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타고 달려가는 내 청춘의 해방구



강촌에 간다. 오랜만의 일이다. 강촌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많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의 언어 중에서 생각만 해도 식욕이 돋거나 그리워지고 또는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들이 많다.

강촌이란 말도 그렇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강촌은 내게 청춘의 해방구이자 첫사랑 같이 아련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오랜 세월 잊고 살아도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고 또 불현듯 가보고 싶은 곳이 강촌인 것이다.

80년대 강촌과 함께 해방구 역할을 했던 백마는 일산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숱한 사연들도 함께 사라졌다. 신도시가 생기기전 나는 일산 백마역 인근인 풍동의 한 농가에 살았다.

걸어서 십여분만 가면 백마역과 카페 '화사랑'이 있었고 '숲속의 섬'이 있었다. 그곳에 모인 청춘들은 당시의 시국에 대해 토론하며 울분을 토했다. 당시 쏟아냈던 수많은 언어들은 신도시의 화려함 속에 묻혔다.

그 시절 백마역으로 오기 위해 신촌역에 모여 있던 젊은이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형체가 사라진 신촌역은 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한다.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 강촌으로 가는 길은 아무래도 경춘선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 옛추억을 되살리기에 좋다. 기차 안의 풍경은 예전 같지 않지만 기찻길과 강촌역은 그 자리에 있다.

예전 서울 성북역에서 출발하는 비둘기호를 타면 기차 안은 물론이고 통로와 계단까지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실내는 담배연기로 인해 숨쉬기조차 힘들었지만 소박한 게임만으로도 모두들 즐거웠다. 그러나 통근 열차로 명맥을 유지하던 그 기차마저 얼마 전 운행을 멈추었다.

성북역에서 출발한 승객의 절반은 대성리역에서 내렸고 나머지는 강촌역에 내렸다. 요즘도 그러하지만 그 모습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통기타를 둘러메고 다니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라면상자를 등짝에 지고 내리는 신입생들도 보이지 않는다.

M.T 문화가 바뀌며 강변에 둘러앉아 통기타를 치는 젊은이도 없으며 기타소리에 맞춰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전이 되어버린 당시의 문화는 빛바랜 사진 속에서나 확인이 가능하다.

2인용 자전거를 타고 구곡폭포나 등선폭포 또는 강변길을 달리는 청춘남녀의 모습도 예전 같지 않다. 강변길이 넓게 포장되면서 차들이 속도를 내는 까닭이다.

강촌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예전 민박집 아주머니를 따라 가던 길은 꼬리를 무는 차량으로 인해 산만하기 그지없다. 여관과 노래방 또 음식점들은 얼마나 생겼는지 강촌만이 가지고 있던 예전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강촌역을 빠져나오는 남녀에게 말을 건다.



"강촌까지 놀러온 이유라도 있어요?"
"기차타고 갈 만한 곳이 여기밖에 더 있나요?"

남자의 말을 들으니 사실 그러했다. 서울에서 가까운 기차여행지가 많이도 사라졌다. 20대 초반의 남녀는 허리를 감싸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강촌역도 많이 변했다. 플랫폼 공사가 있은 이후 풍경이 예전만 못하다. 강촌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낙서문화이다. 벽을 가득채운 낙서는 기다리는 이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강촌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또 하나 있다. 강촌역 플랫폼을 나와 골뱅이처럼 생긴 철제 계단을 내려가면 오래된 카페 하나가 있다. 80년대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윌 카페'다.

윌 카페는 몇 해 전만 해도 대학가요제 출신 그룹사운드들이 자주 공연을 했던 곳이다. 그때만 해도 카페는 <나 어떡해>나 <구름과 나> 같은 노래가 매일 연주되었다. 지금은 올드팬이 된 당시의 젊은이들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나 어떡해>를 따라 불렀다.

요즘엔 그러한 공연마저 자주 열리지 않는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쁜 탓이다. 무대엔 아직도 그들이 치던 드럼과 전자 기타가 남아있다. 요즘엔 윌 카페의 주인인 가수 최영엽씨가 혼자 라이브 공연을 한다.

최영엽씨는 본인의 노래가 있지만 들국화 멤버 전인권씨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전인권씨와는 친구 사이란다. 노래방 문화가 강촌까지 밀려들면서 라이브카페를 찾는 이들이 많이 줄었다. 강촌까지 와서도 노래방을 찾기 때문이다.

요즘 윌 카페를 찾는 이들은 7080 세대들이다. 이미 사십대가 되어버린 당시의 젊은이들이 추억 한 자락을 찾기 위해 윌 카페를 찾는다. 간혹 혼자 오는 손님도 있다. 흐르는 북한강을 바라보며 추억에 젖었다 조용히 떠난단다.

강촌역을 떠나 등선폭포로 간다. 등선폭포로 가는 길은 북한강을 끼고 있기에 산책하기에도 좋다. 등선폭포 입구는 벌써 겨울을 맞았다. 빙어 튀김이 만들어지고 갓 만든 도토리묵을 선보인다.

등선폭포는 지각변동에 의해 산이 갈라지면서 생긴 협곡이다. 삼악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맑고 차다. 눈 내리는 날 차 한잔을 두고도 지루하지 않을 그런 곳이다.

군밤 한 봉지를 사 입 안에 넣는다. 고소함과 따스함이 입안에 감돈다. 군밤을 먹으며 다시 강촌역으로 향한다. 강변길을 걸으며 옛 사람의 흔적을 찾아본다. 강변길에서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가 보이지 않는다.



당시엔 분홍빛 솜사탕이 인기였다. 몰래버린 솜사탕 막대와 기념으로 숨겨 놓은 십원짜리 동전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

강촌 다리 옆에는 교각만 남은 다리가 있다. 출렁다리가 있던 곳이다. 강촌의 명물이던 출렁다리는 지난 80년대 초 끊어졌다. 출렁다리와 함께 놀러왔던 남녀 대학생 둘도 세상을 떠났다. 슬픈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강촌을 찾는 이들은 죽음을 맞은 남녀의 몫까지 사랑해야 한다.

강촌역 플랫폼에 오래 서 있어 보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는다. 무심하게 떠나는 기차를 바라보며 추억 하나를 접는다. 낙서를 하고 있는 젊은 친구에게 펜을 빌려 '2006.11.12. 옛 추억을 찾아 강촌에 왔다감'이라 쓴다.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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