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은 지금 '방패막 기초공사' 한창?

재계 자산순위 5대 그룹의 연말이 분주하다. 정기인사 이동을 앞두고 고심에 빠져있는 까닭이다. 특히 올해는 대선을 비롯해 담합사건, 삼성비자금 사건 등 굵직한 이슈가 재계를 휩쓴 바 있다. 때문에 이를 바라보는 재계의 눈초리도 어느 때보다 날카롭다.

인사이동은 당해 사업평가는 물론 다음해 경영전략까지 내다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인사이동 규모에 대해 추측이 무성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희비가 엇갈리는 재계 5대 그룹의 연말 정기인사를 <시사신문>이 내다보았다.

대선, 삼성비자금 사태로 조용하게 진행되는 연말 정기인사
사장단 대규모 인사, 승계 향한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을 듯

어수선한 분위기의 연말은 기업인들에게 달갑지 않은 시기다. 재계 정기인사가 대체로 연말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정기인사는 임원에게 있어 한해 실적을 평가받는 시즌인 셈이다. 무엇보다 올해는 차기 정부의 성향에 따라 기업들의 경영계획이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연말 대통령 선거 결과가 인사의 주요변수로 꼽힌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인사의 폭과 범위를 두고 다양한 관측이 존재한다.


인사 계획 못 잡는 삼성

정기인사가 한창 준비 중인 재계에서 침울한 연말을 맞는 기업으로는 삼성그룹을 빼놓을 수 없다. 삼성 측 관계자는 “12월 인사는 물론 내년의 인사계획에 대해서 일정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사계획은커녕 정기인사 자체도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삼성 비자금 사건’은 이미 특검 및 검찰, 금융당국의 수사바람을 일으키며 삼성을 향한 압박에 나섰다. 이에 내년도 투자계획 및 정기인사까지 뒤로 밀린 형국. 그렇다고 정기인사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내년 초 주주총회 이전까지 정기인사를 해결해야 되는 만큼 내년 2월에 정기인사를 하리라는 설이 유력하다.

업계에서는 삼성 인사가 이뤄지더라도 최소한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게 점친다. 비자금 의혹의 대상이 된 임원을 교체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인사에서 좌천된 임원이 ‘제2의 김용철’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소폭 인사이동 후에 수시인사로 조직을 정비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삼성은 지난 7월 이례적 사장단 인사를 감행해 수시인사의 가능성으로 열어둔 바 있다.


현대차 “인사 아직 계획 없다”

지난해 발생한 비자금 파문 등으로 곤욕을 치룬 현대ㆍ기아차그룹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비자금 유통부터 비밀금고 위치를 검찰이 밝혀낸 것에는 내부고발자의 공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삼성 비자금 사태까지 터지면서 인사이동이 다소 조심스러워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현대그룹의 정기인사 일자는 구체적으로 예정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12월 말에서 연초까지 다양하게 점치고 있다.

이미 정몽구 회장은 수시인사의 대명사인 이른바 ‘깜짝 인사’에서 정기인사로 선회했다. 연내 굵직한 인사가 거의 없었던 것이 그 방증. 특히 정 회장은 지난 6일 정기인사를 묻는 질문에 “아직 계획이 없다”고 말해 발언의 의미를 놓고 구설수를 불러왔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그동안 임원을 너무 자주 교체해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점을 감안해 소극적인 인사이동을 시사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SK그룹 조직개편 검토 중

SK그룹의 경우 임원인사는 내년 2월, CEO인사는 3월로 예정돼있다. 그동안 혁신, 글로벌경영에 초점을 맞췄던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실적위주 쇄신인사를 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SK텔레콤의 김신배 사장의 임기가 만료되며 연임 여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SK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는데, 연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소리가 간간히 흘러나오고 있다.

김 사장의 임기 동안 SK텔레콤의 실적이 나쁘지 않았고, 그룹 내에서 IT전문 CEO로 통한다는 것이 이 바로 그것. 하지만 그동안 SK텔레콤에서 연임한 CEO가 한명도 없다는 점은 아직까지 김 사장의 연임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핵심 경영진의 세대교체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현재 SK는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따른 조직개편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 18일 이후 계열사별로

한편 LG그룹은 대선이 끝난 중ㆍ하순경에 정기인사 이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LG그룹 관계자는 “18일 이후로 계열사 별 임원인사가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LG그룹은 ‘성과주의’ 인사를 지난해 증명한 바 있다. LG필립스LCD의 대표이사였던 구본준 부회장을 LG상사로 이동시키고, LG전자의 간판 CEO였던 김쌍수 부회장을 일선에서 퇴진시킨 것.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친동생인 점 을 감안하면 구 회장이 성과위주 인사에서 친인척도 예외를 두지 않는 각오를 보였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올해 LG그룹은 주요 계열사들이 지난해 CEO 교체 인사가 이뤄져 사장단 인사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모든 계열사 실적이 대폭 호전돼 부사장급 이하 임원 인사는 대폭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롯데 신동빈 식(式) 인사

롯데그룹의 경우도 내년 2월로 예정돼 있다. 신동빈 부회장 체제가 비교적 굳어진 만큼 파격적인 인사이동은 적지 않겠느냐는 것이 재계의 전망이다. 오히려 기존의 보수적인 색체를 가지고 있던 신격호 회장 체제에서 신 부회장이 어떤 변화를 불러 올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종신고용의 대명사였던 롯데에서 얼마 전 롯데백화점 과장급 30여명에게 권고사직의 인사조치를 했던 것은 한때 재계의 이슈가 됐을 정도다. 따라서 신 부회장 체제로 접어든 롯데그룹의 금번 정기인사는 신 회장과 신 부회장의 성향을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인사이동이 되리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해마다 환희와 실망이 교차하는 연말 정기 인사. 하지만 올해 재계는 지난해 연달아 사장단과 임원인사가 줄을 잇던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CEO의 교체소식도 총수일가의 승진 소식도 조용하다. 이른바 ‘침묵의 인사철’이 된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반 기업정서가 팽배해 있는 만큼 승계나 튀는 인사이동은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될 것”이라면서 “새 정권과 내년 총선의 타깃이 되지 않기 위한 재계의 판단일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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