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보여드릴 게 더 많아요”

엄지원은 영화 <찍히면 죽는다>로 스크린에 본격 데뷔한 후 7년, 내년이면 어엿이 서른을 꼭 채우는 여배우다. 배우로서 첫 주목을 이끌어낸 작품은 <똥개>였고, 이후 <주홍글씨>, <극장전>, <가을로>에 출연했다. 흥행보다는 작품성으로 평가받은 영화에 더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는 평이다. 그렇다면 오는 11월15일 개봉하는 엄지원 주연의 <스카우트>는 흥행과 작품성 중 어떤 영화로 관객들을 찾아가게 될까. 우아하고 단아한 역할에서 이번 영화를 통해 ‘발랄녀’로 깜짝 변신한 엄지원을 지난 11월5일 언론시사회 현장에서 만나봤다.

극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중심인물로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자의 폭 넓히고 싶어

영화 <주홍글씨>, <극장전>, <가을로> 등으로 주목받은 배우 엄지원이 “아직 한참 모자라다”며 겸손하게 입을 열었다.

발랄녀 변신, 기대만발

그 동안 출연한 영화에서 엄지원은 콧소리가 적당히 들어간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사랑의 아련함과 지독함을 자극해왔고, 신세대 감성보다는 불변하는 기본 정서를 대변해왔다. 대개 감정의 폭발이나 강렬한 행위가 동반되지 않아 오히려 어려운 역할이었다.

강력하게 존재감을 과시하기보다는 어둠과 빛, 우울함과 낙천성의 경계에서 사라질 듯 위태한 질량감을 가진 여인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영화 <스카우트>에서는 좀 다르다. 이번 영화에서 엄지원은 선동열 잡기 작전에 고군분투하는 스카우터 ‘호창(임창정)’의 대학시절 첫사랑으로 이소룡이 사망하던 날 갑자기 이별을 선언하고 종적을 감춘 뒤 7년만에 호창과 재회하는 여주인공 ‘세영’ 역을 연기했다.

엄지원의 설명에 따르면 세영은 청순한 첫사랑에 대한 남자 감독들의 전형적인 ‘로망’도 대변하면서 엉뚱함과 적극성도 갖춘 인물이다.

언제라도 툭 치면 눈물을 떨굴 것 같던 엄지원이 양지의 세상에서 경쾌하게 뛰어놀며 새로운 얼굴의 일단을 보여주는 이전의 배역보다 훨씬 밝고 적극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것이다.
엄지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연기한 ‘세영’은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라며 “나의 참여로 이야기에 무게감을 실어줬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적으로 역할에 임했다고 본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이라이트 뽀뽀신

영화 <스카우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광주 사투리를 구사하는 엄지원의 모습이다. 실제 경상도 출인인 엄지원은 전라도 출신 가수 박혜경에게 도움을 청해 수시로 전화를 걸어 대사를 읽어주고 전라도 사투리로 다시 들어 익혔다.

또 엄지원은 <스카우트> 장면 촬영 도중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시위 장면 촬영 도중 부근에서 갑작스레 터진 폭약으로 인해 화상을 입은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촬영에 임하는 투혼을 발휘해 화재가 됐다.

영화 관계자에 따르면 엄지원은 이날 부상으로 손목 부위에 2도 화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위대에 밀려 신발이 벗겨진지도 모른 채 맬발로 뛰어 임창정을 구해내는 장면을 연출해냈다. 현장에 있던 모든 스태프들은 예상이 못한 사고에 깜짝 놀라 당황했지만 정작 본인은 연기에 몰입해 이 같은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엄지원은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의 에피소드에 대해 “웃기지만 또 슬프고 시대의 아픔을 웃음으로 포장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인지 슬픈 장면을 찍고 나서도 금세 또 웃었다. 특히 대학교 1학년 때 두 사람의 연애 모습을 너무 재미있게 찍었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쑥스러운 듯 장난스럽게 뽀뽀하는 이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꼽았다.

엄지원은 “연애 장면에서는 시나리오에 ‘영화를 보는 두 사람’ 이런 식으로만 써있어 뭐든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다. 코미디 장르에서 오는 즐거움을 만끽했다”고 말했다.

한편 임창정은 엄지원과의 키스신에 대해 “엄지원과 찍은 뽀뽀신은 여러 각도에서 컷을 찍어서 원하는 만큼 뽀뽀를 해봤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마지막으로 엄지원은 “아직은 나만의 색깔을 갖기보다 무엇이든지 보여줘야 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면서 “가능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비중에 관계없이 여러 가지 연기로 폭을 넓혀가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연기했던 인물들이 내 마음 속에 하나하나 깊은 자취를 남기는 것 같다”는 엄지원. 그는 다양한 삶과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화려하지는 않지만 넓고 깊게, 내공을 키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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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으로… <스카우트>

한국전쟁, 5·18 광주민주화항쟁 등 역사적인 큰 사건들이 일어나도 일반 서민들은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다. 전쟁이 일어나도 시장에서 떡을 파는 사람이 있었고 연인들은 모여 앉아 사랑을 속삭였다.

영화 <스카우트>는 이런 부분에 있어 일맥상통한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이라는 큰 사건을 역사적 입장에서 바라본 게 아니라 개인의 관점에서 그린 영화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선동열 대학 입학을 둘러싼 스카우트 전쟁을 둘러싼 소동에 초점을 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어두웠던 군사 독재 시절에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의 애틋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학교 체육부에서 근무하는 이호창(임창정)은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이 일어나기 10일 전 ‘괴물투수’ 선동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온다. 광주에서 그는 7년 전 갑자기 이별을 고한 대학 후배 세영(엄지원)을 오랜만에 만나 아직 자신의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상대 대학과 치열한 스카우트 전쟁을 벌이던 호창은 세영과의 여러 번 만남을 통해 이별을 둘러싼 의문을 풀게 된다. 하지만 두 연인에게 5·18 민주화항쟁이라는 큰 사건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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