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어 더욱 뜨거운 호텔 나이트 클럽의 성숙한 남녀들

네온사인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명멸하는 서울의 밤. 특히 강남 한가운데 자리잡은 S호텔의 조명은 주위보다도 더욱 환한 듯 하다. 밤 10시가 넘자 하나 둘 택시를 타고 온 손님들이 내리고, S호텔의 주변은 남녀의 무리로 들끓는다. 생음악의 열기 속에 달아오르는 남과 여 S호텔의 측면 부분, 'S호텔 나이트클럽'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이 시간 택시를 타고 S호텔로 온 사람들은 대개 이곳을 찾는 손님들. 웨이터의 활기찬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가면, 휘황찬란한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이 '나이트클럽'인지 아니면 '카바레'의 성격인지 잠시 헷갈리는 것. 클럽 내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용객들의 연령 분포도는 다양한 듯 하다. 주로 20대 후반부터 시작하는 손님의 나이는 30대 초중반을 정점으로 피크를 이룬다. 간혹 4,50대의 중년도 여유있는 풍채로 앉아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고서 잠시 후, 웨이터가 과일 안주와 양주, 맥주를 서빙한다. 여기까지는 일반 나이트클럽이나 룸살롱과 별다를 바 없다. 이 나이트클럽의 내부 구조는 가운데 댄스 플로어를 기준으로 후방에는 테이블이, 플로어 윗 부분에는 '스테이지'가 있다. 댄스 플로어를 바라보며 오른 쪽 상단부에는 '관현악단'석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알 수 있듯, 이 나이트클럽은 '생음악'을 중심으로 무대를 꾸리고 있다. 주로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나이트클럽'이 DJ가 조작하는 '리믹스' 음악으로 채워지는 것과는 커다란 대조를 이룬다. 이 클럽을 이용하는 대상이 주로 누구인지 잘 알게되는 순간이다.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도 주로 '올드팝송' 계열. 주로 남녀 싱어 한 명씩과 기타, 드럼, 베이스, 색소폰, 키보드 등의 편성으로 이루어진 밴드는 비지스의 'Tragedy', 'You Should Be Dancing', 쇼킹 블루의 'Venus' 등, 친숙한 팝송을 연주한다. 이들이 쉬는 타임에는 오른 쪽 상단부에 20여명으로 이루어진 관현악단이 등장, 역동적인 힘찬 음악을 연주한다. 하지만 이렇게 풍성한 레퍼토리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손님들은 '춤'만 추러 온 것은 아님에 분명하다. 실제로 플로어에서 춤을 즐기는 손님들보다는, 테이블에 앉아 다소 음침한 눈을 희번득거리는 부류가 훨씬 더 많다. 수십명의 웨이터들 또한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분주하다. 웨이터의 본래 목표가 손님의 주문에 따라 음식을 나르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일진대, 이곳의 웨이터는 단순히 술과 안주만 나르는 게 전부가 아닌 듯 싶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손님과 두런두런 귀엣말을 주고받다가 황급히 자리를 뜨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 드디어 웨이터의 손에 이끌려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자 손님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구불구불 복잡한 통로를 이리저리 걸어가다가, 구석진 테이블에 다다른다. 테이블에는 30대 중반의 여인 둘이 술을 홀짝이며 키득거리고 있다. 웨이터의 소개로 남자는 여인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여인들은 일순간 긴장의 표정이 잠깐 스치고 지나갔지만, 남자의 차림이 말쑥한 편인데다가 나름대로 매너를 갖춰 행동하는 것을 보고 약간 경계를 풀은 듯 했다. 몸을 밀착시킬수록 이성은 마비되고... 사실 남자는 '영계', 또는 적어도 '미시족'을 내심 노리고 S호텔 나이트 클럽을 찾은 것이라, 곁에 앉은 여인들에 대해 약간의 실망을 감출 길이 없었다. 두 여인 중 다소 볼륨이 있어보이는 여자 하나가 자꾸만 남자 쪽으로 시선을 맞추려는 듯 하다. 하지만 그 여인네는 이곳과 별로 어울리지 않게 선글라스를 쓰고 있기 때문에, 과연 남자와 '눈맞춤'을 하려는 의도가 확실히 있는지는 아직 가늠이 서질 않는다. 이 여인이 선글라스를 굳이 쓴 이유도, '마음에 드는 남자'를 거리낌없이 찾으러 온 목적에 부합하기 위함과 동시에, 그러한 자신의 의도를 쉽게 들키지 않으려는 일말의 수줍음 때문이리라. 