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쫄깃 고소한 제주바다의 맛

▲ 싱싱한 갈치회, 드셔보셨나요? ⓒ 이소리

"너는 날 핥아보았느냐
내 은빛 몸매에 입 맞춰본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도 나를 잊지 못하지

내 벗은 살을 네게 맡겨야 이뤄지는 슬픈 사랑

나는 네게 얼마나 더 몸을 바쳐야
우리들의 엇갈린 사랑이 하나 되어
저 푸른 바다를 은빛으로 빛낼 수 있겠느냐"
- 이소리, '갈치의 꿈' 모두

▲ 요즈음 제주(신방산) 앞바다에는 싱싱한 갈치가 몰려들고 있다. ⓒ 이소리

갈치는 초가을부터 이른 봄까지가 가장 맛있다

나, 갈치는 한반도의 서해와 남해,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지구촌의 온대 혹은 아열대 바다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다. 갈치란 내 이름은 내 모습이 긴 칼을 닮았다 하여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옛날 사람들은 나 갈치를 아예 칼 '도'(刀)자를 따서 도어(刀魚) 혹은 칼치라 불렀고, 경남 통영 사람들은 '빈쟁이', 전라도 사람들은 어린 나를 '풀치'라 부른다.

나, 갈치는 초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제주도 서쪽바다와 남해안 주변에서 살다가 벚꽃,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4월쯤이면 한반도 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10만 여개의 알을 낳는다. 알에서 태어난 나의 새끼들은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지만 어른이 되면 작은 물고기와 오징어, 게, 멸치 등을 잡아먹으며 살아간다.

나, 갈치의 몸은 은빛을 띠고 있으며, 등지느러미는 연한 황록색을 띤다. 내 꼬리는 실처럼 가느다랗고 배와 꼬리에는 지느러미가 없다. 내 눈과 입도 머리보다 크다. 위턱과 아래턱에 날카로운 이빨이 줄지어 나 있는 나의 턱은 아래턱이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다.

나, 갈치의 삶은 좀 독특하다. 나는 어릴 때에는 낮에 바다 속을 떠다니다가 밤이 되면 바다 위로 올라와 먹이를 잡아먹는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낮에 바다 위로 올라와 먹이를 잡아먹다가 밤이면 바다 밑으로 내려간다. 어쩌다 먹이가 턱없이 부족할 때면 나는 종종 낯선 동무들을 가차없이 잡아먹기도 한다.

▲ 갈치는 회, 찌개, 구이, 국으로 인기가 높다. ⓒ 이소리

갈치의 은백색 비늘은 소화가 안 되고 영양가도 없다

사람들은 나를 초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자주 찾는다. 사람들은 나를 단백질이 많고 지방이 적당하게 들어 있어 맛이 좋다며 회, 조림, 찌개, 국, 구이 등으로 조리해서 먹는다. 게다가 사람들은 내 몸에 반짝반짝 빛이 나는 비늘을 긁어내 진주에 빛을 내는 원료로 쓰기도 하고, 여성들의 입술에 칠하는 립스틱 성분으로 쓰기도 한다.

요즈음 나는 겨울을 지내기 위해 동무들과 떼지어 제주바다에 머물고 있다. 근데,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이 제주까지 떼지어 몰려와 나를 찾는다. 제주바다에서 갓 건져올린 나를 싱싱한 횟감으로 썰어 막걸리를 발효시킨 초장에 찍어먹으면 담백하면서도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아주 기막히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예로부터 제주 사람들은 나를 토막내 솎음배추와 고춧가루를 뿌려 갈치국으로 자주 끓여먹었다. 솎음배추와 고운 고춧가루, 빻은 마늘 등으로 양념을 해 매콤하게 끓여내면 시원한 국물 맛이 약간 비릿한 듯하면서도 깔끔한 깊은 맛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땡겨울, 갈치국 한 그릇 먹고 나면 감기가 뚝 떨어진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나를 횟감이나 국, 찌개, 구이 등으로 먹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은백색 비늘은 겉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사람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될 뿐만 아니라 영양가도 없다. 그런 까닭에 나를 조리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내 몸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는 은백색 비늘을 솔로 깨끗이 긁어내야 한다.

