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국 ‘자중지란’ 과거? 의리? “다 필요없다”

▲ 제17대 대선정국이 범보수VS범진보 구도로 재편되면서 내년 총선을 겨냥한 철새정치인들의 줄서기 또한 혼전양상에 들어서고 있다.
제17대 대선정국이 회오리치고 있다. 사상 최대 후보 난립, 범보수VS범진보의 맞대결에 따른 각 정파 간 물밑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는 모두 12명. 이는 지난 1987년과 1992년의 8명, 1997년과 2002년의 7명의 후보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게다가 이번 대선은 1987년 노태우-김영삼-김대중의 3강구도와 1992년 김영삼-김대중 양강구도, 1997년 김대중-이회창-이인제 3강구도, 2002년 노무현-이회창 양강구도와는 달리 1강2중구도로 굳어지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까닭에 먹이사슬(내년 총선공천을 위한 당 선택)을 찾아가는 철새정치인들의 속셈도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특히 예전의 인물, 지역, 정책의 삼각구도에 ‘이념’까지 더해지면서 범진보진영과 범보수진영 내부에 ‘자중지란’까지 일어나고 있다. ‘과거’ ‘의리’ 다 필요 없다는 투다.

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를 중심으로 하는 범보수우파와 이명박 후보를 중심으로 하는 범보수중도파가 ‘이합집산’하고 있는 중이고, 범여권에서는 ‘비노파’와 ‘친노파’의 팽팽한 기싸움이 한창이다.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또한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통합 및 후보단일화 실패, 조순형 의원 탈당 등 잇따른 악재로 이인제 후보가 벼랑 끝에 섰다. ‘반부패’를 무기로 삼아 막판 뒤집기를 꿈꾸던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비정규직 딸’의 억대 재산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는 “처음으로 보수가 진보의 책임을 묻는 최초의 선거다. 지금까지는 진보가 보수에 대해 수구와 부패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면 그게 역전된 최초의 선거이고, 이명박 후보가 이를 테면 덕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BBK 의혹’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도덕성’에 치명타를 맞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 후보의 ‘부패’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다.


李와 昌, 범보수 핵분열 가속


범보수진영이 범보수우파와 범보수중도파로 쪼개지고 있다. 범보수우파의 꼭지점에는 이회창 후보가 서있고, 범보수중도파의 꼭지점에는 이명박 후보가 서있다. 이제 범보수진영은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탈바꿈할 위기에 놓여 있다.

신보수를 표방하고 있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뉴라이트는 최근 ‘올드라이트’를 등에 업고 있는 이회창 후보에게 ‘수구 우파’란 이름표를 달면서 “정계은퇴까지 선언한 사람이 노욕을 부리고 있다”며 “수구 우파와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는 막말까지 내뱉고 있다.

이에 비해 정통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은 이회창 후보 쪽으로 몰리고 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 등 대표적인 보수 논객들은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을 거세게 질타하며 ‘이명박 후보 사퇴’를 최고의 무기로 삼고 있다.

‘올드라이트’ 대표주자이자 한나라당 내 참정치운동본부장과 경선관리위원을 지낸 유석춘 교수도 이회창 후보 캠프에 들어갔다.


한나라 범보수우파VS범보수중도파, ‘이합집산’ 중
범여권 비노파VS친노파 기싸움, 정동영의 최후 선택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한나라당 정통 지지층인 이들의 이명박 후보에 대한 거센 공격은 곧 범보수진영의 분열과 ‘잃어버린 10년 되찾기 도루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내 한 관계자는 “모두 정권 교체를 얘기하지만 어떤 정권 교체인지에 대한 생각은 다른 게 사실이다. 다만 향후 보수진영 연합을 염두에 둔다면 서로를 향한 지나친 비난은 삼가는 게 좋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에 대해 ‘친박’ 김용갑 의원은 “BBK 진실 공방에서 한나라당의 주장이 흔들리고 있다. 이 후보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라. 좌파 정권교체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기대하고 있는 국민들이나 당원들은 지금 혼돈 속에 빠져있다”며 이명박 후보에 대한 공세 수위를 드높이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김 의원이 ‘친박’ 인사라는 점에서 ‘BBK 정국’을 바라보는 친박 진영의 인식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며 “자칫하면 ‘친이(이명박)VS친박(박근혜)’의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높다”고 내다봤다.