선글라스를 쓴 여인의 시선이 자꾸만 걸린다. 원래는 바로 곁에 앉아있는 다른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선글라스 여인이 눈에 밟혀 말이 잘 안 나온다. 양주잔을 스트레이트로 다같이 건배하자며 원샷으로 들이킨 후, 남자는 과감히 제안한다. "나가서 춤이나 춥시다!" 다들 술이 어느정도 거나해진 상태라, 온몸을 감싼 알코올의 기운을 떨쳐버리려는 듯 신나는 음악에 맞춰 열심히 몸을 흔든다. 남자도 신이 났고, 여인들도 흥겹다. 한창 팔팔했던 청춘이 떠올라 그 때 춤 췄던 대로 오른 팔을 들어 마구 흔들다가, 남자는 곁에 있던 선글라스 여인의 가슴을 살짝 건드리고 만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여인의 물컹한 살집을 감촉하자 순간 정신이 번쩍 나면서 아랫도리가 저려온다. 곁눈질로 선글라스 여인을 슬쩍 바라보았지만, 여인은 아랑곳 하지않고 신나게 흔들기만 한다. 얼마동안을 정신없이 흔들었나, 돌연 무대에서 연주하는 음악의 템포가 바뀌기 시작한다. '블루스 타임'이다. 유난히 색소폰의 연주가 흐느적 흐느적거리듯 관능적으로 들려온다. 디스코 타임이 끝나자 테이블로 돌아가는 손님이 많았지만, 남녀가 이미 쌍쌍을 지어 포옹을 한채 살짝살짝 허리를 흔드는 광경이 벌써 펼쳐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시선을 돌려 여인들을 보았다. 여인들이 전부 다 있는 건 아니었다. 선글라스를 쓴 여인만이 이쪽을 힐끔거리며 엉거주춤 서있다. 나머지 한 명은 이미 테이블로 돌아간 듯, 자취가 없다. 선글라스 여인은 남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오른쪽 손가락으로 선글라스를 살짝 아래로 내린다. 약간 젖은 듯하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남자를 의미심장하게 쏘아본다. "어서 춤 안 추고 뭐하세요?"의 여자다운 암시이리라.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마법에 끌리듯 남자는 여인의 몸뚱아리에 자신의 육체를 밀착시킨다. 진한 향수 내음이 코를 찔러온다. 여인의 풍만한 가슴이 남자의 단단한 상체에 터질 듯 짓눌러온다. 여인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미 여인의 두 뺨은 발그레 상기되어 있다. 좀더 허리를 밀착시키자, 여인은 헛기침을 한번 한다. 그리고는 거추장스러운 듯 선글라스를 벗는다. 선글라스를 벗자마자, 여인을 얼굴을 남자의 가슴께로 푹 파고들고 만다. 언제까지나 이 순간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심정에, 남자는 힘을 주어 여인을 꼭 껴안는다. 여인의 얼굴은 남자에 폭 파묻혀 보이지를 않고, 머리카락에서 풍겨나오는 샴푸 향기가 향수 내음과 어울려 코를 찔러댄다. 둘은 명목상 춤을 추고는 있지만, 남들이 보기에 이것을 '블루스'라고 볼 수 있는지 아니면 그냥 서로의 몸을 음탕하게 비벼대고 있는 것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을 것이다. 하긴, 누가 그런 광경에 신경을 쓰랴. 다들 그런 비슷한 목적으로 S호텔 나이트를 찾은 것을. 블루스 타임이 끝났다. 여자는 거침없이 내맡겼던 자신의 육체를 남자로부터 떼어낸다. 머리를 가다듬고 옷매무새를 만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남자에게 의미심장한 눈길을 던진다. 남자도 여자를 바라보며 살며시, 그러나 진득한 웃음을 짓는다. "우리 이제 여기서 더 이상 춤만 출 필요는 없잖아요?"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긴. 윤리와 가정의 의무를 저버린 적색 탈선지대 오늘도 밤마다 외로우나 이대로 잠 못드는 성숙한 남녀들이 부나비처럼 S호텔 나이트클럽을 찾는다. 육체의 쾌락을 위해서는 치뤄야할 대가도 개의치 않는 정염에 사로잡힌 남녀의 열기로, 나이트클럽은 계절에 관계없이 항상 후끈하기만 하다. 아무리 냉방장치를 최고로 설정해놓아도, 몸을 흔들고 비비다보면 흐르는 땀을 막을 길 없다.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것을 뭐라 탓할 수는 없으나, 문제는 S호텔에 모여드는 남녀의 대부분이 가정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배우자와의 불화 탓인지, 아니면 찰나적인 외도를 위해 모여든 것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건전한 가정 생활을 해치는 '탈선 지역'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오늘도 불야성을 이루는 S호텔 나이트클럽의 호화로운 조명과 불빛은, 이들 탈선 남녀의 윤리의식 부재를 가려주려는 듯 유난히 반짝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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