가?


확인 결과 보도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국정원은 서둘러 “대선을 며칠 남기고 방북할 경우 북풍 공작을 한다는 의구심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고, 대선 후에는 사실상 방북이 힘들어질 것으로 우려됐다”며 대선 하루 전 김만복 원장의 방북이 이뤄진 경위를 설명했지만 ‘일벌백계’를 외치는 인수위의 요청에 따라 자체 보안·감찰 조사에 들어갔다.

문건 유출의 충격파는 국정원 최상부에서 터졌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직접 대화록을 유출했다고 밝힌 것.

김 원장은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가진 긴급 기자회견에서 “지난 9일 오후 국정원 관계관을 통해 모 언론사 간부에게 면담록이 포함된, 국정원장의 선거 하루 전 방북 배경 및 경과 자료를 비보도를 전제로 전달했는데 결과적으로 본인 불찰로 언론에 보도됐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김 원장은 이어 “면담록은 지난해 12월18일 나의 방북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소위 ‘북풍공작’ 의혹이 강하게 제기됨에 따라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라며 “물의를 야기한데 대해 국가 최고정보기관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사의를 표명함과 동시에 국민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사실상 자신이 이번 ‘방북 대화록’ 유출에 주도적으로 관여했음을 내비친 것이다.


수사·처벌 요구 ‘들썩’


정보기관 최고책임자가 기밀문건을 유출한 일은 전례가 없는 일로 정치권뿐 아니라 청와대도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직 인수위와 한나라당 등은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행위”라며 ‘엄중 처벌’을 강조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번 사건을 “충격적인 국기문란사건”이라 못박고 “사퇴로써 마무리될 사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나 대변인은 “대선전날 방북목적, 의도에 관한 여러 가지 의혹을 받아온 김 원장이 자신의 행적을 미화시킨 의혹이 든다”며 대화록의 진위여부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는 한편 김 원장의 과거 행적을 일일이 지적, “자질이 안 되는 인물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한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이 더욱 크다”고 청와대까지 싸잡아 비판했다.

국정원은 이번 사건에 대해 “원장과 평소 친분이 있는 모 언론사 간부 및 국정원 퇴직직원 등 14명에게 의혹해소를 위한 설명과 함께 인수위 보고자료(면담록)를 제공했다”며 “원장 방북 사실이 언론에 공개됐고 방북 결과도 대북협상이 아닌 단순한 환담에 불과한 일상적인 것이어서 국가기밀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만복 국정원장,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 대화록 공개
정치권·청와대·인수위 ‘발칵’…“엄중 처벌하겠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청와대는 사표 수리 여부 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던 입장을 뒤집고 “신중한 판단을 위해서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며 신중론을 펴기 시작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대선을 하루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주는 공작을 협의하러 간다는 비상식적인 의혹을 제기하고, 근거없이 정상회담 대가 제공설을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국가기강을 문란하게 하는 일”이라며 “국정원장의 문건배포는 비록 방식이 매우 부적절했지만, 그런 주장에 대한 대응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지금도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 계속되고 있다”는 말로 신중론을 뒷받침했다.

검찰도 조심스러워졌다. 이는 ‘신중한 판단’을 요구하는 청와대와 “김 원장의 행위는 국기문란행위로 유야무야해서는 안 된다. 인수위는 이 사안이 정상적인 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되길 기대한다”는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인수위의 의견이 상충하는데 따른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우선 인수위에 ‘방북 대화록’ 제출을 요구, 이를 확인한 후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맨’ 김만복은 누구?


‘방북 대화록’ 유출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김만복 국정원장, 그는 어떤 인물일까. 1974년 김 원장은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에 발을 들여놓은 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주자마이카 대사관 1등 서기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주미국 대사관 정무참사관을 지냈다.

