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경혜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
철저한 가부장 중심의 조선 봉건제 사회라는 시대적 제약과 개인적 불행 속에 살다간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의 삶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졌다.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이라는 이 책을 엮은이는 시인이나 국문학자가 아닌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한 작가 이경혜다. 그는 그림책 번역과 어린이 독자를 위한 여러 권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의 독자도 어린이나 청소년이 그 대상이다. 조선 중기 뛰어난 여성 시인 허난설헌에 대한 글쓴이의 애정이 대단한 것 같다.
"허난설헌은 어느 날 붉은 연꽃 스물일곱 송이가 지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꿈에서 본 대로 스물일곱의 나이에 그 꽃처럼 지고 맙니다. 이 시집에도 스물일곱 편의 붉은 연꽃 같은 시가 담겼습니다. 이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을 그 작은 무덤 앞에 바칩니다. 어쩌면 그 아이들은 다시 태어나고 태어나기를 거듭하여 지금쯤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가 되어 이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에게도 이 시집을 바칩니다."
책 맨 앞머리 '하늘에 있는 시인에게'라는 제목의 '글을 열며'라는 글쓴이의 글이다. 광릉(지금의 경기도 광주)에 있는, 어린 자식의 두 무덤을 앞에 두고 있는 허난설헌의 무덤 앞에서 쓴 글이다. 인용문에서 말한 것처럼 저자는 이승에서 남기고간 '스물일곱'이라는 숫자의 붉은 연꽃 같은 시편(詩篇)으로 허난설헌의 삶과 문학을 그려내고 있다.
스물일곱의 편의 시는 한시(漢詩)가 아니라 저자가 번안에 가까운 의역(意譯)의 한글로 된 시인데, 각 시편마다 허난설헌의 삶과 문학에 관한 저자의 상세한 해설이 실려 있다. 나는 이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을 하룻밤에 다 읽고 마음속에 그 '연꽃'을 새겨 넣었다. 내가 마치 어린 나이에 죽은 허난설헌의 아들이 환생하여 읽는 듯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갔다.
"지난해/사랑하는 딸을 잃고//올해는 아끼고 아끼던 아들마저 잃었다.//쓰라리고 쓰라린 광릉 땅에/두 무덤이 마주 보며 서 있구나.//사시나무는 쏴아쏴아/바람에 흔들리고//소나무 가래나무 사이로/도깨비불이 번쩍이는데//지전으로 너의 혼을 부르고/밝은 물을 너의 무덤에 붓노라.//그래 알겠다,/밤마다 너희 오누이 함께 어울려 놀겠지.//내 비록 배 속에 아이가 있다지만//어찌 잘 클 거라고 바랄 수 있겠니.//애끓는 노래를 하염없이 부르노니/피토하는 슬픔에 목이 메는구나." -'아들을 잃고 통곡하다' 전문.
서경덕 문하에서 학문을 수학하고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여식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누나인 난설헌(蘭雪軒) 허초희. 불우하기 그지없는 그의 삶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뛰어난 식견과 시재(詩才)로 오히려 남편 김성립과 시어머니로부터 냉대와 멸시를 받았던 설움, 어린 자식을 연달아 잃는 통절한 아픔, 스물일곱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하직해야 할 때 그동안 써온 시편들을 다 불사르면서 가졌을 그 한 맺힌 허난설헌의 삶이 작가 이경혜에 의해 '붉은 연꽃'으로 활짝 피어올랐다.
"창가에 난초/어여쁘게 피어나//잎과 줄기/어찌나 향기롭던지//하지만 서녘 바람이/한 번 스쳐 흩날리자//슬프게도/가을 서릿발에 다 시들고 마네//빼어난 그 자태는/시들어 파리해져도//맑은 향기만은/끝내 사라지지 않으리니//그 모습 바라보다/내 마음이 쓰라려//눈물이 뚝뚝 떨어져/옷소매를 적시네" - '난초를 바라보며' 전문.
인용한 시는 '나의 느낌'이라는 뜻의 '感遇(감우)' 연작시 가운데 첫 작품이다. "빼어난 그 자태는/시들어 파리해져도//맑은 향기만은/끝내 사라지지 않"을 모습은 바로 허난설헌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허난설헌이라는 자신의 이름에도 '난(蘭)'이 들어있는데, 난초를 바라보면서 옷소매가 젖도록 눈물을 뚝뚝 흘리는 허난설헌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걸 보면서 내 가슴이 다 미어진다.
"님이 주신 황금 팔찌는/비단 치마에 묶고 다녀요.//열 폭 치마 꽃 편지지에/푸른 구름을 물들여서//천년 궁궐 단 위에서 맺은 약속,/웃으며 편지에 적었지요.//그런 다음 파랑새를 불러/님께 전하고 오라 일렀답니다." - '편지' 전문.
