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동순, 가요 이야기 <번지 없는 주막>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비 내리는 그 밤이 애절구려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아주까리 초롱 밑에 마주 앉아서
따르는 이별주는 불 같은 정이었소
귀밑머리 쓰다듬어 맹세는 길어도
못믿겠소 못믿겠소 울던 사람아

- 백년설, '번지 없는 주막'(처녀림 작사, 이재호 작곡) 모두

"아이쿠, 징그러워라! 이 따위 잔인한 짓은 다신 안 해!"

지난 1980년대 허리춤께, 충북 청주에 있는 불문학자 전채린 교수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시인 김지하와 시인 이동순이 마주앉았다. 작가 김성동과 철학자 윤구병 교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왜? 노래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모르는 노래가 없는 이 두 시인이 누가 더 노래를 잘 부르는가 매듭을 짓기 위해서였다.

그때 김지하 시인은 '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 등으로 한창 잘 나가던 가수 조용필과 노래시합을 벌여 이긴 상태였다. 그랬으니, 김지하 시인 생각에는 지방에서 제 아무리 노래를 잘 부른다 입소문이 자자한 이동순이라 해도 밤을 새워 소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다 보면 제 풀에 지쳐 떨어질 것이라 여겼다.

그날, 김지하 시인은 작가 김성동과 함께 청주의 무심천 방뚝에 있는 국밥집에서 소주를 곁들여 저녁까지 든든히 먹었다. 그리고 밤참으로 먹을 과일과 술, 라면 따위를 잔뜩 사들고 이동순과 일행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갔다.

노래 부르는 규칙도 엄격하게 정했다.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나면 1분 안에 이어서 불러야 하고, 한번 부른 노래를 다시 부르면 실격, 3절까지 노래를 부르면 보너스 점수를 주기로 했다.

노래시합은 저녁 8시부터 시작됐다. 그렇게 시인 김지하와 시인 이동순이 주고받는 노래는 새벽 4시를 넘길 때까지 이어졌다. 이윽고 동이 틀 무렵, 불러도 불러도 쉬지 않고 이어받는 시인 이동순의 노래를 듣던 김지하 시인이 "아이쿠, 징그러워라! 이 따위 잔인한 짓은 다신 안 해!"하며 뒤로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시인 김지하의 완패였다.

우리 가요는 굴곡과 사연 많았던 한국현대사

"시인은 모름지기 자신의 시작품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는 나를 두고 '노래 잘 부르는 가객' '노래를 밤새도록 수백 곡이나 부을 수 있는 사람' '노래를 3절까지 기억하고 있는 기인' 따위로 일컫는 사람이 많다. 과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쉽게 분간이 서질 않는다" - '후기', 몇 토막

한국문단 안팎에서 '걸어 다니는 노래사전'이라 불리는 시인 이동순(57·영남대 국문학과 교수)이 정해년 새해 들어 우리 가요사를 새롭게 되짚어보는 에세이 <번지 없는 주막>(도서출판 선)을 펴냈다. '한국 가요사의 잃어버린 번지를 찾아서'란 덧글이 붙은 이 책은 그동안 '번지 없는 주막'처럼 사라져가는 우리 가요사의 맥을 되찾는다.

제1부 '노래여 노래여', 제2부 '노래로 들어보는 한국현대사', 제3부 '한국 가요사의 별', 제4부 '한국인이 즐겨 부르는 노래들', 제5부 '나의 대중가요 편력기'에 실린 '맨 처음 들었던 노래는 어머니의 음성', '항구, 식민지 백성들의 정신적 갈망', '이난영과 목포의 눈물', '노래방 문화와 나르시즘(자아도취, 자아집착)' 등 67편의 글들이 그것.

지금까지도 우리 가요 300여 곡을 가사를 보지 않고 3절까지 부를 수 있다(그것도 중 3때 모두 외웠다)는 시인 이동순은 "대학시험에 낙방하고 동해안 어느 골짜기로 숨어들어 아주 종적을 감추고 싶었던 시절, 산촌 골방에서 웅크리고 불렀던 노래는 힘과 용기를 회복시켜주는 활력소이기도 했다"고 되짚는다.

이어 그는 "지금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우리 가요를 좋아하고 사랑하며 커다란 기대를 하고 있다"며, "우리 가요는 참으로 굴곡과 사연도 많았던 한국현대사의 험난했던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문화적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젊은이들에게서 과거를 외면 부정하려는 시각들이 발견되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우리 가요의 뿌리는 일터에서 불려지던 '민요'

"모야 모야 노랑 모야
네 언제 커서 큰 벼 될꼬"

- 50쪽, '부르는 노래의 여러 스타일' 몇 토막

1970년대 끝자락. 시인 이동순은 경북 봉화군의 산골짜기에 있는 아는 사람의 집을 찾는다. 그때 시인은 면소재지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내려 들길을 걷는다. 저만치 길가에는 새벽까지 내린 봄비에 촉촉이 젖은 버드나무가 연초록 물기를 머금고 있다. 하늘에서는 따스한 봄 햇살과 함께 종달새가 지저귀고, 포근하면서도 달디 단 바람이 시인의 볼을 간질인다.