▲ 예쁘게 차려져 나온 제주도 갈치회. ⓒ 이소리

▲ 나 갈치, 요즈음 사람들에게 인기가 제법 좋다. ⓒ 이소리

막걸리 발효시킨 식초로 만든 초장에 찍어먹어야 제맛

나, 갈치는 칼슘에 비해 인산 성분이 많은 산성식품이다. 나를 먹을 때는 채소와 곁들여서 먹는 것이 좋다. 특히 나를 찌개로 만들 때는 애호박을 듬성듬성 썰어넣는 것이 좋다. 애호박이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식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몸에 들어있는 단백질은 동맥경화나 고혈압, 심근경색 등 성인병까지 예방한다.

올해 초, 나는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안에 있는 어느 갈치회 전문식당에서 손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날 저녁, 나는 주인의 재빠른 칼놀림에 의해 불그스름한 속살을 드러냈다. 주인은 뼈와 살점만 조금 붙어 있는 나의 긴 몸을 동그랗게 감더니 그 속에 내 살점을 올려 식탁 한가운데 올렸다.

그때 나를 시킨 그 손님이 한 마디 했다. "갈치회가 이렇게 예쁘게 나오는 줄은 미처 몰랐네. 이걸 어떻게 먹지"라고. 그때 나를 조리한 주인이 한마디 거들었다. "보통 제주도 갈치회는 멸치회처럼 초고추장에 버무려 먹기도 하지만 막걸리를 발효시켜 만든 초장에 한 점 한 점 찍어먹는 그 맛이 일품"이라고.

그 손님은 한동안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사진을 몇 번 찍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나를 초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몇 번 내 몸을 씹더니 "쫄깃하고 고소한 게 혀 끝에서 살살 녹는 맛"이라며, 사정없이 나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그 손님의 입을 즐겁게 하면서 그 손님의 살이 되고 피가 되었다.

▲ 갈치회가 이렇게 예쁘게 나오는 줄은 미처 몰랐네. ⓒ 이소리

갈치회, 천천히 꼭꼭 씹어야 고소한 뒷맛 즐길 수 있어

"갈치회는 제주바다에서 갓 건져올린 은빛 나는 중간 크기의 갈치를 골라 지느러미를 먼저 칼로 떼어낸 뒤 비늘을 벗겨 곱게 채썰어야 합니다. 그리고 갈치 속살을 맑은 물에 휘저으며 핏물과 비린내를 말끔하게 빼낸 뒤 꼭 짜야 제 맛이 납니다. 갈치회를 드실 때에도 한두 번 씹다가 그냥 삼키지 말고 천천히 꼭꼭 씹어먹어야 고소한 뒷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날, 나를 처음 맛 본 그 손님은 몇 번이나 "이게 제주의 참맛이야, 갈치회가 나를 취하게 만드네"라며, 나를 안주로 삼아 소주를 세 병이나 비워냈다. 그리고 조금 남은 나를 따끈한 밥에 올리더니, 벌건 초고추장과 채 썬 무를 넣고 쓱쓱 비벼 먹기까지 했다. 내가 너무나 쫄깃하고 고소해서 몇 점 더 먹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 갈치회는 서비스로 나가는 그런 음식이 아니다. 나, 한 마리를 갈치회로 만들었을 때에는 3만원 정도 하는 귀하신 몸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횟감으로 잘못 먹으면 탈이 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나를 잘 조리하지 못해서 하는 볼멘 소리다. 사실, 나를 회로 한 번 맛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쉬이 잊지 못한다. 나로 만든 찌개, 구이, 국 등은 저리 가라는 얘기다.

나 갈치, 요즈음 사람들에게 인기가 제법 좋다. 지금까지 나를 횟감으로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올 겨울 제주나 남해로 오라. 짙푸른 파도 넘실거리는 제주 바다와 잔잔한 남해 앞바다에 은빛 윤슬을 톡톡 굴리고 있는 내가 그대들의 잃어버린 입맛과 건강을, 그대들의 추운 겨울을 맛갈스럽게 감싸주리라.

▲ 갈치는 구이로 조리해도 맛이 참 좋다. ⓒ 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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