이 시는 악록화란 선녀와 양권이란 신선의 얘기를 담은 사랑의 시입니다. 신선 세계니 통이 큽니다. 작은 종이쪽이 아니라 열 폭이나 되는 넓은 치마를 편지지로 삼습니다. 그 위에 또박또박 편지를 씁니다. 사랑의 약속을 잊지 말라고.
신선 세계에는 집배원도 필요 없습니다. 파랑새를 불러 편지를 전해 달라고 시키면 그만이지요. 허난설헌이 꿈꾼 사랑은 조선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당당하고도 달콤한 연애였습니다. 이런 아름답고도 자유로운 사랑을 난설헌은 '유선사'에서 신선의 모습을 통해 마음껏 드러내고 있습니다. - 124쪽
"어젯밤 꿈속에서/봉래산에 올라갔지.//맨발로 용의 등에/올라타고 말이야.//수염 허연 신선 할아버지가/푸른 옥지팡이를 짚고//연꽃 모양의 부용봉 봉우리에서/나를 반겨 맞아 주셨지.//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동해 바다 푸른 물은//어찌나 잔잔한지/대접에 떠 놓은 물 같았어.//봉황새는 꽃그늘 아래에서/옥피리를 불고//달빛이 쏟아지니/황금 대접 속의 물이 찰랑찰랑" - '어젯밤 꿈' 전문.
웅장한 스케일의 대담한 상상력의 시다. 허난설헌을 두고 '잘못을 저질러 이 세상에 귀양 온 하늘의 선녀'라고 하는데, 고통스럽고 외로운 시집살이가 이러한 꿈과 도교적 상상력의 시편들을 쓰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시대 어떤 남성 시인의 작품과 비교해도 그 스케일이나 시적 성취면에서 헌난설헌의 작품은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만약에 그가 오늘날과 같은 여성에 대한 억압과 구속이 비교적 자유로운 시대의 시인이었다면 어떨까를 생각해봄에 그의 불우한 삶이 더욱 가슴을 저미게 한다.
허난설헌은 본래 자신의 원고를 남기지 않았다. 그가 죽은 다음 해에 동생 허균이 누이의 시를 외우고 있던 것, 흩어진 원고를 모아 시집을 엮는다. 그리고 그 시집이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 '주지번'에 의해 건네지면서 중국에서 허난설헌의 시집이 간행되고, 1771년 일본에서도 '분다이야 지로'에 의해 간행되었다.
작가 이경혜의 수고로 세상에 나온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으로 우리에게 허난설헌의 문학과 삶이 좀더 친근하게 다가오기를 바란다. 윤석남과 윤기언 화가가 그린 책 속의 그림은 읽기를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허난설헌의 어려운 한시(漢詩)를 어린이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냈을 뿐 아니라, 작품을 읽는 동안 허난설헌의 삶과 마음까지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것은 글쓴이 이경혜님의 노고(勞苦)의 결과다.
허난설헌, 자신의 한 많은 이승의 삶을 마감할 것을 감지한, 그리고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갖게 한 그의 시 한 편과 작가 이경혜의 해설을 인용하면서 내가 만난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 감상의 글을 끝맺는다.
"푸른 바닷물이/하늘로 스며들고//푸른 난새는/오색 난새에게 기대고 있다.//연꽃 스물일곱 송이/붉게 떨어지니//달빛이/서리 위에 차갑기만 하다." - '꿈에 본 것을 적다' 전문.
허난설헌이 부모의 상을 당해 외삼촌 댁에 머물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스물두 살 때였지요. 난설헌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보니 바다 한가운데에 온통 구설과 옥으로 만들어진 산이 있었습니다.
그 산은 눈이 부셔서 바라볼 수가 없을 만큼 반짝였습니다. 그때 아름다운 두 여인이 나타나 난설헌과 함께 그 산에 올라갔습니다. 산에는 난새와 학이 춤추고 기이한 풀과 꽃이 가득해서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푸르렀고 그 위로 붉은 해가 솟아올랐습니다. 봉우리 위에는 맑고 큰 연못이 있는데 서리를 맞아 반쯤 시든 연꽃이 있었습니다. 두 여인이 말했습니다. "이곳은 광상산으로 신선 세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대에게 신선의 인연이 있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니 시 한 수를 지어주십시오." 난설헌은 사양하다 시 한 수를 읊었습니다. 두 여인은 손뼉을 치면서 "한 자 한 자가 모두 신선의 글입니다."하며 기뻐했습니다.
난설헌은 잠에서 깬 뒤 그 시를 기억해 내 적어 놓았는데 그 시가 바로 이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덧붙어 있습니다. 그 꿈을 꾸고 몇 해 지나 스물일곱 살이 되었을 때입니다.
어느 날 난설헌은 이렇게 말합니다. "올해가 바로 스물일곱 살 되는 해이므로 연꽃이 서리를 맞아 붉게 떨어질 것입니다." 그 말은 곧 스물일곱 살이 되었으니 이제 죽을 거라는 말이었습니다.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난설헌은 자기 말대로 그해 어느 날 병도 없이 고요히 한 많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 176~1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