그때 어디선가 구성진 노랫소리가 들린다. 시인이 노랫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농부 한 명이 소를 몰고 논에 써래질을 하면서 제 홀로 노래를 크게 부르고 있다. 그 모습은 시인의 눈에 한 폭의 살아 있는 풍경화로 비친다. 시인은 물기 머금은 대지 위를 잔잔히 펴져나가는 그 노랫소리에 크게 감격한다.

사실, 그 농민은 누가 들으라고 노래를 부른 것은 아니다. 써래질을 하는 농민은 오직 자신의 고달픔을 이기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 노래는 결국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그런 아름다운 노래로 퍼져나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시인은 무릎을 탁 친다. "노래는 그것을 부르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과도 일치가 되어서 비로소 어우러지는 결정체"라며.

그렇다. 일찍이 우리 민족들이 노래를 불렀던 곳은 대부분 일터의 현장이었다. "길쌈할 때, 혹은 쇠를 만지는 대장간에서, 혹은 논과 밭에서, 혹은 산에서 나무를 하거나 해양에서 고기를 잡"을 때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곧 민요이기도 했고, 때로는 유행가의 한 가락으로 한껏 휘어지기도 했다.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 고운봉의 '명동 블루스'를 가장 좋아해

"결혼식 피로연 자리에서 부르는 노래가 있고, 이민을 떠나는 친구를 위해 부르는 노래가 있다. 졸업 축하연에서 부르는 노래가 있고, 산행에서 내려와 부르는 노래가 있다. 실의에 잠겨 있거나 슬픔에 빠진 사람을 위해 부르는 노래가 있고, 나약한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노래가 있다" - 352쪽, '한국인이 즐겨 부르는 노래' 몇 토막

시인 이동순은 "모든 사물마다 거기에 들어맞는 적절한 노래가 있는 것인가?"라고 스스로 반문한다. 이어 그는 "노래란 것은 자연의 리듬, 생활의 리듬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것"이라며,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는 순간, 자신이 자연 속에서 매우 소중한 하나의 존재라는 실감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 답한다.

시인 이동순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일까?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와 고운봉의 '명동블루스'다. 하지만 그렇게 수많은 노래를 알고 있는 시인도 1990년대 끝자락부터 불려지고 있는 우리 가요는 가락과 가사가 힘들어 알아듣기조차 어렵다고 고백한다. 이는 요즈음 우리 가요가 우리의 삶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시인 이동순이 작사, 작곡, 노래의 세 가지 조건을 기준으로 가려 뽑은 우리 민족이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 20곡은 어떤 것들일까.

고복수의 '사막의 한',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 진방남의 '마상일기', 백난아의 '찔레꽃', 현인의 '비 나리는 고모령', 장세영의 '고향초', 신세영의 '전선야곡', 한정무의 '꿈에 본 내 고향',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 백설희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과 '봄날은 간다', 송민도의 '나 하나의 사랑', 안정애의 '대전 블루스', 도미의 '비의 탱고', 안다성의 '에레나가 된 순희', 윤일로의 '항구의 사랑', '최무룡의 '외나무다리', 현인의 '세월이 가면', 이미자의 '삼백 리 한려수도', 하수영의 '아내의 노래'가 그것들이다.

이에 대해 행여 불만이 있는 작사가 작곡가 가수들은 이동순 시인에게 가서 따져보라. 그리하면 시인은 "나는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노래들을 오직 지정된 숫자에 맞추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베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몇 번을 미련 때문에 주저하고 노래를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고삐를 놓아 버리곤 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답할 것이다.

이동순 교수는 괴짜다?

"험한 세월의 혹독한 시달림과 파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서 이 낡은 고풍의 축음기는 내 방의 서가 한 켠에서 한결 고즈넉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언제든지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는 축음기 특유의 그 잔잔하고 애틋하며 때론 눈물겹기까지한 소리를 들려준다."

- 494쪽, '시간의 때가 묻은 것은 모두 소중한 것' 몇 토막

<번지 없는 주막>은 권력도 명예도 재물도 가진 게 없는 힘없고 가난한 민초들의 울분과 한을 달래준 우리 가요사의 잃어버린 주소를 찾아주는 노래에 얽힌 구수한 에세이다. 이동순은 이 책에서 아무렇게나 불려지는 듯한 노래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된 삶을 얼마나 포근하고 희망차게 감싸주는가에 대해 차근차근 풀어낸다.

최규성(한국일보 편집위원) 가요 칼럼리스트는 "영남대 국문과 교수 이동순은 괴짜"라며, "시인 백석을 발굴한 중견 시인인 그는 문단에서는 모르는 노래가 없는 가수이자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유명한 악사이다, 유행가 노랫말을 학문으로 연구하는 유일한 정통 국문학자다"라고 덧붙였다.

시인 이동순은 195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충북대 국문과 교수를 거쳐 미국 시카고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를 맡았으며, 지금은 영남대 한국학부 국문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시집으로 <개밥풀> <물의 노래> <철조망 조국> <가시연꽃> <미스 사이공> 등 10권과 민족서사시 <홍범도>가 있다.

그밖에 <민족시의 정신사> <시정신을 찾아서> <한국인의 세대별 문학의식> <시와 시인 이야기> <시가 있는 미국기행> <시인이 걸은 실크로드에서의 600시간> 등이 있으며, 편저로는 <백석시전집> <권환시전집> <조명암시전집> <이찬시전집> <조벽암시전집>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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