정동영의 승부수 “노대통령 ‘팽’”


범여권도 ‘비노’VS‘친노’로 핵분열이 이어지기는 마찬가지다. 핵분열의 중심에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대선후보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리잡고 있다. 먼저 핵분열을 일으킨 쪽은 정 후보 쪽이다.

정 후보는 신당 경선과정에서부터 참여정부와의 차별화를 내세우며 노 대통령을 도마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정 후보는 이와 함께 대선후보 공식선거운동 첫날 유세에서도 “정동영이 만든 새로운 정부가 노무현의 정부와 다르고 이명박의 정부와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지지율이 상승할 것이다”며 “노무현에겐 노무현 정치가 있고 정동영에겐 정동영 정치가 있다”는 말로 노 대통령을 한껏 깎아내렸다.

정 후보의 이같은 ‘노무현 깎아내리기’는 신당 경선 승리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 후보는 “참여정부를 계승할 적통을 가진 후보”라며, 열린우리당 분당과정에 대해서도 “인간적으로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된다”며 노 대통령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분당에 다른 책임은 단순한 사과를 넘어서 구체적이고도 처절한 정 후보의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며 정 후보의 화해의 손짓을 외면했다. 정 후보가 노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는 것도 이때의 ‘앙금’ 때문.

이는 정 후보가 최근 “‘관료주의의 바다’란 말을 쓴 적이 있다. 거시적 경제 지표들이 좋다고 이야기하지만 자기 삶에서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서민들은 ‘그게 뭔데’라고 반문한다. 새 대통령은 현장에 서야 한다”며 노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비판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정 후보의 ‘노무현 흠집내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 후보는 최근 유세에서 “대통령에 당선돼도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노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이 되고 나면 구중궁궐에 들어가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난다”라고 한껏 비아냥거렸다.

정 후보는 유세 때마다 “(노 대통령과는) 다른 철학, 다른 행동으로 여기까지 왔다. 내년 2월 대통령이 되면 편가르기를 하지 않고 품격 있는 국가, 품격 있는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며 노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최근 “제가 아무리 지지도가 낮지만 그래도 상당수의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한 묶음으로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정치세력 일부를 배척하는 정치행위이지 않는가”라며 정 후보를 향해 ‘젊잖은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범여권 한 관계자는 “정 후보가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 등 친노파가 등을 돌릴 수도 있다”며 “정 후보 측이 내세웠던 ‘김대중 찍고, 노무현 찍은 사람들의 결집’이라는 전략이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대선후보의 ‘노무현 정부 깎아내리기’. 정 후보의 이같은 차별화 시도가 범여권 후보단일화와 지지율 상승에 얼마만큼의 효과를 누릴지는 미지수다.


조순형 탈당, 민주당 ‘자중지란’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통합 및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민주당에서도 ‘자중지란’이 일어나고 있다. 뿌리는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의원과 이인제 대선후보의 경선과정에서의 갈등이다. 게다가 한나라당에서조차 조 의원 탈당에 힘을 실어주며 은근슬쩍 조 의원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한나라당은 최근 “원칙없는 통합에 반대해온 것은 일리가 있고 존중돼야 한다. 조순형 의원은 ‘대쪽’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짝퉁 대쪽’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조순형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신당과 민주당은 나눠 먹기 차원에서 통합을 추진하다 결국 밥그릇 싸움으로 통합에 실패했다. 이는 야합이 초래한 실패였고 그래서 조순형 의원 같은 분은 처음부터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조 의원을 한껏 추켜세웠다.

