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노래의 성지, 헤레스에서 '서편제'를 보다(1)



이번 스페인 여행중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서, 남도 소리꾼 일가의 기구한 삶의 유전을 그린 영화 '서편제'를 플라멩코의 본 고장 헤레스(jerez)에서, 그것도 이 지역의 집시가족과 함께 그들이 소장한 비데오를 통해, 다시 보게 된 것은 내게는 여간 의미있는 일이 아니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노래와 춤인 플라멩코와 전라도의 판소리중 서편제와 살풀이 춤를 이 기회가 더 깊은 호기심으로 비교하는 계기가 되었기 탓이다.

이 비데오는 지난 겨울 플라멩코 댄서 사샤가 마산에 왔을 때 어시장 근처 양피부비뇨과 병원의 양원장이 살풀이 춤 cd와 함께 그녀에게 준 선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전문 의사로서 오래전부터 우리의 소리와 춤에 심취하여 스스로 북채를 잡는 고수이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서편제 특유의 개면성 가락과 애절함이 절절히 묻어나는 시나위성음! 소리꾼 일가 - 장구를 치는 아비, 소리를 뽑는 눈먼 딸, 징을 울리는 배다른 아들-이 억새풀 언덕길위에서 흥에 겨워 펼치는 진도 아리랑 소리 한 마당! 이날 사샤는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남편과 시아버지 그리고 내 앞에서 그 눈먼 딸의 처연한 소리,'아리, 아리, 아리랑...'을 플라멩코의 솔레아로 춤추었고 그녀 남편은 팔마스(손벽치기) 로 이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눈 많이 내린 엄동설한 공동묘지 길 오두막 집에서 그 소리꾼은 눈 먼 딸애게 용서를 빌면서 눈이 멀게된 사연을 들려주면서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사샤는, 나의 귀뜸 설명으로 그 의미를 감지하고는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였다.

헤레스의 사샤 가족들은 한국인 여행자인 나처럼 비수로 찌르는 듯한 떠돌이 소리꾼 일가의 그 깊은 숙명적 슬픔과 한에,그리고 그 눈먼 딸의 처연한 소리에 한 여름의 어둡고 습한 바다의 밑 바닥으로 희망없이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기 탓일 것이다. 마치 내가 미국의 포틀란드에서 처음 듣게된 플라멩코의 그 긴 어두운 외침 '아이 아이 아이...'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보성 벌교 강진 등 전라도 땅 이곳 저곳을 주막집 소리 주모로 전전하며 삶을 이어가는 그 눈먼 딸이 장흥의 한 주막에서 배다른 오라버니를 만났을 때, 두 오누이는 소리로 서로를 알아보고도 말 못하고 하룻 밤을 고수와 소리꾼으로 지세우고 말없이 헤어지는 그 처연한 장면을 아마 이 영화를 본 이라면 다 기억하리라.

깊은 노래의 성지, 헤레스에서 '서편제'를 보다(2)

플라멩코의 본 고장인 헤레스에 와서 우리의 판소리와 관련하여 대비적으로 연상되는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서로 별개의 민속적 노래들로 학술적인 비교연구의 대상은 아닐 것이지만,플레멩코나 판소리 둘다, 한마디로 소리꾼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두 전승예술이고 관객이 있는 소리판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예술이다.

판소리는 시 음악 무용처럼 종교의식적 공간에서 '예배적 행위를 하는 뮤즈로' 태어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플라멩코도 처음에 그렇게 예배적 의미로 시작되었을 것으로 믿게된 것은 내가 이 도시 헤리스에 와 4월의 holy week 기간중 사에타 노래를 들으면서 였다.

판소리 공연이 벌어지는 소리판은 광대 이외에 고수라는 또 하나의 연기자가 등장하고 개인이면서도 개인의 힘을 넘어서는 예술 수용의 주체인 청중이 생기는 곳이다. 그리고 '별들이 운행하다 느닷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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