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집〉, 정물화가 움직이듯 절제미 돋보여


▲ 물속의 집, 얽히고 설킨 근친상간과 애증으로 죽을 때까지 묶인.
극단 《뿌리》의 30주년 기념작 <물속의 집>은 미국 극작가 유진오닐의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를 한국 극작가 장성희 교수가 한국적 시공간 안에서 재창작한 작품이다.

한시라도 멈추지 않는 세월의 이빨에 먹혀들고 있는 저택의 내부, 수택지 근처에 세워진 이 고가의 내부는 침침하고 습한 느낌을 준다. 오래 전 수택지(水澤地)에 지은 양옥집의 지반은 물의 침식을 받아 가라앉고 있다.

여주인 정연(주수정)은 결혼 생활 내내 독단적이며 권위적인 남편의 그늘진 힘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자유와 사랑을 되찾으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건축사 김환(장두이)이 등장한다.

정연한테 김환은 불행의 암울한 아우라를 깨뜨릴 이중적 빛이다. 김환은 정연의 몸과 맘을 정열적으로 사랑해줄 남성의 빛이며, 상실한 자신의 젊음을 되찾아주고 오랜 세월 습기에 침윤된 집 안으로 대기의 따스한 공기와 빛을 불러들일 수 있는 김환은 건축가다. 결혼생활 동안 파괴된 정연의 욕망을 재구축해줄 수 있는 힘을 지닌 남성이다.

김환은 사실 정연의 남편의 의붓동생이다. 김환의 어머니는 몸속으로 불같이 이는 쾌락에 빠진 결과 김환을 낳은 후 할아버지와 식구들의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수택지에 몸을 던져 한 많은 인생을 버린다.

김환은 그 할아버지의 적자, 정연의 남편을 증오한다. 복수를 염두해 둔 김환의 의도적인 접근. 그런데 김환이 정연을 보는 그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애욕에 빠져든다.

정연의 딸 수경(김진이)은 그토록 집착하던 아버지가 심장발작으로 돌아가시기 이전부터 정연과 김환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고, 아버지를 죽인 것도 어머니인 줄 알고 있었다. 수경은 보스톤 유학 시절 만난 김환과 사랑에 빠진 적도 있다.

상복을 입은 수경이 무대 전면에 놓인 아버지의 데스마스크를 만지작거리며 얘기를 나누고, 아버지의 잠옷을 입고, 깊은 밤 아버지가 신문을 즐겨보던 의자에 앉아 망자(亡者)와 속닥거린다.

아버지의 죽음 뒤, 서서히 스며드는 물과 같이, 정연, 김환, 수경은 애증의 질긴 그물코처럼 엮인다.

수경의 동생 수영은 어느 날 정연의 불륜 장면을 목격하고, 김환을 아버지의 사냥총으로 쏴죽인다. 수경과 수영은 그 시체를 저수지에 내다버리고 살해는 저수지에 은폐된다.

수경은 유약한 남동생 수영을 사주해서 불륜의 장면을 목격하게 했다. 수경은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기가 연모하는 남자 김환을 독차지한 정연에게 복수한 것이다.

사랑, 자유, 따스한 집-물에 젖은 폐지처럼 변해가는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떠 있던 정연에게 김환의 죽음은 다가올 모든 것들이 가진 빛과 향기의 종말이었다.

자살한 정연의 뒤를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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