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광고로 행복한 조.중.동. 그러나 -

1974년 12월 26일. 그 날 동아일보를 펴 든 독자들은 무척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면 지면구성이 영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8개 지면 가운데 4개면에는 광고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자기 회사 광고와 흰 여백의 빈 공간에는 백지광고가 보인다. 백지도 광고인가. 아니면 전후 한국문학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오상원의 장편소설인 ‘백지의 기록’을 선전하기 위한 광고인가.

그러나, 그러나 동아일보의 백지광고는 한국 언론의 눈물과 한숨이 얼룩진 역사의 한 장이었다. 기자들의 분노가 서리서리 엉켜 있는 한국 언론의 묘비였다. 동아일보의 광고국장은 독자들에게 광고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눈물의 ‘부탁광고’를 하는 일 까지 벌어졌다.

왜 동아일보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언론의 사명이라는 정론 때문이었다. 박정희 군사독재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독재자에게 고분고분 머리 숙이고 아양 떨지 않고 꼿꼿하게 고개 들고 똑바로 쳐다봤기 때문이다.

독재자는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넣어 동아일보에 광고를 끊게 했다. 신문은 광고가 젖줄인데 이걸 끊게 만들었으니 죽으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어미젖을 못 얻어먹는 유아처럼 동아일보는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이렇게 더러운 언론탄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치사해서 사람 같지도 않았다. 사람이기를 포기한 독재 집단이었다.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국민들이 격려광고를 했다. 한 줄 두 줄 격려광고가 동아일보의 지면을 빼꼭하게 채웠다. 그게 무슨 돈이 되랴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로 국민은 화가 난 것이다. 눈물과 한숨과 분노와 독재에 대한 저주의 광고까지 나오고 백지광고 사태는 국제적으로 확대 되었다. 독재한국의 명성을 세계만방에 떨쳤다.

미국의 뉴욕 타임즈, 영국의 BBC, 프랑스의 르몽드까지 동아일보의 비극적 언론탄압 사태를 보도했고, 어느 육군 중위의 격려 광고는 군 수사기관이 동원되어 광고주 범인색출이라는 코미디까지 연출했다.

한국 언론사상, 아니 세계 언론사상 전무후무한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는 동아일보 사주가 백기를 높이 들고 항복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아아... 동아일보 사주인들 얼마나 눈물이 났을까. 자유당 독재시절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은 독재에 항거하는 정론이었고 기자들은 핍박받는 속에서도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

대학생들은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을 들고 다니면서 자부심을 느꼈다. 광고탄압이라는 잔인하고 유치하고 짝이 없는 독재만행은 그것으로 이 땅에서 끝이 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여우가 사라지니 늑대가 오고 늑대 다음에는 호랑이가 온다던가. 박정희 독재가 사라진 후 동방의 횃불로 등장한 전두환 독재는 아예 기자들을 잡아다 두들겼다. 잡아 가두었다. 언론사를 없앴다. “이것 써라”, “저것 써라” “이건 쓰지 마라” “이건 잘라” “이건 제목 바꿔”

이 때 참 신나는 언론도 있었다. 짝짝짝 박수치며 이권 얻어먹는 언론사. 독재자의 입에 껌같이 달라붙어 달착지근한 기사 써 주고 벼슬한 언론인들은 신이 났다. 오뉴월 메뚜기도 한 때라고 신바람 난 언론인들 참 많았다. 이름대면 길길이 뛰겠지. 그래 그만 두자.

어쨌던 언론자유가 ‘사꾸라’처럼 화려하게 만개한 시대가 왔다. 지금 누가 언론탄압을 말하는가. 요즘 일부 언론이 분노하는 언론사 간부들의 성향조사도 정신나간 인수위 파견 문광부의 박광무 국장이란 양반이'졸면서 문건을 작성하다가 실수를 한 것'이라지 않던가.

경고하노니 “공무원들은 앞으로 절대로 졸면서 문건을 만들면 안된다”고 책상머리에 혈서로 써서 붙일 지어다.

이제 다시 치사한 광고 얘기로 다시 돌아간다. 삼성비자금 비리가 보도됐다. 그 후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는 삼성 광고가 자취를 감췄다.

내 돈 가지고 광고를 구어 먹든 삶아 먹든 무슨 상관이냐. (일본말 한번 쓰니 양해하시라) 그거 ‘오야’ 맘대로 아닌가. 할 말 없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뭐라고 핑계를 댄다 해도 이건 아니다. 삼성비리를 매일 보도한다 해도 이래서는 안 된다. 결코 이쁠 리가 없지만 하던 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 초일류기업 삼성이란 소리를 듣는다.



▲ 이기명 칼럼리스트

동아일보는 뭐냐. 자신들도 광고탄압 받아 보지 않았나. 국민들이 백지광고 내 주던 은혜를 잊었나. 왜 꿀 먹은 벙어리냐. 언론들은 겨울 휴가 갔나. 창피한 줄 알아라. 그러면서 언론자유를 떠들어 대는 한국의 대단한 언론인들. 솔직히 개가 부끄럽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백지광고를 국민들이 내는 광경을 보고 싶은가. 삼성은 광고탄압의 주인공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은가. 천하의 인재들이 모인 삼성이다. 그런 못난이짓 당장 접어야 한다.

2008년 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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