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세력 ‘갈팡질팡’ “독배인가 축배인가”

▲ 한나라당 탈당 후 대통합민주신당으로의 합류, 당 경선을 거치며 입지를 다져 온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대통합민주신당의 새 선장으로 거대 정당의 항해를 맡게 됐다.
범여권이 ‘혼돈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당 지도부 선출을 두고 ‘경선’과 ‘추대’로 당 파열 조짐까지 느껴지는 1차전을 치렀다. 1차전은 당 대표를 ‘교황식 선출’하는 방향으로 흐르며 ‘추대’세력이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경선을 주장했던 이들이나 손학규 대표 체제로 퇴출 위기에 몰린 친노 세력은 당내 갈등의 2차전을 치르고 있다. 민주당은 박상천 대표를 구심점으로 당 정비에 나섰다. 박 대표는 일각에서 제기된 ‘한화갑 공동대표설’에 “불가”를 천명하고 민주당을 새롭게 할 공동대표 모색과 더불어 ‘연합공천’ 카드를 빼들었다. 분당 위기에 직면한 민주노동당은 당 화합과 더불어 권영길 대표의 ‘백의종군’ 행보로 불붙은 노회찬, 심상정 의원의 차기 전쟁을 주목케 한다. 활동을 재개한 창조한국당도 총선을 향한 발걸음을 뗐다. 우선 신중하게 자세를 가다듬고 신당과 민주당을 예의주시하기로 한 것. 2차전으로 삐그덕거리는 움직임이 멈출 수 있을지, 3차전인 빅뱅으로 돌입할지 범여권에 정가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범여권이 당 변혁을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시끌시끌했던 초반과는 사뭇 기세가 다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각오다.


신당 아슬아슬 암초 항해


대통합민주신당은 4월 총선을 진두지휘할 새 대표로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선출하며 당을 추스리기 시작했다. 새 대표를 중심으로 총선까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신당의 선결과제가 된 것. 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손학규 대표 체제’에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책임론’과 관련한 논란도 식지 않고 있다.

손 전 지사는 중앙위원회의에서 재적위원 5백14명 중 3백6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1백64표를 얻어 당의 새 대표가 됐다. 이번 대표 선출은 출마 후보 없이 중앙위원들이 지지후보 1명씩 이름을 적어내는 ‘교황 선출식’으로 진행됐다. 손 전 지사는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어 추가 투표 절차 없이 대표로 확정, ‘손학규 추대론’의 대세를 실감케 했다.

그러나 경선을 주장하던 정대철 상임고문과 염동연 의원, 추미애 전 의원, 정성호·문병호 의원 등 초선그룹, 문희상 의원 등 당 쇄신에 대한 다른 주장을 하던 이들은 불참한 투표여서 ‘대표성’에 의구심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대통합민주신당-‘교황’ 손학규, ‘친노’ ‘정동영계’ 물갈이 ‘술렁’
민주당-박상천 “한화갑 ‘불가’”, 공동대표 ‘새 인물’ 어디에?


‘손학규 체제’의 후폭풍은 거셌다. 손 전 지사가 당 대표로 선출되기 무섭게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탈당선언이 이어진 것. 이 전 총리는 “여야 주요 정당의 대표를 모두 한나라당 출신이 맡게 된 정치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그로 인해 민주화 이후 저희들을 일관되게 지지해주셨던 분들이 느낄 혼란과 허탈감에 고개를 들 수 없다”며 “손학규가 대표가 된 신당은 정체성과 좌표를 잃은 정당”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총리가 친노 그룹의 수장이었던 만큼 유시민 의원 등 친노 그룹의 집단탈당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유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대선에서 졌으니까 친노세력은 나가라’부터 시작해서 ‘정동영 후보와 그 계보 쪽에서 열린우리당 쪽에서부터 시작해서 망쳐놨으니까 당신이 나가라’ 이런 주장에 이르기까지, 대선 평가에서부터 시작해서 앞으로의 진로에 이르기까지 어떤 접점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신당의 현실”이라며 당내 중도진보와 중도보수에 대해 “이제는 따로 가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고 말해 이러한 관측에 힘을 실었다.

이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친노신당 창당설’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한 친노 의원은 “집단탈당은 현실성이 없다. 탈당은 자제하자는 분위기”라며 친노 그룹의 대체적인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최근 당 내 ‘친노 퇴출설’이 수면 위로 떠오른 후 ‘광장’ 등을 중심으로 친노 세 결집 분위기가 감지됐던 만큼 ‘친노신당’의 가능성은 커져가고 있다.


손학규號 변할 수 있을까


친노 그룹의 탈당은 신당에게는 양날의 칼이다. 친노 그룹이 탈당하면 신당으로서는 참여정부의 실정 책임에서 빗겨나는 게 한결 수월해진다. 하지만 이와 함께 당의 색깔을 잃게 돼 ‘한나라당 2중대’라는 비판에 대응이 힘들어진다는 역효과도 생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동영 그룹의 행방도 관심사”라며 ‘손학규 체제’ 출범으로 고립이 심해진 정동영 전 장관을 언급했다. 그는 “손 대표를 지지했던 이들이 친노 그룹의 탈당을 기폭제로 삼아 정동영 그룹까지 내치는 대대적인 물갈이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도 들려온다. 정치적 행보에 제약을 받고 있는 정 전 장관인만큼 당장 적극적 방어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신당을 흔드는 친노 그룹 탈당, 정동영 그룹 물갈이와 관련된 설은 ‘손학규 체제’를 향한 당 쇄신 요구에서 출발한다.

