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률의 <삼국지>

지금 <삼국지> 시장은 5호16국 시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서점 곳곳에는 여러 작가들이 펴낸 <삼국지>가 그 어느 때보다 눈에 쉽게 띈다. 황석영의 <삼국지>에서부터 이문열, 박종화, 정비석, 김홍신, 조성기, 김구용, 박상률, 장정일까지. 그야말로 요즈음 서점가의 <삼국지> 시장은 4세기 초반 중국의 5호16국 시대를 보는 듯하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세상 이야기를 하지 말라!'라는 이야기가 떠돌 정도로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인기가 드높은 <삼국지>. 우리나라의 이야기도 아니고, 후한 끝자락 중국의 위, 촉, 오, 세 나라를 배경으로 한 <삼국지>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리도 인기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지난 2004년 9월 끝자락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완역' <삼국지>를 펴낸 작가 박상률은 "인물 하나하나의 성격이 뚜렷한데다 펄펄 살아 움직이고 이야기의 변화 또한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곧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 하나하나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사람들과 '짝퉁'이라는 것.

바로 그 때문에 독자들은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온갖 것들을 다 드러내는 <삼국지> 인물을 따라가면서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때로는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그야말로 <삼국지>는 단순한 삼국의 패권다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사는 온갖 지혜와 용기와 의리와 희망 따위가 몽땅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박상률의 <삼국지>


"사실 삼국지 독자의 대부분은 청소년들이다. 그런데도 정작 그들이 읽을만한 삼국지는 없었다. 나는 청소년이면 다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쓰면서도 내용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체를 다 담은 삼국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머리말, '삼국지와 소중한 만남' 몇 토막

시, 소설, 희곡, 동화 등 장르를 마음대로 넘나들며 맹렬한 글솜씨를 뽐내고 있는 작가 박상률(49)이 펴낸 <삼국지>(시공주니어)는 지금까지 서점에 나와 있는 여러 <삼국지>와는 조금 색다르다. 이 책은 그동안 어려운 한자말 투성이의 성인용 <삼국지>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우리말로 쉽게 풀어놓은 것이 특징이다.

작가 박상률은 "지금까지 나와 있는 삼국지들을 보면, 과연 우리말을 알고 옮겼는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삼국지가 대부분이다. 뜻도 알 수 없는 한자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은 뒤 토씨만 우리말로 달아놓고 '번역'이라고 우긴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그건 번역을 왜 하는지 조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어설픈 솜씨다"고 꼬집는다,

박상률은 "청소년 시절에 삼국지를 읽을 거라면 순 우리말을 제대로 써서 옮긴 걸 읽으라 권하고 싶고, 이어 한 대목도 빼먹거나 얼버무리거나 비틀지 않은 걸 읽으라 권하고 싶고, 나아가 청소년 문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히는 사람이 옮긴 걸 읽으라 권하고 싶다"며, "나는 이 삼국지가 내가 권하는 그러한 조건을 모두 갖출 수 있도록 정성을 다했다"고 되뇌었다.

세상의 힘이란 오래 나뉘어 있으면 언젠가는 합쳐진다

"세상의 힘이란 것은 오래 나뉘어 있으면 언젠가는 다시 합쳐지고, 합친지 오래 되면 반드시 또 나뉘게 마련이다./ 주나라도 끝 무렵에는 무려 일곱 나라로 나뉘었는데 진나라가 하나로 통일시켰다. 그러나 진나라는 초나라와 한나라로 다시 나뉘었다. 그 다음에는 한나라로 합쳐졌다." -제1권 33쪽, '복숭아밭에서 한 다짐' 몇 토막

작가 박상률의 <삼국지>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이때부터 세 나라는 모두 진 황제 사마염에게 돌아가 천하가 하나로 모아졌다, 이른 바 '세상의 힘이라는 것은 합친 지 오래 되면 반드시 나뉘고, 나뉜 지 오래 되면 반드시 합쳐지게 마련이다'는 말 그대로였다"로 마무리된다.

이어 그때 일을 "뒤숭숭하고 시끄러운 세상일 끝이 없고/ 넓고 멀고 아득한 하늘의 운수 벗어날 길 없네/ 솔밭처럼 셋으로 나눠 서려던 일 이미 꿈이 되었는데/ 뒷사람들 슬퍼한다며 괜스레 시끄럽게 구네"라고 읊는 <삼국지>에 나오는 옛시를 다시 읊으며, 박상률의 <삼국지>는 긴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그렇다. 세상일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무한대로 이어진다. 위, 촉, 오나라 모두 저마다 큰 뜻을 품고 나라를 세웠지만 결국 천하를 품에 안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사마염에게 하나로 통일되고 마는 슬픔을 맛본다. 하긴, 삼국마다 수많은 영웅과 인재들이 숱하게 있었지만 하늘의 큰 뜻을 그 누가 감히 짐작할 수 있겠는가.

