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해외유학 열전

재계 주요 기업들이 글로벌 행진을 가속화하고 있다. 국내 시장 변화에 따라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하면 당장 2~3년 후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창업주 세대가 내수에 매진했다면 뒤를 이어받는 후대에는 세계화의 성공적인 안착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예측한 탓인지, 웬만한 재벌가 자제들에겐 경영수업 이전부터 해외유학이 필수코스인 듯 하다. 좀더 넓은 세상에서 안목을 키우고, 다양한 인맥을 형성하는데 해외유학이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는 것이다. <시사신문>이 재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재벌가 자제들의 유학 열전을 들여다봤다.


범삼성가·범현대가…창업주 2·3세들 미국 유학파
하버드대·조지워싱턴대 등 재벌가 인맥 중심 부상

▲ 사진은 위에서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의선 기아차 사장,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
재계 주요기업 상당수는 오너가 경영의 중심에서 움직이는 구조를 갖고 있다. 경영의 큰 틀이 오너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오너의 역할은 막중하다. 이런 기업 현실에서 창업주 세대가 일선 후퇴하고, 그 후대 오너들이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향후 백년대계를 위한 차세대 오너들의 행보가 힘차다.

때문에 차세대 오너들의 역할은 기업 미래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차세대 오너들이 내딛는 한발 한발이 기업의 흥망성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창업주 세대에서 잘 나가던 기업이 자식 세대에서 한 순간 무너지는 상당수가 바로 자식농사를 잘 못 지은 탓이다.

이런 맥락에서 창업주 세대는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피땀 흘려 일군 기업이 재계 명부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너도나도 자식농사 힘을 쏟아 왔다. 특히 교육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기업의 미래를 내다보며 자식들을 넓은 세상으로 내보내는 ‘해외유학’을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일각에서 ‘굳이 외국에 나갈 필요가 있느냐,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다’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것도 사실이었지만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글로벌화를 가속화는 요즘, 차세대 오너들의 해외생활 경험은 분명 경영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그럼 재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재벌가 차세대 오너들은 어떨까.

재벌가 ‘미국 유학파’ 대세

범삼성가는 대부분이 미국 유학파로 유명하다. 삼성그룹 오너인 이건희 회장 역시 한때 미국 워싱턴 D.C. 소재의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대를 이어 삼성 황태자인 이재용(39) 삼성전자 상무는 물론 범삼성가의 일원으로 경영일선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정용진(39) 신세계 부회장도 유학길에 올랐다.

이재용 전무는 경북고와 서울대학교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실패하긴 했지만 이때 비즈니스 스쿨 인터넷 전공이 인연이 돼 경영수업의 첫 단추를 'e삼성'으로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전무는 명실상부한 삼성그룹 차세대 오너로 꼽힌다. 이런 이 전무에게 오랜 해외생활 경험은 당연히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올해 초 전무로 승진한 이후 삼성그룹의 주요 글로벌 고객사들을 만나는 글로벌고객책임자(CCO)의 중책을 맡은 것도 이유 있는 자리인 셈이다.

이 전무는 1991년 12월 삼성전자에 입사해 2001년 상무보, 2003년 상무, 2007년 전무(사장급 역할)로 승진하는 등 착실하게 오너를 향한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이 전무의 동갑내기 사촌지간인 정용진 부회장은 신세계그룹 오너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정 부회장 역시 유학파다.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브라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삼성으로부터 계열분리된 신세계그룹의 중심이 정 부회장의 어깨에 달려 있다. 전형적인 내수업종이던 신세계그룹이 중국 등 해외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은 어쩌면 정 부회장의 넓은 안목이 한 몫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정 부회장은 1995년 신세계 전략기획실 이사로 경영에 입문해 1997년 신세계 기획조정실(현 경영지원실) 그룹총괄담당 상무, 2001년 3월 경영지원실 부사장직을 거쳤다. 현재는 신세계 본사와 이마트 본사를 하루씩 번갈아 가며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 부회장의 동생인 정유경(36) 조선호텔 상무도 이화여자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나와 미국 로드아일랜드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1996년부터 조선호텔 등기이사에 올랐다. 정 부회장과는 조금 다른 영역에서 맹활약 중이다.

범현대가 역시 미국 유학파가 대세다. 재계 서열 2위이자 범현대가의 맏형기업인 현대차·기아차그룹의 황태자 정의선(37) 기아차 사장이 대표적이다. 정 사장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정 사장은 2005년 2월 기아차 사장에 오른 뒤 해외글로벌 경영에 가장 큰 역점을 두고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비전추진팀’이란 내부조직을 신설해 해외글로벌 경영과 내수, 조직문화, 디자인 등 4대 부분에서 경영색깔을 찾아가는 중이다.

범현대가에선 이 밖에 KCC 정몽진(47) 회장과 정일선(37) BNG스틸 사장이 조지워싱턴대학교, 정지선(35) 현대백화점 부회장이 하버드대학교 출신이다.

해외학연 ‘신(新)인맥지도’

재계 주요기업 차세대 오너들 역시 해외유학파가 많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이 같은 지역, 같은 대학교에서 동문수학한 사이라는 점에서 이들만의 새로운 인맥형성에도 재계의 관심이 높다. 대표적인 학교는 하버드대학교와 브라운대학교, 조지워싱턴대학교 등이다.

하버드대학교 동문은 이재용 전무를 비롯해 정지선 부회장, 최재원 부회장(SKE&S), 윤석민 사장(태영건설), 조현문 부사장(효성) 등이 꼽힌다.

브라운대학교는 정용진 부회장과 조현상 전무(효성) 등이고, 조지워싱턴대학교는 정몽진 회장과 정일선 사장을 비롯, 허태수 사장(GS홈쇼핑), 담철곤 회장(오리온그룹) 등이 속해 있다.

이 밖에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코넬대학교 출신으로는 얼마 전 코넬대 동문상을 수상한 서경배(44) 아모레퍼시픽 사장을 비롯해 조현아(33) 대한항공 상무 등이 있고, 최태원(47) SK그룹 회장, 구본준(56) LG상사 부회장, 구자은(43) LS전선 전무 등은 시카고대학교 동문이다.

한편 최근에는 국내 대학을 다니지 않고 애초부터 해외유학에 나서는 사례도 늘고 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장남인 남호씨가 경기고 졸업 후 웨스트민스터대학교에, 구자열 LS전선 부회장 장남인 동휘씨가 구정고 졸업 후 카네기멜론대학교 등으로 유학을 떠났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동관씨(하버드대)와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장남인 승담씨(스탠퍼드대),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장남인 규호씨(코넬대) 등은 아예 고등학교 때부터 유학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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