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로 들이받고 흉기로 찌르고 경찰서 보내달라고?

총기, 탄약 지키려던 해병대 박 상병은 수차례 칼에 찔려 사망
검거에는 경찰에 보낸 편지가 핵심역할 “양심의 가책 느꼈다”

연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강화군 총기 탈취 용의자가 잡혔다.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해병대 초병 2명을 코란도 차량으로 치어 1명을 숨지게 하고 소총과 수류탄 등을 탈취해 도주했던 범인이 사건 발생 6일 만인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단성사 극장 인근에서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총기류 탈취사건 용의자 조모씨(35)는 지난 6일 오후 5시40분께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황산도 선착장 입구 해안도로에서 부대로 복귀하던 박영철 상병과 이재혁 병장을 코란도 승용차로 들이받은 뒤 흉기로 병사들을 찌르고 소총 등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다.
당시 범인은 6일 오후 5시 50분께 코란도 승용차로 두 병사를 치고 지나간 뒤 유턴해 이 병장 가까이에 차를 세웠다.

격투 끝에 사망한 해병대 병사

조씨는 “다친 데 없느냐”며 이재혁 병장을 안심시키는 듯했던 범인은 갑자기 흉기를 꺼내들었고 격투가 시작됐다. 조씨는 이 병장의 왼쪽 손가락과 허벅지, 얼굴 등에 중상을 입히고 이 과정에서 이마에 상처를 입혔다. 범인은 이 병장의 소총을 빼앗고 이 병장을 둑 밑으로 밀어 떨어뜨렸다. 이후 조씨는 박영철 상병에게 접근했다. 그때까지 의식이 있었던 박 상병의 부상이 심한 것을 확인한 조씨는 박 상병의 허벅지와 옆구리 등 7군데를 찔렀고 정신을 잃은 박 상병에게서 수류탄 1발과 실탄 75발이 든 탄통을 빼앗았다. 박 상병은 이때 사망했다.

이후 경찰은 검문검색을 강화, 몽타주를 배포, 혈액형 대조를 하는 등 수사를 확대했지만 사건은 장기화되는 듯 했다.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조씨의 편지였다. 조씨는 검거 전날 총기류를 숨겨놓은 장소와 자수 의사를 밝힌 편지를 경찰에 보냈다. 경찰은 편지봉투와 편지지에 묻은 지문 7개를 검색해 조씨의 신원을 확인한 뒤 이날 조씨의 친구 제보 등을 통해 조를 검거한 것이다.

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후 5시46분께 부산 연산7동 우편취급소에서 우편배달원이 발견한 괴편지 겉봉에는 ‘경찰서로 보내주세요’, ‘총기탈취범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해당 편지에는 “상병이 죽었다고 들은 후 너무나 괴로웠으며 양심의 가책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면서 “총기는 고속도로 백양사 휴게소 지나자마자 옆가에 버렸다. 주변 수색을 하면 찾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 편지에서는 맞춤법은 물론 글씨체까지 일정치 않아 의혹을 증폭시켰는데, 경찰 주변에선 학력을 가늠할 수 없도록 편지를 왼손으로 쓰고 일부러 비논리적인 글을 써서 보냈다는 분석도 나왔다.

경찰은 12일 오후 8시께 7개 중대 1천여명의 병력을 동원, 장성의 호남고속도로 백양사휴게소 부근에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다. 다음날인 지난 12일 백양사휴게소 200m 부근 박산교 아래에서 K-2 소총 1정, 수류탄 1개, 실탄 75발, 유탄 6발 등 군용 무기 일체와 휴대폰을 함께 발견할 수 있었다.

조씨의 검거도 같은 날 이뤄졌다. 경찰은 이날 조씨의 지인으로부터 종로3가 단성사 인근에 조씨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경찰은 조씨의 지인으로부터 조씨가 모 지방대학교 금속공예과를 나와 평소 귀금속을 만들어 종로일대에 팔아왔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지인에게 조씨와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도록 하고 형사들을 현장에 급파, 잠복에 들어갔다.


단성사 인근을 배회하던 조씨가 경찰에 발견된 것은 오후 2시45분께. 형사들은 조씨에게 신원을 밝힐 것을 요구하며 검문을 실시하자 조씨는 이에 응하지 않고 도주하려다 결국 주변에서 대기중이던 또 다른 형사들에게 포위돼 저항하다 결국 검거됐다.

경찰은 조씨를 인근 치안센터로 끌고가 신원파악과 범행사실 등에 대해 추궁했다. 조씨는 처음에는 묵비권을 행사하다 머리에 생긴 상처와 전화 통화내역 등을 제시하자 결국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초 서울경찰청으로부터 조씨가 유력한 용의자라고 수사지시가 내려왔지만 지문 자체가 쪽지문(지문의 일부)이고, 범행이 워낙 치밀하게 계획돼 유력한 용의자란 사실에 반신반의 했다”고 밝혔다.

한편 조씨는 전북의 모 대학교 금속공예과를 졸업해 서울 K대 대학원까지 마쳤다. 2002년 이후 청담동 모 업체의 보석 다자이너로 일했으며, 근래에는 액세서리를 전문으로 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개인적으로 운영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범인은 말없고 조용한 사람

경찰은 “충동적으로 저질렀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그 정황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는데, 궁핍한 생활을 못 이기고 ‘돈’을 노린 2차 범행을 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워 무기 탈취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씨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5만원짜리 반지하 방에 살면서 최근 형편이 어려워 8개월간이나 월세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월세를 내지 못하자 집주인에게 셋방을 나가겠다고 했다가 ‘지금 일을 안하고 놀고 있는데 취직이 되면 다시 살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조씨는 주변에 얌전한 청년으로 알려졌다. 조씨의 가족은 “어디 가서 생전 싸우고 들어온 적도 없고, 술 마시고 들어온 적도 없고 애가 너무 착했다”고 하소연 한다. 조씨의 이웃들도 말없고 조용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검거 전날 은신하기는 커녕 수원 부모 집을 찾아가 “스키장에 다녀왔다”고 말하고 태연하게 저녁밥까지 먹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의 조용한 성격 안에는 스스로를 다중성격자로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조씨는 싸이월드의 개인블로그를 통해 극심한 정신적 혼란과 실연의 고통을 토로해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이 주목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2일 싸이월드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아마도 나는 다중인격 일지도. 인격보다는 다중성격인 것 같다”며 “사랑하는 사람. 가슴이 아직도 뜨겁게 뛴다. 하지만 너무 아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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