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노래의 성지, 헤레스에서 '서편제'를 보다(3)
하늘엔 달무리 ,
내 사랑은 이 땅에서 사라지고.
전라도 순창이 낳은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 서정주의 시는 판소리 사설 특유의 레토릭과 특히 전라도 방언의 장중한 음성 모음, 중몰이 진양조 엇몰이 등 갖은 판소리 장단을 끌어들임으로써 ,이끼 낀 싯적 리듬의 도도한 흐름과, 그래서 친근한듯 하면서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넓고 깊은 의미를 띠고 있다. 아래의 그의 시 ' 선운사 동굴'에는 육자배기 가락과 판소리의 금과옥조인 수리성(목쉰 듯한 허스키의 거친 소리)이 진하게 배어있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 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것만 오히려 남았습니다.
극서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내부에서 마음의 소리마당- 그 속에서는 고통과 슬픔이 노래가 되어 리듬을 띠고 ,열정이 스스로 악기가 되어 장단을 쳐 주는-을 뜨겁게 느낀다. 그 때 우리는 모두 동등하다.
한국인, 모로코인, 안달루시아인 사이에 아무런 구별이 없고, 남녀노소의 한계도 없다. 그 마음의 소리마당안에서는 그저 가슴을 지닌 인간일 뿐이다. 뼈저림과 외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삶을 직시해보면, 가장 가혹한 외로움이라도, 만약 그 외로움이 소리나 몸짓을 통해 누군가에게로 표출되고 나누어 질 수 있다면, 그것은 진실로 외로운 순간이 아니다. 함께 나누어지는 외로움의 고통은 그것이 아무리 깊다 하더라도, 우리의 판소리의 경우에서 처럼,극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편제에서 그 떠돌이 소리꾼 일가는 진정한 외로움을 겪는 자들이 아니다. 그리고 플라멩코의 '깊은 노래'인 시규리어의 첫 도입부의 아이 아이 아이...'의 그 외침 역시 진실로 외로운 자의 외침이 아니다.
두 경우 그들의 고통과 슬픔이 함게 나눌 수 있는 노래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노래에 어떤 언어적 의미도, 그들에게 현대적 의미의 청중이 없어도 말이다. 서로 눈맞춤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소리마당이 있기 때문이다,그들에겐.
셍떽쥐뻬르의 '인간의 대지''에서 모래와 바람의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하게 되어 죽음 직전의 고통을 겪는 한 비행사의 절박한 외침은 '어디 사람 없소?'라는 사람의 흔적에 대한 절망적인 갈망이다.다. 자기편 혹은 친구나 민족과 같은 특정의 인간을 찾는 외침이 아니다. 그런 상황의 순간에는 사람의 체취 만으로도 과분한 은총이다.
가장 가혹한 고독의 순간이 담긴 풍경은 인간의 흔적이 없는 메마름의 사막이다. 그리고 무리속에 있으되 어느 누구와도 눈맞춤이 허용되지않는 자들의 동공 속에 담긴, 별 하나 길인 듯 떠 있는 검은 하늘이다.예컨대, 시장 바닥에 앉아 혼자 끊임없는 중얼거리는 쑥대머리의 여인이나, 고호의 스케치 그림 '고독' 속의 모델인 한 노인과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