손 전 지사가 당 대표 수락 연설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국민의 목소리는 반성과 쇄신과 변화”라며 “이번 대선에서 국민께서 우리에게 준 엄중한 질책과 채찍을 낮은 자세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우리 자신을 새롭게 바꿔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듯 당 쇄신은 ‘손학규 체제’를 위한 선결과제다.

손 전 지사의 임기는 4월9일 18대 총선일까지로 총선 결과에 따라 향후 ‘손학규 체제’가 유지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난다. 총선 승리로 일약 차기 대권주자 물망에 오른 박근혜 전 대표처럼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당을 뿌리부터 바꾸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하지만 김한길 의원으로 시작된 총선 불출마 선언이 도미노 현상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등 ’책임론’에 대한 당 내 의원들의 의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당 쇄신을 통한 총선 살아남기 전략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또한 당 쇄신에 손 대표가 자신의 사람들인 수도권 386의원까지 쇄신할지의 여부, 자유신당의 출연으로 흔들리는 충청권·수도권 의원들의 동요가 당 쇄신 과정에서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 같은 걸림돌은 출범부터 당내 반발을 부른 정체성 논란, 총선까지의 시한부 대표라는 한계를 지닌 손 대표에게는 힘든 과제일 수밖에 없다. 손 대표는 말마따나 ‘독배’를 잡은 것. 손 대표가 3개월여의 시간동안 신당 내 계파들의 통합과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에 정치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살 길 찾아 ‘버둥버둥’


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당 안팎의 퇴진 요구에 ‘연합공천’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당 안에서는 박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며 당을 나간 손봉숙, 김종인, 이승희, 김송자 비례대표 의원과 김경재, 김영환, 김성순 전 의원 등 당 쇄신파의 신민주포럼이 조순형 의원을 대표로 추대하고 조직을 강화해 박 대표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당 밖에서는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지금 민주당은 처방이 없다”며 “우리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이었던 전라도까지 ‘민주당이 이 상태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안 되는 것을 붙들고 천년을 가면 무엇을 하느냐.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물러나면서 빨리 처방을 찾아야 한다”고 박 대표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민노당-뒤돌아선 권영길…노회찬·심상정 ‘신경전’
창조한국당-문국현의 ‘선택’…신당·민주당 ‘기웃기웃’


박 대표는 일각에서 제기된 한 전 대표와의 공동대표 구성에 대해 “한 전 대표는 공동대표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다”며 “공동대표제는 비호남권, 특히 수도권을 의식해 새로운 영입 인사 중에서 공동대표가 나올 것을 전제를 해서 구상을 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대표는 이어 기본적으로 호남에선 자유경쟁을 하고 수도권 등은 연합공천을 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호남은 워낙 (출마) 수요가 많으니까 정리가 안 되는 반면 서울의 경우 지역에 따라 여론조사를 통해 경쟁력이 강한 후보로 연합공천을 하면 될 것”이라고 연합공천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하지만 각 당의 분위기는 ‘지켜보자’다. 대통합민주신당 “현재로선 빠른 얘기”라며 한발 물러섰고 창조한국당은 “상황의 심각함을 인식하지 못한 어설픈 정치행위”라고 비판했다. 아직 연합공천론은 섣부르다는 것.

정치권은 한 전 대표의 ‘제3지대 신당’에 민주당 일부가 솔깃해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연합공천론’은 입지가 좁아진 박 대표가 던진 무리수로 보고 있다. 이는 손학규 체제로 개편된 신당, 이 전 총재의 ‘자유신당’으로 당 내 시선이 분산되는 것을 ‘공천’으로 막아보고자 했다는 것이다.


치고 박고 노려보고


민주노동당에는 아직도 전운이 맴돌고 있다. 당내 자주파와 평등파 계파간 이념갈등이 도를 넘은 것. “종북주의 책임론은 인정할 수 없으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 타협은 있을 수 없으며, 비타협적으로 싸우겠다. 분당 등 일종의 협박에 대해 굴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주파와 “종북주의 청산 등 당을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못하고, (자주파가) 다수의 힘으로 누른다면 분당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평등파의 갈등에 대해 일각에서는 ‘분당의 전초’라고 말할 정도로 심각하다.

심상정·노회찬 의원은 “분당만은 막겠다”는 입장이지만 당내 갈등 조정은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해 천영세 대표 직무대행은 “갈등과 분열, 대립을 조장하는 과도한 언행은 당을 어렵게 한다. 결코 분당은 없다”며 “80년대식 해묵은 이념논쟁은 불식돼야 한다”고 이념보다는 총선으로의 집중을 외쳤다.

또한 ‘백의종군’ 행보를 보이고 있는 권영길 대표의 부재 등으로 심상정·노회찬 의원의 차기 신경전도 곧 가시화 될 것이라는 말도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창조한국당은 총선 체계로의 변화에 들어갔다. 정치권 안팎의 상황을 주시하며 최대한의 이익을 노리겠다는 각오도 엿보인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신당과 내홍을 겪고 있는 민주당에서 일부 정치세력이 당 쇄신 등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올 경우 이를 수용, 외연을 확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인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 중 하나가 공천이다. 당 체제 개편의 후폭풍이 거셀수록 새 둥지를 찾는 이들도 늘 것”이라며 “이러한 현상이 범여권의 지형도를 뒤흔들 수 있다”고 ‘범여권 빅뱅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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