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들의 미덕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위직이나 지도층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그 유래는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로마의 사회 고위층은 공공봉사에 열심이었고 기부나 헌납 등의 전통이 강했다. 또한 병역, 납세 등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높은 신분에 걸맞은 공익을 우선하는 행위들은 명예이자 의무로 간주됐다. 아울러 국가와 공동체에 필요한 공공시설이나 기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개인 재산을 투자하는 데 열성적이었다.

로마에 전쟁이 나면 지도층의 자제들은 단박 하던 일을 중단하고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자신의 목숨보다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투철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었기에 로마는 1,200년 동안 서양의 역사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행세할 수 있었다.

로마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비근한 예로 영국 고위층 자제들이 다닌 명문 이튼칼리지 출신 중 기천 명이 제1-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다.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는 포클랜드 전쟁에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 주석의 아들 모안영은 한국전에서 죽었고, 신태영 장군의 아들도 전사했다.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밴프리트 장군의 아들은 야간폭력 임무수행 중 실종됐다.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은 한국전에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2008년 현재 우리나라의 지도층은 어떤가? 각종 병역 비리의 중심에는 항상 사회 지도층 인사의 자제들이 연관돼 있었고, 재벌과 대형교회의 소유권 세습이라는 전근대적인 관행만 보아도 저 불멸의 제국 로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는 하늘과 땅처럼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미국의 영원한 대통령 J. F. 케네디는 ‘만일 사회가 다수의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없다면 부유한 소수의 사람도 구해줄 수 없다’고 역설한 적이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경제적 양극화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 사회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의 고통을 경감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진정 한국의 지도층이 목숨보다 더 귀히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풍습의 타락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물신주의(物神主義)적 생활 태도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한 마오쩌둥의 말은 이제 수정돼야 할 판이다. ‘권력은 은행창구에서 나온다.’

‘빨리빨리 불안증’, ‘냄비근성’과 더불어 ‘허영심’이 한국인의 대표적인 악덕이다. 중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외국인은 동양에서 한국인이라고 한다. 중국 여행 중에 우쭐하고 싶어 물쓰듯이 돈을 쓰는 졸부들 때문에 돈이 잘 벌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정당한 소유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만 지나친 소유는 소유 자체가 주인이 되어 소유자를 노예로 만든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당선자는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국민과의 신성한 약속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외피용이라는 말이 안 나온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재벌이나 대형교회의 당회장 목사 같은 부자들도 이 당선인의 태도를 본받아 지도층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믿는다.

애써서 힘들게 번 돈을 나중에 사회에 돌려주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다. 그러나 재산을 불려나가는 과정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적용돼야 한다. 한때 세간의 화제가 됐던 ‘경주 만석지기 최부잣집의 가훈’은 오늘날의 상류층을 형성하는 부자들에게 가치 있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흔히 정재사상(淨財思想)으로 요약되는 가훈에는 더불어 살아가는 재산가로서의 실천사항이 적혀 있는데, 그 중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마라’는 말은 남의 불행을 축재의 수단으로 삼지 말라는 윤리경영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적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백미는 다음의 가르침이다. ‘사방 백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 한국의 신흥갑부들이여, 뜨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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