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손 꼬옥 잡는 큰아이의 조막손에 사랑이

지난 일요일 오전이었다. 아내가 작은아이를 데리고 문구점에 갔다. 필통을 사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후 1시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슬슬 걱정이 되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였다.

"큰아이 데리고 나오세요. 우리 점심 먹고 들어가요."



나는 큰아이를 데리고 시내를 향했다.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유리창에 내 모습이 비친다. 그런데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운동복 차림에 세수도 하지 않았다. 머리도 헝클어져 있다. 큰아이 보기에 마음이 좀 그랬다. 그래도 큰아이는 좋기만 한 모양이다. 내 손을 꼭 잡았다. 오랜만에 둘만이 걷는다.

"우리 새하도 4학년이지? 애들하고 잘 어울려야 한다."
"예, 아빠."

큰아이가 선선하게 말했다. 도로변에 가게들이 즐비하다. 큰아이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횟집 수족관이었다. 낙지가 슬금슬금 수족관을 타고 올랐다. 어떤 낙지는 막 수족관을 넘으려 하고 있었다. 꼼지락대는 모습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하지만 큰아이는 징그러운 모양이다. 얼른 고개를 돌렸다. 조금 걷다 보니 고소한 냄새가 났다. 통닭집이었다.

"아빠, 우리 반에 00이라는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 아빠가 통닭집 사장님이래요. 그 얘 방에 가면 온통 장난감이에요."
"부럽니?"
"아니에요. 아빠가 더 훌륭해요."
"그래?"

나는 빙긋 웃었다. 사실 아이들 눈에는 자기 아빠가 제일이다. 나도 어렸을 때는 그랬다. 아버지는 몸이 불편하셨다. 하지만 아버지 손을 잡고 갈 때면 마음이 든든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마음이 후했다. 시장에라도 가는 날이면 가끔 내게 맛있는 과자도 사주셨다. 어머니는 이런 아버지가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아버지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신 것이다.

"얘야, 괴롭히는 아이들은 없니?"
"없어요. 그런데요…."
"말해보렴."

"몇 명이 무리를 지어서 한 아이를 괴롭혀요. 바보라고 막 놀렸어요."
"그러면 안 되지. 네가 좀 도와주지 그랬니?"
"아빠, 죄송해요. 저는 그만한 힘이 없었어요. 대신 선생님이 혼내주었어요."

아이들 세계도 저렇다. 무리를 짓는 못된 습관이 있다. 그런 아이들은 대개 약한 아이, 가난한 아이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놀리기도 하고 따돌림을 시키기도 한다. 심지어는 집단으로 때리기도 한다. 나는 큰아이에게 다짐을 받았다. 그런 무리에는 끼지도 말고 그런 얘들과는 놀지도 말라고 했다. 혹 용기가 나면 약한 아이를 도와주라고 했다. 그때였다. 큰아이가 궁금한 듯 내게 물었다.

"아빠, 왜 남북이 갈라졌어요?"
"응, 그건 말이다. 뭐라고 할까, 어른들이 욕심이 많아서 그래."
"아빠,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지요? 사회주의가 뭐예요?"
"응, 노동자가 주인인 세상이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정말 사회주의 국가는 노동자가 주인일까? 모두가 평등한 걸까? 과연 그런 세상이 있을까?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책을 보니까 그렇게 쓰여있다고만 말했다. 다행히 큰아이는 더는 묻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대견함을 느꼈다. 다음 말 때문이다.

"아빠, 우리도 통일이 되면 강대국이 될 수 있지요? 일본도 이길 수 있지요?"
"그럼, 그렇고말고. 우리 새하도 이제 다 컸구나."

나는 진심으로 이렇게 말했다. 항상 개구쟁이 소녀로만 보였던 큰아이다. 그런데 벌써 저렇게 컸다. 우리 부녀는 그날 시내에서 많은 걸 보았다. 몸통에 옷을 두른 귀여운 강아지도 보았고 굴뚝에서 방금 나온 것처럼 꾀죄죄한 강아지도 보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좋은 옷을 입은 사람도 보았고 무릎걸음으로 구걸을 하는 사람도 보았다. 우리 부녀에게는 모두 기억에 남는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들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게 있었다. 다름 아닌 큰아이와의 대화였다. 큰아이가 보는 세상은 공평했다. 어느 한곳에 치우침이 없었다. 깨끗했고 순수했다. 세상에 오염되지 않았다. 나는 큰아이가 그런 마음을 오래 간직했으면 하고 바랐다. 딸과의 데이트는 그래서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