DJ정부에서 잘 나가는 국정원 실세였던 그는 2002년 세종연구소로 사실상 좌천되면서 고비를 맞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인연을 맺으면서 고비는 새로운 기회로 작용했다. 참여정부 출범 후 그를 따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 자리를 옮기면서 화려하게 복귀한 것.

그는 2003년 NSC 사무처의 정보관리실장으로 이종석 당시 NSC 사무차장과 호흡을 맞추며 노무현 대통령의 눈에 든 것이 국정원장 발탁 배경이 됐다.


김만복 “‘방북 대화록’ 내가 전달, 책임지고 물러나겠다”
‘국정원 첫 내부 발탁인사’ 화려한 조명 끝, 초라한 낙마


김 원장은 2004년 다시 국정원에 복귀, 3년 동안 기획조정실장(차관급), 과거사건 진상규명 발전위원회 간사, 해외담당 제1차장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친정으로 복귀한지 2년 9개월 만에 국정원 45년 역사상 첫 내부 발탁인사로 국가정보원 원장으로 임명됐다.

김 원장의 기용은 그 자체로 화제였다. 그동안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으로 이어지는 정보기관의 수장은 군이나 검찰, 혹은 대통령 최측근 정치인이 맡아왔기 때문이다. 우려도 적지 않았다. 당시 김 원장이 차기 원장으로 내정될 움직임을 보이자 전임자인 김승규 원장조차 “내부 인사 발탁은 시기상조”라고 반발할 정도였다.

2006년 11월 취임 이후 그는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남북정상회담 성사, ‘10·4’선언까지 굵직한 사안의 배후에서 활약했다. 남북정상회담의 경우 회담 추진부터 선언문 도출까지 그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조명 아래 나온 국정원장


화려한 행보 뒤로 따라다니는 ‘구설’도 적지 않았다. 그의 ‘튀는 행보’때문이었다.

김 원장은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당시 막후에서 활동하던 역대 정보기관장과는 달리 30여 년간의 경험을 살려 아프간 현지에서 인질 협상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장이라는 신분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면서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으며 19명의 한국인 인질 석방 직후 국정원 직원인 ‘선글라스 맨’과 언론에 등장, ‘과다노출증’이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 김만복 국정원장의 ‘방북 대화록’이 보도된 중앙일보 1월10일자 1면.
그 후 고향 주민들을 국정원에 초청하고 지역행사에 직·간접 참가한 것이 문제가 됐다. 김 원장의 이 같은 행보가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것이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은 것. 논란이 일자 김 원장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 선거관리위원회는 그의 사전선거 활동 여부를 조사키도 했다.

‘정치 중립’에서도 김 원장은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조직의 사활이 걸린 절대명제”라며 “대선에서 정치중립을 확고히 지켜 국정원 개혁을 완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치중립 훼손 방지대책’ 수립, 외부인사 초청특강, 직원 특별교육 등을 벌였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친·인척에 대한 개인 정보를 조회했으며 심지어 국정원 내 이 후보의 부동산 의혹을 뒷조사한 태스크포스팀(TF)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거센 사퇴 압력을 받았다.

남북 정상회담 기간 동안에도 구설수에 올랐다. 평양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며 지나치게 허리를 굽히는 모습이 포착된 것. 이는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김 국방위원장과 악수할 때 허리를 꼿꼿이 세웠던 것과 대조를 이루면서 더 부각됐다.

화려한 복귀로 ‘국정원 최초 발탁인사’ 국정원장이 됐던 김만복 국정원장. 하지만 그는 지금 조명의 끝에서 초라한 낙마를 기다리고 있다.

<김만복 프로필>

출생: 1946년 4월 25일
출생지: 부산광역시
학력:
부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건국대학교대학원
경력:
1988년-1991년 자마이카주재대사관 1등서기관
1993년-1996년 미주재대사관 정무참사관
2003년 국가안전보장회의 정보관리실 실장
2004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 실장
2004년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간사
2006년 국가정보원 해외담당 제1차장
2006년 국가정보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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