박 대변인은 이와 함께 “노선으로 따지면 이명박-이인제-심대평-이회창 후보가 한편이 되고, 정동영-문국현이 다른 한편이 되는 것이 맞다. 그리고 가장 왼쪽에 권영길 후보의 민주노동당이 포진하는 것이 정당 정치의 지형으로 볼 때 올바른 모습”이라며 “심대평 후보와 이회창 후보는 후보 등록을 포기하고 이명박 후보를 지지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 박상천 상임 선대위원장은 “민주당은 경제살리기와 서민·중산층 보호를 함께 추진할 진정성을 갖고 있어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당이 혼연일체가 돼 이인제 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초연한 태도를 보였다.

박 위원장은 “이인제 후보의 능력과 정책이 국민에게 전혀 전달이 안됐다. 합동토론회나 합법적인 홍보수단을 통해 이 후보가 국민 앞에 노출될 기회가 올 것이고 이 후보의 입지는 더욱 넓어질 것으로 본다”며 분열의 핵심은 ‘지지율’에 있음을 내비쳤다.


조순형 탈당, 민주당 ‘자중지란’, 이인제 최후 승부수
뉴라이트 연청동우회=이명박, 박사모=이회창 대분열



문제는 ‘대선3수’란 경험을 앞세운 이 후보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0.8~1%대의 지지율이 꼼짝하지 않고 범여권에서조차 꼴찌에 머물고 있다는 데 있다. 그뿐이 아니다. 믿었던 조 의원까지 탈당을 함으로써 민주당 내 계파 간 갈등까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후보와 민주당이 살아남는 길은 신당과의 후보단일화 뿐이다. 지분 6 대 4만 해도 민주당으로선 손해 볼 것 없는 것 아니냐”며 신당과의 후보 단일화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다.

조순형 의원의 탈당으로 인한 당내 갈등과 지지율 꼴찌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이인제 민주당 대선후보. 이 후보 측에서는 지금 “통합이 없는 후보단일화는 시너지 효과가 없다. 진보정책이 주조를 이루는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후보 단일화는 어렵다”는 ‘겉말’을 내뱉고 있다. 하지만 이 후보와 민주당으로선 큰 변수가 없는 한 신당이 던진 최후의 승부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朴=이명박, 박사모=이회창


범보수진영은 지금 박근혜 전 대표를 사이에 두고 나눗셈 정치를 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명박 후보 유세를 돕겠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박 전 대표 열혈지지자들의 모임인 ‘박사모’ ‘파랑새단’ 등이 반기를 들고 있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는 최근 박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데 대해 강하게 반발, 이회창 후보 지지를 공식선언했다. 또다른 박 전 대표 지지모임인 파랑새단 1천5백여 명도 이회창 후보를 돕겠다고 나섰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 전 대표 캠프에서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을 지냈던 이영덕 공보팀장을 비롯한 ‘친박’ 인사들도 이회창 후보 캠프로 몰려가고 있다. 여기에 ‘친박’ 곽성문 의원까지 ‘이명박 후보 도덕성 결여“를 내세우며 한나라당을 탈당, 이 전 총재 캠프에 들어갔다.

한나라당 경선 때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던 최경환 의원도 “경제학자로서의 양심을 걸고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서도 찬성할 수 없다”며 이명박 후보 지지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고, 친박 의원들 중 경선 때 일선에 나섰던 유승민·곽성문 의원 등의 움직임도 변수다.

박 전 대표의 ‘선택’에 따른 고민이 여기에 있다. 박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 지원을 위한 유세를 전남으로 잡은 까닭도 지지자들의 분열을 최소화하기 위한 특단의 조처라고 볼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이러한 ‘고민’에도 불구하고 범보수진영의 분열은 가속도를 내고 있다.

전국 42곳 대학교 총학생회 회장들과 ‘신보수’를 내세우고 있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는가 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앞장섰던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출신 회원들의 모임인 ‘연청동우회’도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는 등 보수진영의 ‘신구(新舊)’ 핵분열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회창 후보 대선 행보에 따른 범보수진영의 이례적인 분열. 이명박 후보를 멀찌감치서 돕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 또한 두 후보의 ‘지지율’ 추이에 따라 좌지우지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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