나관중의 원본 <삼국지연의>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고스란히 옮겨

"이건 서천 쉰네 고을의 지도입니다. 장군께서 큰 뜻을 이루시려거든 북쪽은 조조가 하늘의 때를 이용해 차지했으니 그대로 둘 수밖에 없고 남쪽은 손권이 지리적으로 좋은 점을 살려 차지했으니 어쩔 수 없으므로, 장군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차지하셔야 합니다. 먼저 형주를 차지해서 집으로 삼고 나중에 서천을 차지하여 발판으로 삼으십시오." -제4권 46쪽, '셋으로 나뉠 천하' 몇 토막

박상률의 <삼국지>는 모두 10권이다. 제1권 <복숭아밭에서 다짐하다>, 제2권 <영웅들의 다툼>, 제3권 <힘들고 괴로운 길 멀리>, 제4권 <바람과 구름을 타고>, 제5권 <천하의 판을 새로 짜기 위해>, 제6권 <서촉 하늘 아래로>, 제7권 <스러지는 별들>, 제8권 <싸움은 끝나지 않고>, 제9권 <하늘의 뜻은 어디에>. 제10권 <천하는 다시 하나로>가 그것.

하지만 지금까지 나와 있는 한자어 위주의 <삼국지>와는 많이 다르다. 보통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내놓은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셋으로 나뉠 천하'라며 순 우리말로 쉽게 풀어놓는다. 게다가 나관중의 원본 <삼국지연의>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긴다.

박상률의 <삼국지>의 백미는 우리말과 글 제대로 쓰기에 있다. 또한 그 때문에 어린이와 청소년뿐만 아니라 한글세대로 자란 어른들까지도 이 책에 담긴 속뜻을 제대로 알고 쉽게 읽을 수 있다. 이는 모두 작가가 그동안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동화나 소설집을 숱하게 펴낸 글힘과 우리말과 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마의는 더욱 힘을 내 쫓아갔다. 그때 느닷없이 산 뒤에서 포소리가 크게 나더니 외침 소리가 크게 일었다. 촉군들은 가던 길을 되돌아서더니 깃발을 흔들고 북을 마구 울렸다. 숲 우거진 그늘 아래에서 중군의 큰 깃발이 나부끼며 나오는데 보니 '한 승상 무향후 제갈량'이라고 크게 씌어 있었다. 사마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낯빛이 바뀌었다." -9권 196쪽, '제갈량 죽다' 몇 토막

아마도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죽은 공명이 산 사마의 중달을 쫓다'라는 부분을 쉬이 잊지 못할 것이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도 '사마의는 용기백배하여 전방으로 질주했다'라는 한자어 대신 "사마의는 더욱 힘을 내 쫓아갔다"라는 순 우리말로 쉽게 풀어나간다. 한자를 우리말로 풀어쓰면 길어진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통쾌하게 깨부수는 것이다.

게다가 박상률의 <삼국지> 곳곳에는 모두 250컷 남짓한 컬러 그림들이 들어 있어 읽는 이의 재미를 한층 더 높인다. 그림 속에 나오는 무기나 싸움도, 지도 등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나온 그 어떤 <삼국지>에서도 볼 수 없는 색다른 볼거리다. 특히 책 곳곳에 갈색으로 인쇄된 글자에 대한 자세한 해설까지 본문 양 쪽에 날개처럼 덧붙여 놓았다

부록 <삼국지로 가는 지름길>도 박상률의 <삼국지>를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 부록에는 삼국지에 나오는 주요 인물과 주요 싸움, 무기, 고사성어, 연대표, 역사 지도, 중국 현대 지도 등이 꼼꼼하게 나와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여러 시와 노래 또한 하나도 빼놓지 않고 순 우리말로 깔끔하게 옮겨 놓았다는 것도 새로운 읽을거리다.

긴 겨울밤, 입담 좋은 작가에게 밤새워 듣는 한국판 <삼국지>

작가 박상률의 <삼국지>는 나관중의 원본 <삼국지연의>를 순 우리말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한국판 <삼국지>이자 한국판 중국 고전이다. 이 책은 기나긴 겨울밤 마을에서 입담 좋은 사람이 아이들을 불러 모아 놓고 밤을 새워 들려주는 재미난 이야기, 수없이 들어도 결코 질리지 않는 그 사랑방 이야기 같은 훈훈함이 깃들어 있다.

작가 박상률은 1958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1990년 월간 <한길문학>에 시 '진도아리랑'을, <동양문학>에 희곡 '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진도아리랑> <배고픈 웃음> <하늘산 땅골 이야기>가 있으며, 청소년을 위한 장편소설 <봄바람><나는 아름답다> <밥이 끓는 시간>을 펴냈다.

희곡집 <풍경소리>, 어린이책 <까치학교> <구멍 속 나라> <바람으로 남은 엄마> <미리 쓰는 방학일기> <내 고추는 천연기념물> <개밥상과 시인 아저씨> 등이 있다. 1996년 희곡 '풍경소리'로 <불교문학상> 받음.

그린이 백남원은 1968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그린 책으로는 <가방 들어주는 아이> <오늘 재수 똥 튀겼네> <내 친구 꼬마 용> <한국생활사박물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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