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오뎅국물'로 추억하는 어머니 사랑

▲ 추억의 오뎅(어묵)공장. ⓒ 김순희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구수한 '오뎅' 국물이 군침을 당기는 계절이다. 길을 가다 보면 곳곳에 나를 유혹하는 오뎅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오뎅과의 추억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버스가 자주 없었던 어린 시절. 5일장이 열리는 언양장에 가려면 먼지가 펄펄 나는 자갈길을 지나 삼도물산이라는 큰 공장을 반 바퀴씩이나 돌아서 공장 뒤편에 있는 마을을 하나 지나야만 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서 막내인 나로서는 학교 외의 유일한 외출이 있었는데 그것은 항상 5일장을 나서는 어머니의 뒤를 따라 나서는 것이었다. 마을 사거리를 지나칠 때 친구들은 묻는다.

"순희야, 니 어디 가노?"
"나, 장에 간다 아이가."
"와, 좋겠다. 언제 오는데?"
"난 모른다. 가 봐야 안 알겆나. 너거들끼리 잘 놀거라."

빨간 장바구니에다 파란 보자기를 담아 네모난 큰 지갑을 든 일복(몸뻬) 차림의 어머니를 따라 가는 나를 부러운 듯 쳐다보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난 행복한 마음으로 종종걸음을 재촉했다.

시골에서의 유일한 나들이가 되는 셈이라 그땐 장을 오가다 만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나가는 낯익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만나면 어머니의 안부가 먼저 아니라 그 뒤를 졸졸 따라온 나를 두고 모두가 한마디씩 건냈다.

"아지매요, 야가 누군교? 아지매도 안 닮고 참하게 생겼심더."
"야가 누구긴 누구겠는교, 내 딸래미 아인교."
"아따, 아지매한테 요로케 차만 딸래미가 있었는 줄은 몰랐심더."
"이기, 늦둥이 아인교. 안 낳을라꼬 애를 썼는디 우째 이리 낳았다 아인교. 지그믄 마 제일로 말 잘 듣고 이쁨더."

한참을 나를 두고 말을 걸어오는 아주머니에게 항상 어머니는 자랑삼아 대답을 하셨다. 나 역시 그때부턴 어머니에겐 내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양 착각 속에 살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선지 5일장의 동행자는 언제나 나였고, 난 그렇게 채택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어머니가 물건을 살 때마다 옆에서 보란 듯이 찰싹 붙어 생글생글 웃으며 물건을 파는 주인을 쳐다보아드렸는지도 모른다.

"보이소, 오늘 우리 딸래미 데리고 장보러 이 먼데까정 왔는데 좀 깎아 주이소. 야?"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살 때마다 떼 아닌 흥정을 스스럼없이 하셨던 기억이 더 생생하다.

그런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맨 마지막으로 언제나 거르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었다. 지금 그곳에는 '오뎅공장'이라는 간판이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잊지 않고 그곳에서 오뎅을 사가곤 한다.

그때는 천 원어치가 정말 많았다. 유달리 내가 좋아했던 것이라 어머니는 그것을 깎지는 않고 오히려 하나 더 덤으로 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그냥 하나 쥐어 들고 나의 손을 재빠르게 당기면서 "감니데이" 하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해가 어스름 저물고 먼 길을 걸어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마을 어귀 자갈밭을 걸어오면서 어머니는 놀리시는 한마디를 하시곤 하셨다.

"순희야, 니는 나중에 마 오뎅 공장장한테 시집가거라."
"왜요?"
"니가 하도 오뎅을 좋아하까네 공장장한테 시집가면 실컷 안 묵겠나. 그라고 시집갈 때 냉장고 제일로 큰 거 사서 그 안에는 오뎅만 가득 넣어 가거래이."
"엄마, 참말로 그래도 되나? 나는 진짜 오뎅이 제일로 맛있다. 오뎅만 묵고 살라카믄 좋겠다.”

나의 '오뎅' 사랑은 아주 오래된 연인보다도 더 친숙하고 정감 있는 벗이 되기도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 맛을,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서 더 찾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오뎅 공장장한테 시집은 못 갔지만 오뎅을 싫어하는 남편이 이젠 나보다도 더 장보러 가면 챙긴다. 그것만으로도 난 이미 오뎅 사랑 1호가 아닐까 싶다.

시원한 무를 잘라 넣고 오뎅을 듬성듬성 썰어 고춧가루로 얼큰하게 간봐서 오뎅국을 끓이면 큰 사발에 아버지보다도 오빠, 언니들 보다도 더 많은 양의 오뎅만을 담아 내게 건네주시며 "우리 순희 마이 묵거래이" 하시던 어머니의 그 마음이 오늘따라 더 그립다.

5일장은 그대로인데 그 때의 어머니와 난 더 이상 5일장의 동행자가 아니다. 생각하면 철없고, 머쓱한 일이긴 하지만 언제 한번 어머니가 5일장 나설 때 못이기는 척 따라나서고 싶다.

아직도 어머니의 눈 속엔 내가 그 때의 어린 이쁜 막내로만 보이실까? 오뎅을 보면 내 생각이 간절해 지금도 오뎅 공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던 어머니의 말씀이 귓전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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